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7.6.14 수 22:31
기획
[원우비평]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터지는 웃음최보윤 / 문학예술콘텐츠학과 석사과정
정석영 편집위원  |  yaep@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336호]
승인 2017.06.06  02:33:27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원우비평 - 연극 <지상 최대의 농담(오세혁 作, 문삼화 연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터지는 웃음

최보윤 / 문학예술콘텐츠학과 석사과정

 

  방 안에 다섯 명의 전쟁포로들이 모여 있다. 곧 새로 잡혀 온 소년병이 방안에 들어서는 동시에 10분마다 한 사람씩 처형될 것임이 예고된다. 모두가 자기 자신을 위해 그 10분을 살고자 할 때 ‘을식’은 어른이 아이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자신에게 남은 10분을 아이를 위해 쓰겠다고 선포한다. 그렇게 <지상 최후의 농담>에서 첫 번째 농담은 을식에 의해 ‘아이’를 위한 것, 가장 선한 의지로 시작된다. 하지만 그 아이, ‘경종’이 정작 처음으로 웃게 되는 시점은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을식의 한마디부터다. 미래가 없는 상황에서 미래시점으로 이야기하는 을식의 말들이 소년병을 웃기고 그 웃음은 가장 선한 의지로 시작된 ‘삶의 농담’을 ‘죽음의 농담’으로 변모시키는 터닝 포인트가 된다. 죽음을 인지한 자의 웃음이 명백한 아이러니를 형성하는 상황, 인물은 웃어도 관객은 따라 웃을 수 없다.

  소년 대신 첫 번째 사형수를 자처해 가장 먼저 죽음을 맞는 을식은 극 중 가장 선하며 모범적인 사례가 된다. 총살 직전까지 농담하며 웃는 그는 남은 인물들의 ‘롤모델’이 되며 방 안에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남은 포로들이 새로 인지한 문제는 확정된 죽음 앞에서 ‘어떻게 남은 시간을 살아내느냐’가 아닌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전자의 문제는 삶에 대한 파토스를 완전히 배제하지 못하기에 죽음에 대한 수용으로 직결되지 못한다. 하지만 후자는 먼저 죽음을 수용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파토스를 일으킨다. 그러한 파토스는 ‘웃음’에 대한 강한 열망이 되고 인물들의 목표가 되어 극을 전개한다.

  일반적으로 ‘웃음’이란 삶에 대한 긍정성에서 나온다. 그래서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터지는 이들의 웃음은 가장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해야 하는 실존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인간이 마주하는 생의 아이러니이자 몸부림이다. 웃으며 죽기 위한 인물들의 노력은 간수병 ‘기평’의 개입으로 다시 살기 위한 경쟁으로 바뀌었다가 비열한 폭로와 폭력으로 변질된다.

   
 

  처음에 경종은 보호받아야 할 ‘어린애’였지만 극 후반에 가서 그 어린애 역시 한때 포로군을 총살했음이 드러나고 노인에게 폭력을 행하면서 인물에 대한 인식이 전복된다. 전시라는 죽음의 장 속엔 완전한 피해자도 완전한 가해자도 없다. 전적으로 선한 인물도 없는 것처럼 전적으로 악한 인물도 없다. 오세혁 작가의 인간에 대한 이런 인식론은 평범하고 전형적일 수 있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구현하여 무대 밖 인간들의 ‘거울’이 된다. 살기 위해 자신의 나이를 내세우는 ‘갑돌’은 결국 자신의 바람대로 최후의 1인이 되어 홀로 방안에 남는다. 극 중에 오세혁 작가가 가장 탁월하게 짚어낸 지점은 바로 여기다. 가장 오래산 노인이 가장 오래 죽음을 기다리게 되는 상황. 이때 갑돌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닌 고독을 겪는다. 죽은 자들의 환영이 나타나고 아무도 듣지 않는 농담을 시작하는 갑돌을 통해 작가는 죽음을 기다리는 일보다 더 무서운 것은 고독을 견디는 것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극 중 페이소스, 즉 연민을 자아내는 힘은 가장 어린 나이에 죽는 경종이 아닌 노인 갑돌에게 있다.

  <지상 최후의 농담>은 죽음을 통한 인간 실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어떻게 죽음을 맞느냐 하는 문제는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란 질문의 극단이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고 선과 악,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을 판가름하지 않는 작가의 시선은 그래서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인식론적 깊이를 보여준다.

  제38회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작인 이 극은 5월 17일부터 28일까지 서울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앙코르 공연되었다. 2015년, 선돌극장에서 초연된 적 있는 <지상 최후의 농담>은 올해도 같은 연출·배역으로돌아왔으며 포스터까지 초연 때와 같다. 초연 때 이후 재관극하게 된 이번 공연은 전과 같은 연출을 보여주며 그 밀도와 완성도가 더 높아졌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예술의 스타일은 어떤 방향성을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력을 갖는다(옥타비오 파스).” 오세혁 작가의 <지상 최후의 농담>이 하나의 스타일에 고착되지 않을 만한 생명력을 갖고 있음은 분명하기에 다음엔 어떻게 또 다른 최후의 농담이 창조될지 기대할 만하다.

<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관련기사]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56-756 서울 동작구 흑석동 221 학생문화관 2층 언론매체부(중대신문 편집국)  |  대표전화 : 02-820-6245  |  팩스 : 02-817-9347
인터넷총괄책임 : 방송국장 | 게시판총괄책임 : 편집국장 | 청소년보호책임자 : 편집국장
Copyright 2011 대학원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au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