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정 / 심리학과 석사수료

[과학] 그것을 알고 싶다, 과학수사

2000년대 들어서 범죄 수사 드라마들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 속 장면들로 인해 과학적 증거들을 통해 범죄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기대는 높아져만 갔다. 하지만 현실 수사에서는 과학적 증거를 찾지 못하거나 찾더라도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는 상황이 얼마든지 발생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과학수사의 대표적인 기법들을 소개하고 그 원리를 알리고자 한다. 더불어 그 한계와 향후 과학수사의 미래까지 조심스럽게 타진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수사상황에서의 행동분석 ② 뇌와 거짓말 탐지 ③ 유전자 감식을 통한 과학수사 ④ 법보행분석

뇌를 보면 거짓말이 보인다

전민정 / 심리학과 석사수료

  2001년, 미국 아이오와 주에서는 살인죄 누명을 쓰고 종신형에 처해져 22년간 복역 중이던 한 남성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이 판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뇌 분석을 통한 거짓말 탐지였는데, 이 남성의 뇌가 범죄 장면엔 반응 하지 않고, 알리바이로 내세운 음악회 관람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응하여 무죄가 입증됐다. 최근 뇌과학 분야가 급격히 발전함에 따라 거짓말 탐지에서도 뇌를 활용한 탐지기법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거짓말을 하는 인지적 처리과정과 관련된 대뇌 활동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측정해, 뇌에서 ‘거짓말’이 처리되는 과정 자체를 탐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또한 자율신경계 반응을 주로 측정하는 전통적인 거짓말 탐지기법인 행동분석과 폴리그래프(polygraph)의 경우는 거짓말자가 의도적으로 통제하거나 왜곡하여 판별 정확성이 낮아지는 경우가 있는 반면, 대뇌 활동을 측정하는 경우는 거짓말자가 의도적으로 통제하기 어렵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북미의 경우, 뇌를 기반으로 한 거짓말 탐지기법 개발에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한 거짓말 탐지가 법정에서 허용돼야 한다는 법안이 세 차례 이상 발의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용의자 심문 시 뇌파분석을 통해 진술의 신빙성을 판별하거나 성폭행범의 범행 장소를 유추하여 자백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뇌를 통한 거짓말 탐지를 실제 현장에 도입하기 이전에, 기법의 정확성, 실제 현장에서의 적용 가능성, 나아가 기존의 거짓말 탐지기법에 비해 어떠한 장단점을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뇌 지문 기법과 fMRI법

  가장 처음 수사현장에 도입된 대뇌 탐지기법은 ‘뇌 지문(brain fingerprinting) 기법’으로 알려진 뇌파 측정법이다. 뇌파는 두피를 통해 대뇌의 전기적 신호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뇌파 전위(EEG)라고도 한다. 뇌 지문 기법은 뇌파 전위 중에서도 자신에게 유의미한 자극을 보았을 때 나타나는 사건 관련 전위(ERPs)를 분석하는 기법으로, 용의자가 사건현장의 사진을 보았을 때 뇌파가 반응을 하면 범죄현장에 친숙한 것으로, 즉 범죄와 관련성이 높은 것으로 해석한다. 뇌파 탐지기법은 용의자 진술의 신빙성을 직접적으로 판별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거짓말 탐지기법이라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용의자가 범인만이 알 수 있는 범죄현장의 세부 사항들에 대해 알고 있다면 수사망을 좁힐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장에 도입되어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이 기법은 기억을 측정하는 것이므로, 범행 당시 범죄자의 긴장과 흥분으로 인해 사건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해 범행현장의 세부 사항을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범행 시 약물복용 혹은 음주상태일 경우에도 부정확하게 기억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정확성에 대한 논란이 있다.

  이러한 제한점을 극복하기 위해 최근에는 좀 더 직접적으로 뇌의 활동을 측정하여 거짓말을 판별하려는 시도가 증가하고 있다. 이는 수검자가 진술을 할 때, 혈류의 흐름이 어떠한 뇌 영역에서 활성화 되는지를 fMRI로 확인하여 허위진술 여부를 판별하는 것이다. 사실을 말할 때에는 기억의 저장과 인출에 관여하는 해마 영역이 활성화 되는 반면, 거짓말을 할 때에는 인지적인 억제나 작업기억과 관련되는 배외측(dorsolateral)과 복외측(ventrolateral) 전전두피질이 활성화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을 말하는 것은 과거에 경험했던 사건을 그대로 기억해내는 과정이지만 거짓을 말하는 것은 과거의 기억을 인출해낸 후 해당 정보를 억제하고, 상황과 맥락에 적합한 가짜 진술을 만들어내는 과정임을 시사하는 결과이다. 하지만 거짓말시 활성화된 대뇌 영역에 대한 연구결과가 혼재돼 있다. 또, 모든 연구가 실험실 상황에서 진행되어 지시된 과제를 수행하면서 유발된 집행기능이나 다른 인지적 처리과정으로 인해 해당 영역의 활성화가 유발되었을 수 있다는 한계점이 있다. 더불어, 실험실 상황에서의 거짓말은 실제 범죄시의 거짓말에 비해 단순하고 개인적 관련성이 낮기 때문에 연구결과를 실무현장에 바로 적용하기 어렵다.

뇌 기반 거짓말 탐지를 상용화 하려면

  그렇다면 뇌 기반 거짓말 탐지를 실무에 도입하기 이전에 고려해 보아야 할 점은 무엇일까. 첫째로, 대응책과 관련된 문제가 있다. 대응책은 생리적으로 나타나는 거짓 반응을 무마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폴리그래프 기법의 정확성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혀왔다. 피부 전도와 같은 생리적인 신호는 물리적인 움직임에 취약하기 때문에, 진술시 발가락 끝에 힘을 주는 미세한 행동만으로도 신호를 저해할 수 있다. 반면 fMRI를 통한 거짓말 탐지는 의도적인 통제가 어렵기 때문에 정확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이 또한 대응책에 취약하다는 주장도 있다. fMRI의 경우 육안으로 감지할 수 없을 정도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움직이는 간단한 대응책만으로도 판별의 정확도를 33%까지 떨어뜨릴 수 있으며, 뇌파 또한 물리적인 움직임에 따라 신호가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응책에 취약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정확도와 신뢰도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뇌 기반 거짓말 탐지 기법이 현장에 도입될 경우 진실 보고자의 진술을 거짓으로 판단하여 무고한 피해자로 만들 가능성이 있어 윤리적인 문제로 이어질 수 있고, 더 나아가 ‘뇌 프라이버시(brain privacy)’에 대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신경 윤리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모든 사고를 관장하는 가장 고차원적인 영역인 ‘뇌’를 직접적인 측정 대상으로 삼는 것은 사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장 적용시의 제한점 또한 존재한다. 뇌파와 fMRI를 분석하기 위한 장비가 연구겱퓜デ痔恙?현실적으로 보급되기 어렵고, 장비의 사용과 분석을 위해서는 뇌과학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현장 적용이 손쉽게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한계점을 가진다.

  뇌 기반 거짓말 탐지가 얼마나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또한 윤리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고 현장 도입 가능성과 관련된 제한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실무에 도입하기에는 다소 시기상조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 기반 거짓말 탐지는 해당 분야의 연구적 관심과 시도가 비교적 최근에 시작되었으며 인간의 사고가 발생하는 근원인 뇌를 직접적으로 탐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잠재성을 묵과할 수 없다. 향후 실무에 도입 가능한 거짓말 탐지기법을 타당화하고 뇌 과학 전문가와 일선 수사관들의 협업을 통한 융합연구를 진행한다면, 앞선 제한점을 극복한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기법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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