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니 / 첨단영상대학원 영상학과 석사과정

[자유발언대]

완전 영화의 신화

이유니 / 첨단영상대학원 영상학과 석사과정

5년 전 호주 지하철역에서 머리를 다쳐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묽고 새빨갛게 쏟아지던 피, 허공 어딘가를 응시하며 풀려있는 동공. 영화나 TV에서 꽤나 봤을 법한 장면을 실제로 목격한 순간은 미디어로 접했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심장이 두근거렸고 손발이 떨렸다. 두려움과 흥분 사이에서 요동치는 감정이 낯설게 느껴진 것은 시각만이 아닌 온몸이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극단적인 기억이 없었다면, 나에게 무언가를 경험했다던가 안다는 것의 의미는 피상적 차원에 머물렀을 것이다. 시각 미디어가 선사하는 것은 나의 경험도, 기억도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최근 3D, 4DX와 같이 영화가 점차 체험적으로 나아가는 현상은 어떻게 이야기해볼 수 있을까.

영화기술사에서 영화는 흑백에서 컬러로, 무성에서 유성으로의 진화에서부터, 시네라마, 시네마스코프 등의 스크린 실험, 그리고 디지털 3D에 이르기까지 여러 기술적 실험과 변화를 겪어왔고, 여기서 화두는 당연히 ‘현실의 재현’ 혹은 ‘관객 몰입감’이라는 이중의 욕망에 있었다.

앙드레 바쟁은 <완전영화의 신화>에서 영화 기술의 발전은 완전한 리얼리즘이라는 신화, 즉 이미 선구자들의 상상력 속에 존재하고 있었던 ‘관념의 영화’에 대한 실현이자 결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의 의견에 기대보자면, 어쩌면 영화의 테크놀로지가 궁극적으로 원했던 것은 이제까지의 기술은 결코 선사할 수 없었던 (물론 이것이 기술적 미비함에 있다기보다는 경제적인 상황에 좌우된 측면이 더 크겠지만) 현실을 마주하는 모든 신체 감각의 재현인지도 모른다(이 경우 이중의 욕망은 하나가 된다). 이렇게 따지면 영화의 3D, 4DX로의 진화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진정한 영화로 나아가기 위한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상황의 제시가 아닌 상황의 유발, 그리고 그것이 실현된다면 영화는 어떻게 정의되어야 할까.

하지만 완전영화라는 것은 바쟁이 지적했듯이 ‘신화’일 뿐이다. 리얼리즘의 재현은 ‘대중’ 예술의 한도 내에서 부분적으로만 가능해질 것이라는 말이다. 누가 돈을 내고 영화관 좌석에 앉아 나의 5년 전 경험과 유사한 공포감을 맛보고 싶어 하겠는가. 이카로스의 날개가 그러했듯, 아마 영화는 완전 영화라는 신화에 미처 도달해보기도 전에 리얼리즘의 태양 앞에서 녹아내릴 것이다. 물론 어쩌면 개봉영화가 <검사외전> 뿐인 듯한 요즘 한국 사회에서 이와 같은 매체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 자체가 신화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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