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현진 / 예술학 박사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개념을 통한 무속 이미지의 의미 확장성 연구』 공현진 著 (2023, 예술학과 예술컨텐츠전공 박사논문)
본 지면은 학위 논문을 통해 중앙대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 성과가 있는지 소개하고, 다양한 학과의 관점을 교류하고자 기획됐다. 이번 호에서는 예술학과 공현진의 박사 논문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개념을 통한 무속 이미지의 의미 확장성 연구』를 통해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개념을 살펴보고, 해당 개념을 통해 무속 이미지에서의 의미가 무엇인지 함께 연구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현실에 존재하는 유토피아, 헤테로토피아

 

공현진 / 예술학 박사

 

  거꾸로 뒤집은 의자, 거기에 이불을 덮어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형태. 마치 인디언 텐트를 연상케 하는 비밀스러운 장소, 작은 몸만 가까스로 들어갈 수 있는 비좁은 공간. 아이들은 자주 이와 같은 장소를 꾸린다. 어린 시절 연구자만의 ‘비밀장소놀이’에 빗대어 표현해 본 위와 같은 행위는, 현실 속에 유토피아(Utopia)적 공간을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
  유토피아란, 그리스어로 ‘없다’는 뜻의 ‘U(ου)’와 ‘장소’라는 뜻의 ‘Topos(τοπος, τοπία)’를 합친 말이다. 즉, ‘어디에도 없는 장소’인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 철학자 미셸푸코(Michel Foucault)는 1966년 자신의 저서 《말과 사물(Les mots et les choses)》에서 현실 속에 존재하는 유토피아적 장소 개념으로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를 처음 언급했다. 헤테로토피아란 장소를 뜻하는 Topos 앞에 ‘다른’이란 뜻을 가진 ‘Hétéros(ἕτερος)’를 합성한 말로, 직역하면 ‘반(反) 공간’이다. 이는 곧 ‘현실 속에 자리한 유토피아적 장소’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완벽한 유토피아적 장소라는 것이 현실 속에 구축될 수 있는 것인가. 이에 푸코는 근대의 다양한 장소 형성과정에서 소위 지배자로부터 생성된 정치와 권력이 오늘날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가령 주류사회의 역사 속에서 비주류로 구분된 사람들은 그를 위한 터와 공간에 알맞게 배치됐고, 지금까지도 주류와 비주류의 공간과 장소를 구분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같은 시기에 동시다발적으로 형성됨에 따라 지금도 우리 주변 곳곳에는 암묵적인 타자들이 존재해왔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푸코의 헤테로토피아적 공간은 그런 의미에서 현실 속의 유토피아적 공간들을 나열하고 있는 듯 보이나, 그것을 결코 이상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삶의 진실을 들춰보고, 그것들이 어떠한 계보에 따라서 장소와 터의 역사로 정착됐는지를 곱씹어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삶을 비추고, 정화하는 무속 이미지

 

  그렇다면 한국에서 이러한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허물고, 삶의 진실을 찾고, 현실 삶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했던 문화적 원형은 무엇이었을까. 연구자는 그것이 바로 무속이라고 봤다. 한국의 무속은 감춰지고 배척된 인간 삶을 꺼내어 곱씹고, 현실의 삶을 더욱 잘 살 수 있도록 마음으로 섬기고 보살펴 온 문화적 원형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시각예술작가로 활동하는 연구자의 예술 프로젝트에 깃든 조형적 특징을 ‘무속 이미지’의 개념으로 제안한다.
  무속 이미지는 두 가지 유형으로 설명된다. 첫째, 감각적·조형적인 상(像)이며, 둘째, 관념적·초월적·심리적·문화적 정서로서의 상(像)이다. 무속 이미지는 ‘광명 이미지’와 ‘정화 이미지’로 나뉘는데, 광명 이미지는 고조선의 건국이념 중 하나인 광명이세(光明理世)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뜻은 ‘빛으로 나아가는 상태’이다. 가령 무속에서 의식을 시작하기에 앞서 초를 켜는 것, 민속에서 달집태우기를 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정화 이미지는 생(生)의 현장과 밀접하게 연결돼 민중의 삶을 환기하는 유토피아적 원리로 작동된다. 가령 무속에서 굿이 삶에 깃든 한(恨)을 풀이하듯, 정화 이미지는 놀이를 통해 인간의 슬픔을 곧 웃음과 해학의 장으로 전환한다. 다시 말하면 광명 이미지는 삶을 비추고, 정화 이미지는 생을 환기하는 것이다. 무속은 민중의 삶을 풀이하고, 배척된 삶, 억울하게 죽은 망자를 드러내고 명복을 빌며 현실의 삶을 직시하고 정화하게 한다. 그리고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또한 그와 같은 기능으로 오늘날 다양한 장소와 공간에 감춰진 권력과 욕망 그리고 배척의 역사를 드러냈다.

 

무속 이미지를 근간으로 한 나의 예술 활동들에 대한 회고

 

 
 

  어릴 적 맞벌이하는 부모의 부재로 주로 할머니들의 보살핌 속에 자랐다. 또한 자식을 위해 기도하거나 가족의 무탈한 삶을 염원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다양한 기도행위를 간접 체험하며 성장했다. 굿, 기도 등의 경험은 ‘인간은 궁극적으로 의식적 행위를 통해서 무엇을 염원하는가’,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을 어떻게 가시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을 탐구하고 의인화하는 조형 작업을 시작으로 점차 소외되고, 버려진 터를 섬기는 마음, 나아가 삶의 현장에 대한 관심으로 연구 대상이 확대됐다.
  본 논문에서는 위와 같은 관심사에서 비롯된 연구자의 예술 프로젝트를 헤테로토피아와 무속의 관계성에서 착안한 이론적 고찰을 토대로 분석한다. 방법론으로는 3가지 가설을 제시하는데, 첫째 장소기반 공동체, 둘째 삶과 죽음 기리기, 셋째 예술가의 영성(靈性)이 바로 그것이다. 이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으로는 한국의 가신신앙(家神信仰)과 장소, 축제와 놀이, 꼭두 조각, 제(祭)의식과 부적쓰기, 나아가서는 예술가의 영적 오브제와 민중미술에 나타난 샤먼 리얼리즘의 개념까지 살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론을 2016년부터 재작년까지 연구자가 실제로 진행했던 예술 프로젝트 사례를 통해 총 5가지의 키워드로 분류해 분석했다.
  첫째로 〈기도골목〉(2016)과 〈걱정을 써드립니다〉(2016) 프로젝트는 ‘액막이 행위’라는 키워드로 분석됐다. 둘째로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포스터궐기 및 반대행진〉(2019), 〈당신의 고민을 들어드립니다〉(2020), 〈공공의 신(神) 프로젝트〉(2020) 프로젝트는 ‘샤먼으로서의 예술가’라는 키워드를 통해 봤다. 셋째로 〈중구문화예술거버넌스〉(2019~2020), 〈창작의 민족, 불쏘시개〉(2019), 〈예술가의 자리찾기〉(2021) 프로젝트는 ‘지역 기반 예술 공동체’를 키워드로 분석했다. 넷째로 〈놀놀파티〉(2018~2020), 〈개꿀단〉(2019~2020) 프로젝트는 ‘축제와 놀이의 장’으로 분석됐다. 마지막으로 〈코로나 백신(百神)연구〉(2020), 〈신(神)들의 마을〉(2021), 〈비대면 꼭두 조각극(劇)〉(2021) 프로젝트는 ‘팬데믹 시대의 사라진 장소성’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연구자가 제안하는 용어 ‘언택트 헤테로토피아’를 키워드로 살펴봤다.
  위 활동들을 분류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연구자가 느낀 것은 연구자의 예술 프로젝트가 오늘날 장소특정성에서 나아가 지역이라는 더 넓은 범주로의 구심점을 만들고, 자발적 동네 네트워크까지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네트워크의 형성은 곧 연구자만의 무속적 방법론을 통해 작품에서의 초월적 소통 가능성을 모색하며, 관람자의 능동적 참여를 이끌어냈다. 나아가 연구자 개인에게 이러한 무속 이미지는 오늘날 연구자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는 영적 교감의 통로이자, 영성에 영향을 미친 주요한 창작 원동력이 됐다.

 

인간 존재성 회복과 문화적 연대의 해방구로서의 예술

 

  지금까지도 시각예술분야에서 작가로 활동하며 예술 현장에서 다양한 프로젝트와 작품 활동을 지속해올 수 있었던 궁극적인 이유는 전시장에 찾아온 관람객들과 마주하며 느낀 자전적 경험들 때문이다. 공간은 일부 예술 프로젝트에서 화이트큐브가 아닌 용도 폐기된 공간을 재활용하거나, 재생된 장소를 예술적 공간으로 활용했다. 이 때문에 전시장에 찾아왔던 관람자 중 일부는 동네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전시장에 방문하게 된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가령 난생 처음 전시장에 와 무엇을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를 묻던 할머니, 반나절을 작품 앞에 서서 감상하다 다음 날 또다시 방문한 할아버지, 연구자가 써준 부적이 고마워 늦은 오후 다시금 전시장에 찾아와 음료 박스를 건네던 아주머니, 작품 앞에서 고해성사하듯 잘못을 뉘우치는 아저씨, 미래가 불투명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모르겠다던 청년, 설치된 작품을 바라보고 죽은 이를 떠올리며 눈물 흘리던 여학생 등 관람자들은 연구자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위와 같은 경험에서 기복신앙(祈福信仰)을 근간으로 삶을 풀이하고 정화하려는 연구자의 무속적 감수성을 일깨울 수 있었다. 나아가 오늘날 예술이야말로 과거 한국 무속과 같이 우리 삶의 본질을 살피게 하는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결과적으로 위와 같은 생각들을 바탕으로 한 예술 프로젝트는 인간 존재성 회복과 문화적 연대의 해방구로서 헤테로토피아를 생성한다. 또한,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개념과 무속 이미지를 토대로 살펴본 동시대 예술의 본질적 의미는 삶의 모순과 배척된 생의 현장에 대한 관심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예술가는 오늘날 예술 의미의 확장에 기여하며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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