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영 / 영상학과(제작) 석사

 

[원우연구] 『장편다큐멘터리 <자, 이제 댄스타임> 제작보고서』 조세영 著 (2016, 영상학과 석사 논문)

  본 지면은 원우들의 학위 논문을 통해 중앙대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 성과가 있는지 소개하고, 다양한 학과의 관점을 교류하고자 기획되었다. 이번 호에서는 2016년에 나온 영상학과 조세영 원우의 학위 논문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연구]

  영화를 넘어서 논의의 장으로

조세영 / 영상학과(제작) 석사

  <자, 이제 댄스타임(2014)>은 필자가 섹슈얼리티를 인식의 프레임으로 삼아 한국 사회의 모순을 다룬 세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이전까지 해외 입양인, 미혼모,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다면, <자, 이제 댄스타임>에선 ‘낙태를 선택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통해 과거부터 현재까지 흐르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순을 짚어보려 했다.

  필자는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2009)>를 만들면서, 성폭력의 경험만큼 낙태 또한 여성들이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공통의 경험임을 알게 됐다. 역사 속 여성들이 낙태를 해 온 이유는 그 시대 환경 변화만큼 다양하다. 가령, 한국전쟁 직후 세대는 ‘입을 하나 줄이기 위해’, 196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까지는 국가가족계획이라는 국가정책에 따라 ‘둘만 낳아 잘 살려고’, 현대에 이르러 출산 장려와 상관없이 여성들은 사회·경제적 이유로 낙태를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성폭력과 낙태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을 지니고 있다.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당시 만났던 성폭력 경험을 발화하는 피해자들은 스스로의 당위를 지니고 당당한 모습을 드러냈던 반면, 낙태 경험을 말할 때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가 뒤섞인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낙태와 성폭력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여성은 피해자로 인식되는 데 반해, 낙태한 여성은 생명을 죽인 가해자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낙태를 선택한 사람들은 자신의 낙태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더욱 얘기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낙태에 대해서 접하는 것은 ‘했다더라’라는 뒷얘기뿐이다. 낙태는 있는데 낙태한 사람은 없게 된다. 이런 해소되지 않는 질문들을 풀고자 2년 뒤인 2011년에 <자, 이제 댄스타임>이란 장편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한국의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한 번도 중심에 선 적이 없었다. 다만 특정 부류나 개인의 문제처럼 표현되어 왔다. 연간 30-40만 건의 인공임신중절건수(현행법상 불법임을 감안하면 비공식 통계는 훨씬 높을 것이다)를 지닌 한국에서 낙태가 ‘사회적 고통’이 되지 않는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필자는 낙태를 사회적 고통의 프레임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본 논문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간 진행된 기획·제작·배급과정에 대한 단계별 분석과 함께 진행 과정에서 주제가 갖는 특수성으로 인해 나타난 여러 상황들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제작 방법론과 다큐멘터리에서의 윤리

  모든 작업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출연자와 감독의 관계성의 측면이다. 필자는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이 다큐멘터리 영화에 출연하는 ‘커밍아웃’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기획·제작·배급과정 과정에서 신중을 기해야만 했다. 필자와 출연자와의 관계는 호감, 견제(프리 프로덕션)-신뢰, 갈등(프로덕션, 포스트 프로덕션)-동지애(배급단계)를 거쳐갔다.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는 인물의 내면을 추정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촬영방식이다. <자, 이제 댄스타임>은 인터뷰가 중추를 이루는 다큐멘터리로서, 다큐멘터리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가 전체 구성을 끌어가고 있다. 극 부분의 주인공들도 인터뷰와 연결되는 씬에서 영향을 받도록 구성이 짜여져 있다. 본 촬영에서는 낙태 경험인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이를 섭외한 방식 중 하나는 공개모집이었다. 필자는 인터뷰이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낙태를 경험한 지 1년 이내의 사람들을 가능한 배제시키고자 했다. 성폭력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경험으로 미루어봤을 때, 사건의 발생시점이 근래일수록 출연자의 감정기복이 심했고, 판단이나 결정의 번복도 상대적으로 많았다. 이 문제는 다큐멘터리를 완성하고 나서 상영과 배급에 반드시 연결된다. 그러한 이유로 인터뷰이들에게 인터뷰가 ‘단순히 해치우고 끝내는 무엇’이 아니라 본인의 삶에 다시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여러 번 상기시켰다. 또한,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작품의 기획배경과 구성방향을 간략하게 구두로 설명하며 인터뷰이가 생각하는 영화와 필자가 생각하는 영화의 방향이 결과적으로 다를 수 있음 또한 인지시켰다. 다만, 인터뷰이가 본 작품에서 얼굴과 신변이 인식될 수 있을 정도의 노출이 있다면 영화의 최초 상영 전 반드시 고지 의무를 지키도록 했다. 이런 과정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윤리이자, 작품 완성 후 제작진과 출연자 간의 오해나 신뢰에 금이 가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필자 스스로의 제작 방법론이기도 했다.

  인터뷰는 필자인 감독이 인터뷰어로 참여하여 진행했다. 인터뷰 방식은 최대한 질문을 배제한 채 인터뷰이가 회상하는 ‘기억의 감정’을 따라가는 형태였다. 질문은 ‘첫 섹스의 기억’ ‘임신을 하게 된 당시 기억’ ‘수술을 하기로 결심하게 된 이유’ ‘수술 이후 나에게 변화된 것’ 정도로 축약된다. 각 인터뷰이는 자신의 기억에 남은 것들을 현재의 시점에서 재해석하여 자유롭게 얘기해주었고, 인터뷰어는 이야기가 맥락에서 벗어나더라도 끝까지 경청하는 방식을 택했다. 인터뷰이가 질문을 되새기며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이나, 본인의 말을 마치고 나서 사이가 뜨는 순간은 본 작품에서 중요하게 여긴 지점이었다. 때로는 말을 할 때보다 그 사이의 호흡, 말의 멈춤이 보는 이에게 더욱 명확한 언어로 다가올 때가 있다.

  인터뷰 촬영 시 미장센의 핵심은 인물의 얼굴이다. 혐오와 비호감을 지워낼 수 있는 미장센의 가장 큰 부분은 출연자가 해줄 수 있다. 필자는 인터뷰이들에게 “최대한 예쁘게 하고 오세요”라는 주문을 했다. 그러나 필자가 말할 필요도 없이 이미 얼굴을 드러낼 확신이 선 출연자들은 스스로에게 가장 자신 있는 모습으로 출연하고 싶어했다. ‘낙태한 여자’에 대한 전형을 위배하고 싶은 욕구는 출연자와 제작진 모두에게 있었다. 편견에 대한 시각적 도전을 공유한 순간이었다.

 
 

제작 과정에서 나타난 실험적 시도들

  <자, 이제 댄스타임>은 프리 프로덕션과 프로덕션의 체계가 타 다큐멘터리와 차이를 지닌다. 영화는 크게 다큐멘터리 부분과 극 부분으로 나누어 진행하였고, 그 중 어떤 씬들은 극과 다큐멘터리의 혼종 혹은 그 경계에 놓이도록 의도하였다.

  이를테면 ‘S#14 설렁탕 집’에서 극의 배우 지혜는 수술을 마치고 설렁탕집에서 설렁탕을 먹는다. 카메라가 뒤로 빠지자, 각기 다른 테이블에서 홀로 설렁탕을 먹고 있는 다큐멘터리 주요인물들이 보인다. ‘S#14 설렁탕 집’은 극과 다큐의 중첩(경계지점)에서 발생되는 효과를 노렸던 대표적 장면이다. 본 작품 초반에 수술을 마치자마자 홀로 갔던 설렁탕집 얘기를 하는 인터뷰 장면을 여자배우 오디션과 몽타주로 삽입하여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영화 내내 인터뷰이의 얼굴을 관객들에게 각인시킨 후 마지막에 극의 배우와 다큐멘터리 출연자들의 만남을 끌어냈다.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효과를 위해서는 극의 주인공과 다큐멘터리의 주인공들을 한 테이크로 한 화면에 담는 것이 중요했다. 극중 인물이 실제 인물들 속에 배치되면서 현시대를 사는 관객 스스로 영화의 마지막을 정돈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영화는 기획단계 때부터 ‘누구에게 이 작품을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이 얘기가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지, 누구에게 보여줄 것인지에 따라, 작품 형식이 자연히 정해지고, 배급방식도 맞춰진다고 믿었다. 제작진은 평소에 낙태와 같은 여성이슈에 관심을 갖지 않은 사람들을 목표로 삼았다. 민감한 소재의 이야기는 보통 불편함을 주는데, 관객들이 그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 우리 사회의 모순이 비로소 드러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객들이 ‘그 순간’에 마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극장개봉은 중요한 수단이었다.

  특히나 섹슈얼리티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배급방식을 미리 고민하지 않는다면 상영이 불가할 수도 있다. <자, 이제 댄스타임>은 기획단계에서부터 영화를 통해 출연자들과 관객이 조우하는 순간, 나아가 영화를 넘어서 낙태라는 사안에 대한 논의의 장이 만들어지는 순간들을 기대하며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다. 이에 전국 기획상영회 및 자체 극장개봉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기획상영회의 형태 중 다큐출연자(낙태경험 인터뷰이)와 함께한 관객과의 대화는 스크린의 장막을 넘어선 다른 차원의 자리가 되었다.

 

  영화의 시작이 나이든 여성들의 춤이었다면, 끝은 젊은 여성의 춤이다. <자, 이제 댄스타임>에서 ‘댄스’는 자유로운 몸짓을 의미한다. 아직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앞으로 억압됐던 몸이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달팽이와 춤을 추는 여자가 보인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을 <자, 이제 댄스타임>이라는 타이틀로 닫는다. 이는 아직은 두려움에 침잠해 있을 젊은 여성의 앞으로의 바람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