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현진 / 예술학 박사

 

삶을 밝히는 헤테로토피아로서의 무속, 그리고 예술

 

무속 이미지에 내재한 헤테로토피아적 특성을 3가지 가설로 분석한 것이 의미 확장에 대안적 접근이 됐는가
  ‘장소 기반 공동체’, ‘삶과 죽음 기리기’, ‘예술가의 영성’은 본 논문에서 무속 이미지에 내재한 헤테로토피아적 특성으로 제시한 3가지 가설의 키워드이다. 이는 연구자가 작가로 활동하며 진행했던 예술 프로젝트들에 영감을 준 다양한 한국 무속과 민속에서 비롯된 컨텐츠들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서술됐다. 그러한 연구과정에서 느낀 것은 오늘날 한국에서 무속의 의미가 지나치게 엑스터시(Ecstasy) 현상으로만 각인돼 온 경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무속 이미지에 내재한 특징을 푸코의 시선에서 살펴보며, 무속이 우리 삶에 어떠한 영향을 줬고, 어떤 역할들을 해 왔는지에 집중했다. 이러한 접근은 무속의 본질적 의미를 다시금 헤아려보는 데 도움이 됐다.
  무속에서 다양한 제의와 의식적 행위가 벌어지는 것은 항상 특정한 터와 장소를 기점으로 이뤄졌다. 가령 가신신앙에서는 집 곳곳에 특정 신의 존재를 섬기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장소 특정적 행위는 무탈한 삶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래전부터 인간이 하나의 터를 거점으로 공동체를 이루며 더불어 살아왔기에 이는 장소 기반 공동체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또한, 삶과 죽음을 기리는 의식적 행위들은 꼭두와 각종 제(祭) 의식, 나아가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들에 대한 비방을 위한 부적 등을 만드는 행위로 나타났다. 이는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과 망자들의 삶까지도 평온하기를 바랐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무속에서는 인간의 성별, 신분을 떠나 모두의 삶이 공평하게 인식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다신(多神) 체제인 한국 무속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으며, 무속 안에서 다양한 신들의 위계를 평등하게 바라봤던 과거 무신(巫神)관련 선행연구에서도 확인된다.
  나아가 동시대 예술에서 예술가의 영성 그 자체에서도 무속적 특성이 기인된다고 봤다. 기실 예술가가 아니어도 모든 인간은 영성을 가지고 있다. 연구자에게 ‘예술가의 영성’이 특별했던 이유는 그것이 예술가 스스로가 선택한 ‘공감의 매개체’로 현실에 구현되기 때문이다. 공감의 매개체란, 예술가가 깊이 천착하고 실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되는 ‘영적 오브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영적 오브제를 다양한 언어로 제안할 수 있는 예술가는 곧 영성을 가진 자라 할 수 있다. 즉, 예술가는 오늘날 푸코가 말한 현실 속 유토피아로서 자신만의 영성에서 비롯된 헤테로토피아적 공간을 창출하며 동시대의 담론을 풍성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위 가설들은 연구자 예술 프로젝트를 분석하는 과정 안에서도 나름대로 의미 확장의 대안적 접근이 됐다.

 

■ 무속과 헤테로토피아는 어떠한 연관성을 갖고 있는가
푸코의 헤테로토피아는 일종의 현실화된 유토피아이자 모든 장소의 바깥에 있는 장소이다. 인류가 현실 속 유토피아를 짓고자 했던 모습들은 다양한 시기와 형태로 변모해왔다. 그런 과정 안에서 헤테로토피아는 때론 현실보다 더욱 이상적인 질서들을 만들어내 지배했고(식민지), 일정 기간 특정 시간에 위치한 사람들을 격리했으며(군대, 달거리에 들어간 여성), 온갖 욕망의 분출구로서 서사 없는 장소들을 만들어내 타락을 합리화하고(사창가),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 그리고 만인의 취향까지 박제했다(도서관). 그렇기에 헤테로토피아는 마치 인간 본연의 욕망 결정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들은 오히려 현실 삶에 깃든 다양한 모순들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이에 헤테로토피아는 본질적으로 현실에 반(反)하는 특성을 지닌다. 연구자는 이러한 헤테로토피아의 존재가 곧 삶의 다양한 배척된 장면들을 드러내고, 현실에 반(反)하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특성을 한국 무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부터 무속은 차별, 불평등, 세습되는 신분 사회구조, 정치와 권력 등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가장 높은 곳까지 광범위하게 많은 삶을 보살폈다. 그리고 감춰지고 배척된 망자의 마음까지도 소환해 풀이했다. 이는 특히 기득권 세력에서 벗어난 민중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또한 우리 삶의 본질을 찾고, 더 밝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들을 고민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런 이유에서 어쩌면 무속은 민중의 헤테로토피아가 돼 우리 삶에 깃든 모순된 현상들을 전면에 드러내며, 현실을 비추는 거울처럼 작용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헤테로토피아와 무속은 연관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 계획 혹은 진행 중인 후속 연구는
  먼저 후속 학술연구로는 ‘동시대 미술에 나타난 한국 무속의 의미’라는 주제를 가지고 학술발표를 준비 중에 있다. 이 연구를 토대로 동시대 미술 안에서 한국 무속을 토대로 한 기획 전시에 대한 컨텐츠를 조사하고, 관련 자료들을 탐구 중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작업 활동에 있어서는 한국의 꼭두 조각과 탈춤 등 각종 놀이문화에서 비롯된 컨텐츠를 다양한 예술 활동으로 재해석하는 것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조각 작품 활동이나 예술교육, 지역 예술 프로젝트로의 확장으로 연계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아울러 장기적인 계획으로는 조각 작품들을 토대로 하는 ‘조각극(劇)’ 형식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고자 한다. 조각극은 연구자가 만든 작품들이 스스로 자아를 갖고 움직이는 방식으로 작동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관람객과 함께 실시간으로 전시장에서 호흡할 수 있는 체험형 프로그램들을 구상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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