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민 / 공연예술학과 무용학 박사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특성으로 바라 본 컨템포러리 댄스 작품 연구』 안현민 著 (2022, 공연예술학과 무용학 박사논문)
본 지면은 학위 논문을 통해 중앙대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 성과가 있는지 소개하고, 다양한 학과의 관점을 교류하고자 기획됐다. 이번 호에서는 공연예술학과 안현민의 박사 논문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특성으로 바라 본 컨템포러리 댄스 작품 연구』를 중심으로 컨템포러리 댄스(Contemporary Dance) 작품이란 무엇인지 살펴봄과 동시에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관점에서 봤을 때, 컨템포러리 댄스 작품이 어떤 면에서 유의미한지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컨템포러리 댄스 작품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

 

안현민 / 공연예술학과 박사

 

  예술작품의 획일화된 장르가 무너지면서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고 있다. 컨템포러리 댄스는 움직임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현대의 작품이며 무용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와 관객 모두 한정된 관점으로 작품을 바라보곤 했다. 한편 초현실주의는 미술과 회화와 같은 시각 예술 장르에서 주로 다뤄졌으며 발레 작품에서 탄생된 용어이다. 그러나 공연예술에서는 초현실주의를 심층적으로 연구한 사례가 드물다. 이에 본 연구는 컨템포러리 댄스와 초현실주의 두 장르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초현실주의의 시작과 끝

 

  초현실주의가 다른 예술사조나 운동과 차별된 역사가 있다면 한 사람으로 시작해 그 사람으로 인해 끝이 났다는 사실이다. 초현실주의는 1910년대 문학과 예술계 사이에서 일어난 다다운동으로부터 탄생했다. 다다이즘(Dadaism)이라고도 불리는 다다(Dada)는 제1차 세계대전 말,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반이성·반도덕적 예술 운동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전쟁 중 지식인들의 도피처가 됐던 스위스 취리히를 시작으로 뉴욕, 바르셀로나, 베를린, 파리 등의 도시로 퍼져나가며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대량학살을 만들어내는 전쟁의 기존체제를 반대하는 등 다다운동을 발전시켰다. 이들은 정기간행물을 출판하고 예술가들과의 모임을 통해 그들의 주장을 연설하기도 하며 작품을 창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1922년 다다의 분열이 심각해졌는데 이 위기는 초현실주의가 수면 위로 등장하게 된 계기가 된다.
  다다운동에 참여했었던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은 심오한 인간의 정신세계와 무의식에 대한 탐구심이 강했다. 그의 무의식에 대한 궁금증은 정신의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아 초현실주의까지 다다르게 돼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간하는데 이르렀다. 브르통은 초현실주의에 관한 정기간행물과 저서를 꾸준히 집필하며 초현실주의의 정의, 특성, 정신 등에 대해 끊임없이 주장해나갔다. 이러한 초현실주의는 아티스트의 행방에 초점을 맞춰서 발전해 나갔는데, 다다가 전쟁에 머무는 정신세계였다면 초현실주의는 전쟁 후 생겨난 급격한 변화에 대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기본적인 이념에는 부르주아 계급의 필요로 생겨난 예술가의 경우 노동 계층을 절대 대변할 수 없다는 저항적 태도가 내재돼 있다. 이러한 이념으로 사회정치적인 이슈와 피할 수 없는 관계에 놓이기도 했지만 브르통은 끝까지 중심을 지켜가며 예술가들과 작업을 해 나갔다. 이에 따라 문학에서 시작해 시각예술, 공연예술 등 예술가의 초현실주의적 정신에서 비롯한 작품들이 장르와 관계없이 무수히 창작됐다. 하지만 1966년 브르통이 사망하면서 그를 기둥 삼아 발전됐던 초현실주의는 쇠퇴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 후 초현실주의는 현재까지 예술가마다 다른 방법으로 폭넓게 표현되고 있다.

초현실주의는 어떻게, 왜

 

  파울로 피카소, 앙리 로베르 마르셸 뒤샹, 만 레이 등의 미술작가들이 초현실주의의 중요한 역할로 활동하면서 초현실주의와 회화 사이는 좁혀져 갔다. 브르통은 1928년 《초현실주의의 회화》를 출판하며 초현실주의에서 회화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이러한 영향으로 표현기법, 특성 등이 시각예술에 맞춰 발전됐고 현재까지도 초현실주의에서 시각예술의 입지가 두텁게 자리 잡고 있다. 결론적으로 컨템포러리 댄스 작품에서는 이러한 표면적 특성과 더불어 브르통이 주장한 초현실주의 정신을 찾아볼 수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컨템포러리 댄스 작품에서 드러나는 초현실주의를 효과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브르통이 강조한 경이, 유희, 우연, 반항, 병치 등의 특성을 짚어보았다. 브르통은 현실을 뛰어넘는 경이로운 이미지가 초현실주의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효과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경이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한 우연성이 비합리적인 결과물을 만드는데 주된 요소가 된다.
  비슷한 맥락으로 유희성은 의식을 배제한 상태에서의 기술로 브르통은 유희를 가장 초현실주의적인 창작 방법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병치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만났을 때 색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을 뜻한다.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요소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낯선 느낌을 제공한다. 이러한 방법들은 모두 초현실주의의 기본 이념인 반항 정신을 내포하고 있다. 창작자와 작품마다 방법은 다르지만 전통과 질서에 대한 파괴는 브르통이 주장한 초현실주의자로서 가져야 할 태도다. 실제로 브르통은 예술가와 작품을 바라볼 때 예술가가 가지고 있는 태도와 의도를 가장 우선적으로 봤다.

 

컨템포러리 댄스 작품의 초현실주의

 

  본 연구에서는 컨템포러리 댄스의 작품 가운데 초현실주의 작품을 만드는 대표적인 세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드,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 피핑톰 댄스 시어터의 작품을 연구 대상으로 선정했다. 모두 현시대 무용의 흐름을 대표할 수 있는 예술가다. 이 안무가 및 무용단의 작품에서 초현실주의적 특성이 드러나는 과정과 방법은 다양했다.
  윌리엄 포사이드의 《추상화의 도시》(2000)에서는 신체의 움직임과 스크린에 비춰진 왜곡된 신체를 통해 현실을 뛰어넘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그가 여러 작품을 통해 행해왔던 방법은 통합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지만 작업을 통해 드러나는 포사이드의 작업에 대한 태도와 의도는 초현실주의 정신과 닮아있다. 그와 다르게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의 《위대한 조련사》(2017)에서는 그리스 신화의 이미지를 무용수의 움직임을 통해 해체하고 재해석하며 풍자를 통해 비판정신을 드러냈다.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경이는 환각적으로만 남아있지 않고 현실과 맞닿아 있어 브르통이 강조한 초현실주의를 통해 추구하는 방향과 일맥상통하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 작품인 피핑톰 댄스 시어터의 《반덴브란덴가 32번지》(2009)에서는 창작 과정에서 우연성과 유희성을 이용해 무용수 신체의 기량으로 초현실주의 특성을 나타냈다. 피핑톰은 특히 작업 과정에서 초현실주의 정신을 내포하며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을 만든다는 무용단 소개 글을 직접 내걸기도 했다.
  세 작품에서 드러난 특성을 바라보면 초현실주의가 나타나는 양상과 방법은 다르지만 브르통이 강조한 초현실주의 정신이 비춰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컨템포러리 댄스 작품에서 드러난 특성들이 어떤 창작적 의도와 과정에서 온 것인지, 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 초현실주의 주요 특성의 어떤 부분과 연결되는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기존 회화 작품과는 방식이 다르지만 특성의 기반은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작품을 바라볼 때 표면적으로 드러난 기술이나 형태가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창작자의 생각, 의도, 철학 등을 바라본다면 작품을 좀 더 깊이 있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초현실주의자들로부터

 

  사조는 한 시대의 일반적인 사상을 이야기하기에 시대마다 겪었던 사건과 상황에 따른 사람들의 생각과 이념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인간으로서 바라본다면 선조들이 남긴 흔적은 우리의 삶에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나아가기 어려운 시기에 현실을 기꺼이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며 그 방식과 양식은 여러 가지로 존재한다. 흔히 알고 있는 콜라주, 데페이즈망 등의 초현실주의 표현 기법도 표면적으로만 드러나는 기술이 아니라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초현실주의가 태어난 배경과 그것을 이끌어 가고자 했던 길을 따라 걸어보면 표면적인 기법일지라도 쉽게 발전된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과정이 드러나는 결과물을 창작해냈고 비록 결과에 묻어나지 않을지라도 혹은 그들의 이념에 반하는 현실을 맞닥뜨려도 그저 그들이 할 수 있는 작업에 집중했다. 누구에게나 현실은 항상 어렵지만 그것을 뛰어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이 존재하며 현재의 초현실주의가 남아있다는 것은 과거 초현실주의를 함께 일궈낸 예술가들의 메시지가 계속 전달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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