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정 / 심리학과 석사수료

[그것을 알고 싶다, 과학수사]

2000년대 들어서 범죄 수사 드라마들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 속 장면들로 인해 과학적 증거들을 통해 범죄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기대는 높아져만 갔다. 하지만 현실 수사에서는 과학적 증거를 찾지 못하거나, 찾더라도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는 상황이 얼마든지 발생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과학수사의 대표적인 기법들을 소개하고 그 원리를 알리고자 한다. 더불어 그 한계와 향후 과학수사의 미래까지 조심스럽게 타진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수사상황에서의 행동분석 ② 뇌와 거짓말 탐지 ③ 유전자 감식을 통한 과학수사 ④ 법보행분석

수사 상황에서의 비언어적 행동분석

전민정 / 심리학과 석사수료

 
 

  거짓말 하는 사람의 코가 피노키오처럼 길어지는 일은 없지만, 거짓말하는 사람의 신체는 다양한 형태로 변화한다. 신체의 변화를 통해 거짓말을 탐지했던 역사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B.C. 100년 중국에서는 용의자의 입속에 마른 쌀을 물게 한 후 거짓말을 탐지하였다. 이는 거짓말을 할 경우 입 안이 마르기 때문에, 입에 문 쌀이 얼마나 젖었는지를 통해 거짓말의 여부를 파악하고자 했던 과학적인 수사기법이다. 유사한 예로, B.C. 600년경 인도에서는 거짓 진술시 긴장으로 인해 몸에 힘이 들어간다는 것에 기반해, 용의자를 평균대 한쪽 끝에 앉히고 반대쪽 끝에는 저울을 달아 평균대의 기울기로 거짓말을 탐지했다. 이렇듯 예로부터 인류는 표면에 나타난 ‘말’뿐만 아니라 신체적 변화와 같은 ‘비언어적 행동’을 통해 거짓말을 측정해 왔다. 언어의 경우 원하는 대로 만들어내기 쉬우나, 의식하지 못한 채 다양한 방식으로 새어 나오는 비언어적 행동의 경우 통제하기 어렵다. 진술의 진실성을 정확하게 판별하기 위해서는, 표면적으로 나타난 언어적 요소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비언어적 요소 또한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선조들의 지혜에 근거해, 현대의 수사 현장에서도 진술의 진실성을 판단하기 위하여 다양한 종류의 비언어적 행동을 분석하고 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비언어적 행동으로는 얼굴 표정이나 신체 움직임이 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것이 탄로 날 것에 대한 불안과 긴장으로 인해 얼굴 표정이 변화하고, 신체 움직임이 많아진다고 가정한다. 신체 움직임을 활용한 거짓 진술 탐지는 특별한 장비를 거치지 않고 육안으로도 단서를 판별하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의도적으로 통제하기 쉬운 수의근을 통해 단서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객관적이고 정확한 단서로 인정받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수사 현장에서는 의도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신체 내부의 행동 중 하나인 생리적 각성 반응을 통해 거짓 진술 여부를 판별한다. 이는 폴리그래프(Poly-graph)라는 장비를 통해 분석되는데, 거짓 진술시 긴장과 각성으로 인해 맥박과 호흡은 느려지고, 손의 땀 분비량은 증가한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용의자들이 거짓 진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범죄 상황에 관련된 핵심적인 질문과, 진실 반응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반적인 정보에 대한 질문을 제시한다. 그 후 각각에 대한 생리적 각성 수준을 비교 분석하여 진술의 거짓 여부를 판별하게 된다.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 거짓말 탐지기

  하지만 폴리그래프 또한 신뢰할 만한 단서로 인정받기에는 몇 가지 한계점을 지닌다. 첫 번째로, 진실 보고 또한 거짓 진술로 오인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거짓 진술을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 또한 자신의 무고함을 입증해내지 못할 것에 대한 불안과 긴장을 느끼기도 한다. 진실을 말하면서도 극심한 불안과 긴장을 경험할 경우, 폴리그래프 상에서는 거짓 진술로 판단될 수 있다.
  두 번째로, 거짓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지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짓 진술은 사건에 대한 실제 기억을 억누르고 상황과 맥락에 적합한 거짓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므로 인지적 노력이 요구된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거짓 진술시의 인지적 노력이 정서적인 불안감보다 강하게 작용하여 생리적 각성 수준을 감소시켜, 폴리그래프 상에서 거짓 진술로 판별되지 않을 위험성이 존재한다.
  세 번째로, 폴리그래프는 생리적으로 나타나는 거짓 반응을 무마시키기 위한 노력인 ‘대응책(Countermeasure)’에 취약하다. 긴장감이 유발되지 않는 일반적인 정보에 대한 질문에 응답할 때 발가락 끝에 힘을 주거나, 압정과 같은 뾰쪽한 물건으로 몸을 찌르는 등 각성을 증가시키는 대응책을 사용할 경우, 거짓과 진실 반응간의 생리적 각성 수준의 차이가 줄어들어 거짓 반응이 정확히 탐지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사이코패스나 반사회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하여 죄책감이나 후회, 불안감을 보이지 않으며,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기 때문에 폴리그래프 검사시 각성 반응이 나타나기 어렵다. 실제로, 다수의 살인 사건 용의자나 연쇄살인마들이 거짓말 탐지기를 통과했다는 기록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폴리그래프는 미국 28개 주에서 거짓말 탐지기로서의 법적인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폴리그래프는 유무죄를 판별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로 채택되기 보다는 수사의 방향을 결정하거나, 진술의 신빙성을 가늠하는 정황적인 증거로서의 역할을 한다. 일례로, 네 살배기 의붓딸을 암매장한 혐의로 조사를 받던 용의자가 반복적으로 거짓 진술을 한 것으로 나타나, 진술이 아닌 물증을 기반으로 수사의 방향을 변경하기도 했다.

거짓말 탐지의 미래, 폴리그래프를 넘어서

  거짓말 탐지의 정확성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최근에는 의도적으로 통제가 거의 불가능한 비언어적 행동을 통해 진술의 진실성을 판별하고자 하는 연구가 증가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동공의 경우 진술자의 인지적인 상태를 실시간으로 반영한다는 점에서 신뢰할 만한 측정치로 각광받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거짓말을 할 때에는 정서적인 긴장감과 인지적인 복잡성이 함께 나타나게 된다. 이 두 가지 요소가 동공을 확장시키게 되어, 동공 크기 변화를 안구운동 추적 장비(Eyetracker)로 측정하여 진술의 진실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또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장비를 통해 거짓 진술시 활성화되는 뇌 영역을 분석하거나, 뇌파 분석 장비를 통해 사건에 대한 세부적인 지식의 습득 유무를 파악하는 등 대뇌 활동을 분석하여 거짓 진술 여부를 파악하려는 연구 또한 진행되고 있다.
  범죄 수사 상황에서 거짓말 탐지에 오류가 발생할 경우 수사 과정에 혼선을 주거나 범죄자를 방면시키는 것과 같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더불어 진실 보고자의 진술을 거짓으로 판단하여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오류를 최소화시킨 정확한 거짓말 탐지 기법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존하는 탐지 기법들에는 어느 정도의 단점이 존재하며 정확성과 실용성 모두를 꾀한 탐지 방법을 꼽기 어려운 실정이다. 거짓말 탐지에 대한 정책 및 연구적 관심을 집중하여 분야의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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