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슬 / 예술학과 박사과정

 [원우비평 -사진예술 비평]

시선의 이중성


정지슬 / 예술학과 박사과정

  요즘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시선’이라는 단어는 예전처럼 쓰이는 것은 아니다. 시선은 21세기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 보이지는 않지만 강력하게 작용하는 무언의 권력적 체계를 지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선의 탄생은 언제부터였을까.

 
 

  문자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 우리는 ‘신’이나 ‘왕’과 같은 절대 권력을 이미지로 형상화할 때 다른 이미지와의 크기 차이를 통해 그 권력과 위세를 나타내었다. 이는 ‘원근법’과 함께한다. 원근법은 시각적 효과의 정신적 기록이다. 시각적 재현을 통해 의식적 권력을 기록했다는 것은 이미지의 힘을 사회의 신념과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다소 한정적이던 회화의 소재가 사진의 탄생을 통해 이미지 주체의 다양화로 변화되면서, 이를 통해 부르주아들은 신분이라는 권력에서 다소 자유로워졌고 권력과의 융합을 꾀하게 되었다. 시선과 권력은 이렇게 시각화(visualization)라는 작용을 통해 또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시선의 힘을 인지, 활용한 작가로 파블로 피카소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시선의 발현으로 ‘큐비즘(cubism)’이라는 하나의 사조를 만들어 냈다. 큐비즘은 당시 주를 이루고 있던 분자학처럼, 2차원의 면(面)으로 세상을 보는 방식의 역발상이었다. ‘큐비즘’과 사진과의 공통분모를 보자면 그것은 바로 ‘대상화’라고 볼 수 있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엔 다양한 정보가 산재해 있지만 그것을 보는 눈은 우리에게 있다. 피카소의 ‘큐비즘’은 바로 이러한 주체적 시선을 대상화하고 있다. 반면 사진은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소유할 수 있게 그 무엇으로 변형시켜버리는, 일종의 연금술로 대상화를 가린다. 현실을 투명하게 보여준다고 높이 평가받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결국 우리의 손을 통해 객관적이지 않은 매체가 되는 것이다. 사진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모순된 특징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또 사진을 통해 대상화하지만 결국 객관적이지 않은- 을 하나로 묶어 주는 장점을 이용하여 주관적인 시선이 객관화되어버리는 만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의 체험은 시각적 체험 중심의 시각화에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시각적 체험을 통해 의식이 지배당하는 스크린 시대에는 관점(perspective)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본다’는 행위에 편견이 점점 관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 구성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관습과 유사한 성격을 띤다.
결국, 우리는 보고 싶은 것(주관적 시선)을 객관적 시선으로 변환,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악수(惡手)를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엔 보는 ‘주체’와 보임을 당하는 ‘대상’ 사이에 거리감이 개입된 객관적인 상황으로 위장되어 있지만, 그 실체는 결국 주관적인 시선에 지나지 않는다.

  지젤 프로인트(Gisele Freund, 1908~2000)는 저작인 《사진과 사회(성완경 옮김, 눈빛, 2006)》에서 ‘시각성’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시각적인 존재의 필수 조건’ 혹은 ‘관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으로 규정한다. 이는 문학 및 다른 학문에서의 ‘텍스트 분석’에 비유할 수 있다. 시선에 대한 권력구조는 군주의 탄생과 유사한 과정과 기능을 띄고 있다. 권력은 보이지 않지만 가장 강력한 무기이고, 사진 또한 현대 사회에서 객관적이지만 주관적인 방식을 통해 역설적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다. 즉 어떠한 권력이 생성되고, 우리가 그 권력에 부여한 힘이 커버리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그 권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이용당하는 상황에 치닫게 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사진은 파놉티콘(Panopticon)의 기능을 띌 수밖에 없다. 처벌과 감시라는 것이 일종의 권력 드러내기라면, 사진은 드러냄을 통해 처벌과 감시를 암시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시선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에 굴복하게 만든다.이렇듯 시선이라는 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되어 왔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시선이라는 화살표를 보기 전에 내 안의 ‘시각’이라는 나침반을 먼저 만들어야 할 것이다. 나침반 속의 시선이라는 화살표를 보기에 앞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가려져 있든지 간에 그를 구별할 수 있는 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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