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현진 / 국어국문학과 박사

 『전후 세대 시의 서울 표상 연구 : 김수영, 신동엽, 김종삼 시를 중심으로』 공현진 著 (2022, 국어국문학과 박사논문)

본 지면은 학위 논문을 통해 중앙대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 성과가 있는지 소개하고, 다양한 학과의 관점을 교류하고자 기획됐다. 이번호에서는 국어국문학과 공현진의 박사 논문 『전후 세대 시의 서울 표상 연구 : 김수영, 신동엽, 김종삼 시를 중심으로』를 통해 전후 세대 시에서 드러나는 서울의 모습을 새롭게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그럼에도, '서울'에서 살아갈 용기와 힘
 

공현진 / 국어국문학과 박사

 

 
 

 

  서울은 한국 전쟁 이후 급속하게 도시화가 진행된, 다층적인 욕망이 교차하는 특수한 도시이자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변화들을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상징적 장소이다. 당대의 문학을 통해 서울을 살피는 일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의 특수성을 이해하게 한다. 본 연구는 ‘전후(戰後) 세대’ 시인인 김수영, 신동엽, 김종삼의 시에서 서울이라는 특수한 지리적 공간이 표상되는 방식을 당대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검토했다. 표상은 시대, 사회문화적 코드에 따라 달리 나타나기에 당대에 유통되던 환경과 인식의 지평을 살필 수 있는 지표이다.
  문학에서 재현된 공간은 ‘사회적 실천의 장’이자 ‘사회적으로 생산된 공간’이다. 공간은 구성되는 것이며, 사회와 연결되는 핵심적 요소이다. 지리적 장소 역시 그저 고정돼 정체된 성격의 것이 아니라 공간을 둘러싼 환경을 통해 동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당대의 시인은 변화의 거점이었던 서울과 어떤 관계를 형성하며 이를 표상했을까. 상황과 위치에 따라 서울은 다르게 체험되지 않았을까.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연구는 출발했다.


‘서울’이라는 삶의 조건


  김수영, 신동엽, 김종삼은 모두 서울에서 생활했던 시인이지만 각기 고향이 다르고, 생애주기에 있어 서울 거주 시점도 다르다. 종로에서 출생한 김수영은 생애 대부분을 서울에서 생활했고, 충청남도 부여에서 출생한 신동엽은 유년 시절을 대개 부여에서 보내다 성인이 된 이후에 본격적인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또한 김종삼은 황해도 은율에서 출생한 시인으로 평양에서 소년 시절을 보내다 해방 이후에 월남했다. 한편 세 시인은 모두 1920년~1930년대에 출생해, 일제 식민지 시기에 교육을 받고, 한국 전쟁을 전후해 등단한 ‘전후 세대’라는 공통점이 있다. 전후 세대로서 세 시인의 삶은 겹쳐지는 지점들이 있으면서도 개별적 삶의 차이로 흩어진다. 겹쳐지면서도 다른 삶의 굴곡을 지닌 채 각자 뚜렷한 시 세계를 구축한 세 시인의 시를 이 논문은 서울이라는 지리적 장소를 통해 분석했다.
  김수영, 신동엽, 김종삼의 시에 대해 서울을 중심으로 연구한 것은 기존의 문학 연구 방향에서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벗어난다. 우선 기존의 시 문학 속 도시 관련 연구에서 1950년~1970년대는 공백기에 가깝다. 이는 그간 문학 연구에서 도시의 문제를 모더니즘과의 관련성 속에서 파악해 온 경향이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도시와 도시 공간은 ‘삶의 조건’이지 모더니즘에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다. 둘째로 그동안 김수영-신동엽-김종삼을 아우르는 연구가 제출되지 않았는데, 이 역시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을 교차하지 않는 대립적 구도로 규정해 왔던 문학사적 경향과 관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 표상을 주제로 한 문학 연구는 이러한 양분법적 구도의 문학사를 극복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문학의 표상 공간은 당대 현실을 반영함과 동시에 당대의 사람들에게 서울에 대한 욕망과 관념을 형성시킨다. 본 논문은 세 시인이 삶의 터전으로서 발붙이고 있는 서울을 어떻게 체험하며, 나아가 그 공간에서 어떠한 시대적 징후를 읽어 그것을 문학의 공간으로 생산했는지 추적하고자 했다.


대도시 서울의 도시적 문제를 딛고 : 새로운 공간으로 생산하기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자본주의가 공간을 권력의 수단으로 삼고, 나아가 공간으로부터 인간을 소외시키는 도시의 문제를 날카롭게 짚어 냈다. 동시에 그는 여러 모순이 집약된 도시에서 새로운 가능성의 실현을 모색했다. ‘도시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 르페브르의 사유는 김수영, 신동엽, 김종삼 시의 서울 표상을 이해하는 데 큰 실마리를 제공했다. 세 시인은 서울이 지닌 도시적 문제들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면서도 서울을 단순히 부정적인 대상으로만 파악하지는 않았다. 그간의 문학 연구에서는 도시 혹은 서울의 부정적 속성만을 강조해 온 측면이 있는데 본 연구는 서울의 다층적 성격을 함께 주목하고자 했다. 세 시인은 서울의 도시적 문제들을 예리하게 포착하면서도 많은 사람들과 주체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를 외면하지 않았다. ‘실제로 거주하는 장소’라는 삶의 조건을 외면하지 않은 것이다. 시에 표상된 서울의 다층적 성격을 분석하는 데 있어 본 논문은 앙리 르페브르,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등의 도시, 도시 공간에 대한 논의를 참조하는 한편 당대의 실증적 사료들을 중요하게 다뤘다.
  김수영에게 서울은 일상의 장소였다. 김수영 시의 주체는 서울의 도시적 속성을 ‘내부적 관찰자’로서 파악한다. 그의 ‘신체(몸)’는 서울이라는 장소 안에 위치해 있음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이는 화자에게 ‘설움’의 정동을 일으켰다. ‘개인적 생활의 공간’이자 ‘식민 이후의 근대적 공간’인 서울에서 화자는 대도시의 풍경을 관찰하며, 일상화된 도시적 속성에 마비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인다. 본 논문은 김수영 시에 나타난 서울의 장소성이 단순히 부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그에게 서울은 혼종적인 공간으로, 화자는 서울의 긍정적 이미지와 부정적 이미지를 함께 포착한다. 도시의 부정성에 사로잡혀 좌절에 머무르지 않으며 서울에서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모색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신동엽의 시에서 서울은 역사적 연속성을 갖는 공간으로서 ‘외세와 자본’의 도시로 표상됐다. 신동엽의 서울은 외세 침략과 자본의 속성이 강조돼 표상됐는데 이때 이러한 속성이 서울이라는 공간이 지닌 역사적, 지리적 맥락과 연결돼 나타났다. 또한 통시적 차원에서 서울의 역사성을 발견하는 동시에 국제와의 관계 속에서 그 지정학적 위치를 파악했다. 자본과 제국주의의 야욕이 제3세계 국가에 침투하는 것을 직시하며, 그는 세계사적 맥락 속에서 서울의 역사를 파악한다. 그러나 신동엽 역시 서울을 부정적 공간으로 여기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그 개방성에 주목하면서 공간을 항거와 연대의 장소로 전유했다.
  김종삼의 초기 시에서 서울은 다소 추상적 성격이 강한 공간으로 표상됐다. 이는 현실 인식의 결여로 볼 것이 아니라 전쟁과 같이 ‘표상 불가능’한 것을 함부로 표상하지 않으려는 태도와 그럼에도 표상을 시도하려는 모색 사이의 윤리적 태도로 이해해야 한다. 실향민의 소외와 ‘살아남은 자’로서 지니는 윤리적 태도를 김종삼의 서울에 대한 표상으로부터 밝혀낼 수 있다. 그의 초기 시에서 서울은 인공적인 이미지가 강조된다. 초기 시의 화자는 서울에 속해 있다는 자의식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데 이는 실향민이었던 시인에게 다가왔을 서울의 특수성과 실향민의 복잡한 정체성을 이해하고 접근해야 하는 문제다. 그러나 김종삼의 시에서 도시 서울의 추상적인 모습과 훼손된 공간의 성격이 계속된 것은 아니었다. 훼손된 도시 공간은 후기 시로 갈수록 점차 회복되며 지리적 장소성이 구체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살아남은 자’에서 그럼에도 ‘살아가는 자’로 이행해 가는 주체의 모습을 서울에 대한 태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수영, 신동엽, 김종삼 시인은 전후 세대로서 ‘세계사적 개인’이라는 주체의 정체성을 공유한다.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인식 또한 전후 세대가 공유했던 시대적 감각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세 시인은 근대와 문명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으로 기울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른 전후 세대 시인들과 구별됐다. 김수영, 신동엽, 김종삼 시인에게 근대와 문명에 대한 비판은 선언이 아닌 실존의 문제로서 이뤄졌다. 시에 표상된 ‘서울’을통해 그들이 현재에 대해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자리에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태도로 나아갔음을 선명히 확인할 수 있다.
  김수영, 신동엽, 김종삼은 서울의 문제를 회피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모색 끝에 새로운 공간으로 전유하고 생산하고자 했다. 서울은 많은 도시적 문제를 지닌 장소이지만 수많은 이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당대의 서울과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서울은 얼마나 다르고, 또 얼마나 같을까. 세 시인은 ‘도시에서 살아갈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살아갈 용기와 힘을 모색해 나간 이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의 서울에서 우리가 살아나갈 방법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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