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 / 문학예술콘텐츠학과

[원우비평 - 문학예술 비평 ]


쪼개진 소설

김태완 / 문학예술콘텐츠학과 석사과정

  소설을 이해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시대 배경이나 작가의 생애를 분석하는 외재적 접근, 소설의 3요소로 불리는 주제·문체·구성을 따져보는 내재적 접근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핍진성, 환상성 등으로 작품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다. 방식이 다양한 만큼 한 가지를 고수하기보다는 여러 방법을 채택하는 편이 소설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그러나 소설은 고급 독자만을 위해 창작되는 예술이 아니다. 시대 배경을 고려할 정도로 모두가 역사에 해박하지도 않을뿐더러 작가의 생애를 관통하기에 책날개에 적힌 프로필은 짤막할 따름이다.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으면 주제나 문체를 분석하기 역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재미가 없어 책을 중간에 덮어버린 독자는 영영 그 소설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사전 지식 없이도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요소가 소설에는 존재한다. 모든 소설에 존재해 너무나도 당연하게만 느껴지는 인물·시간·배경, 이른바 구성의 3요소이다. 구성의 3요소는 함께 움직인다. 어떤 장소에서 어떤 인물이 어떤 사건을 맞닥뜨린다. 이것이 이야기의 기본이자 서사 장르의 전통이다. 김엄지의 단편소설 <예지 4(문장 웹진 2016년 3월호)>에도 구성의 3요소는 존재한다. 다만 인물·사건·배경이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 단락마다 인물·사건·배경이라 소제목을 붙이고 그에 맞는 내용만을 서술함으로써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인물 단락에서는 사건과 배경이 배제된 채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타고난 성격이 있을지라도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입체적인 성격을 창조하는 것이 소설의 목표라면 상황을 표현하는 요소인 사건과 배경이 제외된 김엄지의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인물들은 기존의 소설과 궤를 달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인물의 이름을 철수나 영희 같은 대명사가 아니라 알파벳 소문자로 명기하여 인물들의 개성을 삭제시키기까지 했다. 몰개성한 인물에게 감정 이입하기 어려워 보일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색깔 없는 인물들은 불특정 다수의 입장을 대변하는데 효과적이다. 또한 개성이 없는 인물일수록 독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투영하기에 편리하다. 그때부터 소설은 작가가 독자에게 들려주는 어떤 인물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도 겪었고, 앞으로도 겪을 수 있는 이야기로 변화한다.

  사건·배경 단락도 나머지 두 요소가 배제된 상태로 전개된다. 결혼한 전 애인을 만나 하룻밤 술을 마셨다는 ‘c’의 이야기가 사건 단락의 전부다. 배경 단락은 인물들이 일하는 사무실의 풍경을 그릴 뿐이다.

  물론 각각의 단락에 다른 요소가 완전히 배제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사건 단락에 배경이 제시되기도 하고, 배경 단락에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얼핏 오류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작가가 실험적인 구성을 택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사건 단락에서의 배경은 서사의 흐름과 연관성을 지니지 않는다. 배경이 섬이 되었든 외국이 되었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사건을 겪은 ‘c’의 감정이다. 패배감과 무기력증, 무슨 일을 하더라도 바뀌지 않을 답답함, 반복되는 일상에서 비롯된 현대인의 뿌리 깊은 고독은 장소와 무관하게 범람하기 때문이다. 배경 단락에 등장한 인물들은 사무실에 비치된 비품처럼 표현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은 더 이상 존귀한 존재가 아니다. 소모품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인물을 배경과 다를 바 없이 처리하는 것 외에 더 효과적인 풍자가 있을지 의문이다.

  <예지 4>의 실험이 유효한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구성의 3요소를 충실히 갖춘 소설이나 최소 단위로 쪼개놓은 것만 같아 전통적인 형식에 익숙한 독자라면 접근이 어려울 수 있다. <예지 4>뿐만 아니라 최근의 한국 문학에서는 반(反)서사, 지식조합형 소설을 일군으로 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오랫동안 정석처럼 받아들여지던 전통적인 소설 형식에 젊은 작가들이 반기를 든 셈이다. 어떤 형식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실험적인 소설을 난해하다고 평해서만은 안 된다는 것이다. 실험의 의도와 결과를 먼저 따진 뒤에 평을 해도 늦지 않다. 수많은 실험 중의 하나가 한국 문학의 미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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