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환 /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

[자유발언대]

20대 총선 감상평

이주환 /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

총선이 20일가량 지났다. 2천 4백만여 명의 권리행사로 이루어진 그 큰 그림의 의미에 대해 필부들도 몇 마디 보탤 때가 됐다. 서울 서남권 20년 된 빌라에 전세 들어 사는 30대 후반 남성 유권자로서, 별 볼 일 없으나마 감상평을 남겨둔다.

첫째, 이번 총선은 명백하게 정책이 실종된 선거였다. ‘발목잡기 야당 심판론’ ‘경제실정 정권 심판론’ ‘양당 기득권 타파론’ 등이 외쳐졌으나, 그 담론들 안에는 어떤 정책을 통해 삶의 변화를 이끌어낼지에 대한 설명이 결여되어 있었다. 선거에서 정책이 실종되면 ‘타산적 사고’보다 ‘은유적 사고’가 활성화된다. 공약의 결과가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따지기보다는, 각 정치세력을 선과 악의 이야기 속 등장인물에 비유하여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호남홀대론, 즉 ‘가족을 홀대하는 무책임한 가장’으로서 문재인 전 대표의 표상에 기반한 정치적 입장은 타산적 고려와 괴리된 은유적 사고의 전형이다.

둘째, 이번 선거결과를 통해 기존 정치 메커니즘이 붕괴됐다. 즉, 지역주의와 야권연대의 승리공식이 깨졌다. 기존 정치공식에 기반해 선거결과를 예측하려는 여론조사도 실패했다. 낡은 것이 무너진 자리를 차지한 것은 비슷한 무게를 가진 ‘범보수(새누리+무소속)’와 ‘범진보(더민주+정의당)’ 사이, 여전히 정체성이 불명확한 ‘새정치(국민의당)’라는 구도다. 여기서 어떠한 메커니즘이 형성될지는 아직 불확정적이다. 요컨대 정치사회학자 쉐보르스키가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원리라 칭한, “선거경쟁 과정의 불확실성의 제도화”로서 민주주의 원칙의 확립은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한 과제다.

셋째, 이번 선거결과는 1997년 총파업의 유산으로부터 발원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에 대한 파산선고에 가깝다. 민주노총이 지지한 후보 중 20대 총선 당선자는 3명이다. 진보를 표방하는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 민중연합당 등이 획득한 정당투표 지지율은 8.95%였다. 요컨대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의 현 상태는 2004년 민주노동당 시절의 정점과 비교할 때, 많아야 반 토막 남짓, 최소로 잡으면 3분의 1로 축소됐다.

한때 진보정당의 당원이었던 나는 이번 선거결과에 안도감만큼 불안감도 느낀다. ‘정권심판’이 이루어진 것은 다행이지만, 정치와 삶의 간극이 더 벌어지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전히 핵심과제는 민주주의다. 필부들의 생활세계에서 구체적인 변화를 지향하는 풀뿌리 민주주의다.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노력이 바로 지금 시작돼야만, 새로운 정치구도가 안정성을 찾고 진보정치가 부활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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