신기원 / 심리학과 석사과정 수료

자유발언대

빵과 장미

신기원 / 심리학과 석사과정 수료

 

도서관에 있다 보면 미화원분들을 자주 마주친다. 전에는 무심하게 지나쳤는데 오가며 자주 뵙다 보니 어느새 낯익은 얼굴이 되었다. 어느 날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드리자, 그냥 지나치실지도 모른다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안녕하세요!”라고 대답하며 웃어 주셨다. 그 후로는 마주치면 서로 웃으며 인사하게 되었다.

내가 그분들께 관심을 두는 이유는 그분들의 모습이 나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분들도 나도 모두 노동자, 그중에서도 ‘여성 노동자’다(내가 생각하기에 연구, 조교, 번역, 과외 등 대학원생들이 주로 하는 일을 생각해 보면 대학원생은 고용의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직, 임시직 노동자이기도 하다). 금수저가 아니면 사람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신자유주의가 만든 야만의 세계에 내팽개쳐지는 현실 속에서, 학력 인플레의 시대에 돈 안 되는 전공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대학원생 되기를 택한 나는 그래도 삶을 똑바로 바라보고, 사랑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분들의 일상을 모른다. 짐작만 할 뿐이다. 늘 바쁜 그분들의 모습에서, 학생들이 그분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정수기 앞 물통에 무신경하게 버린 갖가지 음료와 그 안에 둥둥 떠다니는 티백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화장실 휴지통에서, ‘여사님들의 손끝에서 인재가 탄생하는 환경이 만들어집니다’라고 격려하듯 을러대는 환경 미화 점검표에서,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벌어들이면서 미화원 휴게실은 물이 새는 어두컴컴한 곳에 만들었다는 한 대기업에 대한 기사에서, 그분들이 매일 대하는 사람들은 그분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조금은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슬픈 풍경이다.

나는 감히 동학들께 그분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 주시기를 청한다. 낡은 책 속의 고리타분한 말이라도 좋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자신의 밥을 버는 삶은 존귀하다. 우리가 정의를 원한다면 금수저인지 은수저인지 아무튼 수저보다는 부끄러움 없는 노동을 더 귀하게 여겨야 하지 않겠는가.

영국의 영화감독 켄 로치는 영화 <빵과 장미(Bread and Rose, 2000)>에서 청소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빌려 “우리는 빵뿐만 아니라 장미도 원한다!”고 외친다. 우리는 밥도 먹어야 하고, 장미 한 송이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그 향기를 음미할 수 있는 시간도 누려야 한다. 나는 장미 한 송이를 건네는 마음으로 그분들께 인사할 것이다. 내 행동은 아주 작은 것이고, 너무 작아서 알 수도 없는 그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그도 분명 변화이다. 행동은 세계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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