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니 / 영상학과(이론) 석사수료

 [원우연구] 『장편다큐멘터리 <자, 이제 댄스타임> 제작보고서』 조세영 著 (2016, 영상학과 석사 논문)

  본 지면은 원우들의 학위 논문을 통해 중앙대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 성과가 있는지 소개하고, 다양한 학과의 관점을 교류하고자 기획되었다. 이번 호에서는 2016년에 나온 영상학과 조세영 원우의 학위 논문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토론문]

확장된 장으로서의 다큐멘터리

 

이유니 / 영상학과(이론) 석사수료

  다큐멘터리 <자, 이제 댄스타임>이 완성된 하나의 결과물이라면 논문 《장편 다큐멘터리 <자, 이제 댄스타임> 제작보고서》는 그것이 완성되기까지의 치밀한 고민과 수행의 과정을 담고 있다. 기획·제작·배급의 모든 과정들은 하나의 큰 기획안에서 서로를 의식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 이제 댄스타임>이라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완성한다. 선형적으로 정돈하기 쉽지 않았을 그 세세한 기록들은 분명 다큐멘터리 (예비)제작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영화 연구자, 일반 관객 모두에게 큰 자산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 논문이 담고 있는 것은 단순히 다큐멘터리의 제작 ‘보고’가 아닌 민감한 주제의 다큐멘터리를 대하는 윤리적·미학적·현실적 성찰의 현장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영화에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고, 한 편의 영화에서 의미란 다양한 의미와 요소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한다. 하지만 이 토론문에서는 <자, 이제 댄스타임>이 만들어내는 정치적 장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독립 다큐멘터리의 힘은 우리가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자, 이제 댄스타임>은 그간의 낙태 찬반 논쟁 이면에 가려져 있던 미시적 층위들을 드러냄으로써 사회의 고정된 윤리적 프레임을 재사유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낙태에 대한 인식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국가가족계획에 따라 되려 낙태가 피임의 수단이었던 1960년대를 겪어온 어머니 세대와 달리 현세대의 여성들은 대부분 낙태 경험을 발화하는 데 있어 죄의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서사에 따라 한 개인(당사자 여성, 대중 모두)이 자신과 사회를 감각하는 시선이 구성된다는 점은 인터뷰 사이사이에 침투하는 사료 푸티지들과의 교차를 통해 드러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다큐멘터리의 내러티브를 강화하는 것은 바로 극 파트이다.

  2000년대에 들어 한국 다큐멘터리의 기법은 크게 확장되었다. 다큐·극·파운드푸티지 등 양식의 혼종은 2010년 이후 더욱 두드러지는데, 특히 <자, 이제 댄스타임>은 재연의 형식을 빌어 인터뷰이의 경험에 기반한 사실주의적인 극을 전개한다. 이때 촬영 기간 동안 박지혜 배우가 맞닥뜨리는 주제에 대한 고민은, 배우 지혜와 실제 인물 박지혜가 정확히 분리될 수 없는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실제 기획안과 달리 박지혜의 인터뷰가 결과물에서 사라진 점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물론 한정된 러닝타임 안에 박지혜의 비중을 늘릴 경우 발생될 여러 서사적·윤리적·물리적 문제들에도 백번 공감한다. 어찌 되었든 박지혜는 관객과 인터뷰이, 인터뷰이의 과거와 현재, 극과 다큐멘터리 사이를 매개하는 존재, 혹은 그사이를 오가는 존재로 독해 가능하다. 이 지점을 명확히 드러내는 순간은 설렁탕 씬이 아닐까 싶다. 인터뷰이들과 박지혜가 설렁탕집에 모여 함께 설렁탕을 먹는 장면, 그리고 촬영 이후 이들이 처음으로 모여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극과 다큐의 경계가 무화되는 순간이자, 지혜가 배우의 위치에만 머무를 수 없게 되는 순간이며, 사적인 개인의 문제에서 여성 전체의 문제로, 나아가 한국 사회의 문제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열린 장이 펼쳐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열린 장에 감독이 초대하고자 한 대상은 본래부터 이 사안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에 한정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에서 관객성은 계속해서 고민되어야 하는 요소이다. 그간 독립 다큐멘터리 진영의 문제의식 중 하나는 정치적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대중들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다.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자, 이제 댄스타임>이 돌파하고자 시도한 부분에 한정하여 말하면 협소한 유통 플랫폼, 강한 표현방식으로 인한 거부감을 들 수 있다. 이에 <자, 이제 댄스타임>은 다른 입장을 가진 혹은 입장이 없는 다양한 층위의 대중들에게 다가가기를 희망하며, 그를 위해 전략적으로 ‘대중적인’ 수사를 취한다. 영화의 화사하고 부드러운 표면은 귀를 열어둘 틈을 마련한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보기엔 마뜩찮은 영화이다. 더 강하게 한국 사회의 낙태를 둘러싼 문제들을 비판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전술은 관객이 낙태라는 문제에 대해 다시금 고민할 수 있게끔 하고, 무엇보다 용기를 낸 동시대의 여성들이 보다 자유로워지고 누군가의 응원과 지지를 받는 경험을 하도록 하는 데 집중한다. 물론 그럼에도 영화가 갖는 아이러니는 그것이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다 보니 영화의 유통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여성 개인을 가시화하는 동시에 아직까지는 여성들을 보호해야하는 여러 층위의 고민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을 해방시키는 춤의 동작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자, 이제 댄스타임>은 자유로운 춤으로만 해소되어 끝나지 않는다. 영화로 판을 열어놓았다면, 배급 과정에서 여러 기획상영회와 포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영화가 제시하는 질문을 사회적으로 확장한다. 이는 독립 다큐멘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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