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종 / 영상학과 석사과정

[원우비평] 영화 <건축학 개론(이용주, 2012)> 
 

<건축학 개론>과 상기의 힘

 

오형종 / 영상학과 석사과정 
 


  멜로는 본디 과거 지향적이다. 멜로 영화의 정서적 공감은 인물이나 내러티브 같은 영화적 수단들 외에도 관객 개개인의 기억과 추억에 많은 부분을 의존한다. 예를 들면 멜로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이 ‘아 그래, 그랬어. 맞아, 저랬지’하는 식으로 반응하듯 말이다.


  <건축학 개론>은 첫사랑에 관한 영화이자 미숙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이며 또한 기억과 시간에 관한 영화다. 승민(이제훈 분)은 건축학 개론 수업에서 만난 서연(수지 분)을 짝사랑하지만 첫사랑의 결실은 이루어지지 않고, 서연은 승민의 기억 속에 상처로 남는다. 훗날 승민이 서연을 다시 만났을 때 이 과거의 상처는 현재에서 다시 개복된다. 영화는 승민의 기억을 훑어가면서 과거로 떠나고 동시에 관객은 곧 과거의 자신, 이루지 못한 옛사랑에 대한 기억을 가진 자신을 마주하는 여정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 여정을 통해 우리는 첫사랑에 대처하는 미숙한 우리의 모습과 실수들을 재발견한다. 말하자면 어린 시절 가졌던 열등감과 ‘이루지 못한 사랑의 원인을 환경과 사회적 격차로 돌리며 종국에는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을, 순수한 자신을 짓밟은 속물 취급하는’ 비겁함 같은 것이다. 또는 서로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해서 생기는 오해와 함께 인연을 마무리하는 미숙함 같은 것 말이다. 이렇듯 첫사랑은 흔히 추억보다는 미련과 후회의 감정으로 기억되기 마련이다.

 
 


  <건축학 개론>에서 두 사람의 내면 이야기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다. 승민의 기억은 과거에서부터 현재로 순차적으로 나아가지만 서연의 내면은 현재로부터 과거를 향해 나아간다. 좌절된 꿈과 남편과의 이혼, 그리고 병든 아버지를 간호하느라 현실에서의 주춧돌을 잃어버린 서연은 급기야 승민(과거)을 찾아가고 부서진 낡은 집의 재건을 부탁한다. 부서진 집의 복원은 곧 서연의 내면을 복원하고 자신을 바로 세우는 일이며 서연이 스스로를 복구하기 위해 의지한 것은 미결 상태였던 과거의 첫사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5년이 지나서야 두 사람은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된다.


  승민은 서연의 집을 리모델링하기 위해 트렌디한 디자인들을 제시하지만 결국 서연이 선택한 것은 기존의 구축물을 그대로 남겨두고 새로운 모습으로 증축한 디자인이다. 여기서 이 영화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드러난다. 사랑이든 삶이든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 위에서 증축되고 리모델링 되는 것이란 점이다.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의 말에 따르면 시간이란 나란 존재와 연결되어있는 어떤 조건이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분위기다. 즉, 인간은 기억을 통해 시간을 인지한다. 추억과 기억을 상실한 인간은 껍질뿐인 삶을 사는 셈이다. 회상, 기억은 우리의 존재와 자존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초대 그리스도교가 낳은 위대한 철학자, 사상가인 아우구스티누스는 현전하는 과거가 현재의 전제 조건이며 인간은 회상을 통해 현재의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하였다. 과거의 실수나 경험을 회상함으로써 현재의 자신을 재발견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기억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하나로 연결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게 하는 능력, ‘상기의 힘’이다.


  영화의 두 주인공은 과거의 기억을 통해 오해를 풀고 첫사랑의 상처를 극복하게 된다. 서연 역시 자신의 집에 피아노 방을 만들며 본연의 자신(피아노 학원 출신의 음대생)으로 회기 해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살 수 있게 된다. 결국 <건축학 개론>은 미숙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이며 상기의 힘을 불러일으키는 기억과 시간에 관한 영화인 것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며 다시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새롭게 미래를 살아가는 힘과 위로를 받게 된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고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 생기는 요즘 같은 시국에는 이 상기의 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과거를 돌아보며 우리의 미숙함과 오류를 반성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확보하는 일 말이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도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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