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율 /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전후의 서울을 통해 본 오늘의 서울


백선율 /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공간을 떠나 살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을 떠올릴 때,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작품에 나타난 공간을 분석하는 연구 역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공현진의 연구는 시인의 사유와 시세계를 검토하기 위해 시인이 실제 삶을 살았던 공간을 경유해 작품 속 공간을 분석한다.흥미로운 것은 그 대상이 그간 문학 연구에서 크게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서울’이라는 점이다. 서울은 한반도의 중심이라는 지리적 조건 외에도 특별한 상징성을 지닌 공간이다. 저자의 말처럼 서울은 식민과 탈식민, 전쟁, 국가주도 개발과 혁명 등 오늘날의 한국을 형성한 역사적 경험들이 켜켜이 쌓여 온 곳이기 때문이다. 공현진의 연구는 특별한 의식 없이 일상처럼 지금의 서울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서울은 무엇인지 다시금 질문하게 한다. 새삼 서울을 ‘낯설게’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 연구는 전후 세대 시인인 김수영, 신동엽, 김종삼의 시를 통해 문학작품에서의 서울 표상을 검토함으로써 서울이 지닌 의미를 규명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일정 기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서울에서 생활했던 김수영,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도시 서울을 경험했을 신동엽,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월남 시인 김종삼의 삶과 사유가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을 중심으로 어떻게 펼쳐지는지 흥미롭게 분석하고 있다. 그렇기에 서울은 한 국가의 수도라거나 사회·경제·문화의 중심지라는 일반적인 수사를 넘어 세 시인의 경험과 사유를 통과하며 다층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특히 돋보이는 점은 전후 시대에 서울이라는 한 공간을 살아갔다는 공통적인 조건으로 김수영, 신동엽, 김종삼을 소환하면서도 그들 각자의 삶의 조건을 통해 그들이 각기 다른 서울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섬세하게 발견해 냈다는 데 있다. 이를테면 서울을 생활의 공간으로 여기면서도 예민한 관찰자로서 응시했던 김수영에게 서울은 충격과 설움이었고, 지방 출신인 신동엽에게는 외세의 침략과 자본의 모순이 새겨진 역사적 장소이면서도 지방을 착취하는 중앙권력의 도시였다. 또 실향민이었던 김종삼에게 서울은 소외를 느끼게 하는 이방(異邦)에 가까운 곳이면서 여전히 전쟁과 죽음의 흔적을 안고 있는 공간이었다. 저자는 세 시인의 삶의 조건과 서울에 대한 인식 차이를 세밀하게 규명하면서 세 시인을 통해 서울을 다층적으로 보여 준다. 더불어 도시만이 아니라 그 바깥의 공간을 통해 도시를 다시 들여다봄으로써 세 시인이 인식한 도시 공간의 성격을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해 낸다.
  저자는 더 나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시인이 서울을 단순히 모순적이고 비극적인 공간으로만 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포착한다. 세 시인은 서울에서 쾌활한 생활의 힘을 느끼고, 연대의 힘을 발견하고,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마주함으로써 서울을 긍정했다. 서울은 김수영에 의해 설움 속의 사랑으로, 신동엽에 의해 연대의 미래로, 김종삼에 의해 살아감의 공간으로 나아간다. 그들에게 서울의 풍경과 그것이 주는 정동은 각기 달랐을지라도 전쟁이란 비극 뒤에 다시 삶과 사랑을 회복할 수 있는 상징적 장소였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었다. 삶의 구체적인 양태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환멸과 기쁨, 절망과 희망, 생활을, 사람을 함께 알게 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세 시인의 서울은 우리의 서울과도 겹쳐진다.
  연구는 모더니즘 문학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도시성을 모더니즘의 한정된 영역 속에서 살피지 않고, 도시에 대한 사유가 순수/참여, 모더니즘/리얼리즘의 대립을 넘어선 자리에 있다고 설명함으로써 문학사의 오랜 이분법을 벗어났다는 점에서도 유의미하다. 문학사에서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두 영역에서 소환됐던 김수영, ‘민족시인’이라는 수식을 받으며 리얼리즘의 대표 시인으로 언급돼 왔던 신동엽, 그리고 순수/모더니즘 시인으로 평가받아 왔던 김종삼의 문학이 서울을 매개로 만나게 되면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라는 대립도 희미해진다. 저자의 말처럼 세 시인이 마주했던 서울은 삶의 조건이지 모더니즘의 문제이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공간 속에서 경험과 사유를 축적하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문학작품에 나타난 도시 공간을 분석하는 작업은 도시에서 살아가며 이를 문학적으로 표현한 시인의 인식과 시적 방법을 살피는 데 유용할 뿐만 아니라, 도시적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의 삶의 조건을 인식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김수영과 신동엽 그리고 김종삼이 그러했듯이 서울을 응시하는 일이란 그곳을 살아가는 자신을 응시하는 일과 다름없다. 서울이라는 공간에는 우리의 삶이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다. 저자가 김종삼의 시를 통해 본 서울을 ‘살아가는 자’들의 모습은 전후를 지나 오늘의 서울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 서울을 살아가는 자들이 있는 한, 이 도시를 사유하고 분석하는 일 역시 지속적으로 요청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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