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명 / 프레시안 기획위원, 성공회대 겸임교수

이 기획은 21세기 지구촌 공통의 과제로 등장한 난민 현상의 원인과 문제를 오늘날 변화하고 있는 사회에 맞춰 파악하고자 마련되었다. 과거부터 이어온 난민이 왜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로 등장했는지의 배경과 난민에 대한 각국의 대처방안 그리고 관련된 법을 통해 난민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지금 난민이 왜 이렇게 급증했을까? ② 국경을 벗어나는 과정 ③ 번복되는 유럽의 난민정책 ④ 난민을 위한 법, 법에 의한 난민

 

난민 위기의 시대, 시리아 내전 장기화가 주요인

김재명 / 프레시안 기획위원, 성공회대 겸임교수

21세기 지구촌은 여러 종류의 위기를 겪는 중이다. 경제위기, 환경위기 등으로 내 삶의 질이 지난날보다 떨어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난민 위기는 21세기 국제사회가 풀어야 할 새로운 문제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난민이 엄청 불어났다. 2016년 현재 2천만 명을 넘어섰다. 21세기 지구촌이 ‘난민 홍수의 시대’, ‘난민 위기의 시대’를 맞이했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지구촌 난민들을 돕는 국제기구다. 1950년 12월 14일 유엔총회 결의로 출범한 UNHCR은 지난 65년 동안 수많은 난민에게 인도주의적 구호의 손길을 건네 왔다. UNHCR이 활동을 시작한 첫해인 1951년의 전 세계 난민은 211만 명이었다. 그로부터 난민의 숫자는 꾸준히 늘어나 10년 뒤인 1960년 151만 명, 1970년 248만 명, 1980년 844만 명에 이르렀다.
1928년에는 난민이 1천만 명을 넘어섰다. 1990년대는 동서냉전이 막을 내리면서 냉전 동안 잠복해 있던 국가 내부의 이민족 갈등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 시기였다. 내전으로 10년을 지새운 발칸반도(크로아티아내전, 보스니아내전, 코소보전쟁)가 좋은 보기다. 이에 따라 난민 숫자도 급격히 늘어났다(1993년 2,300만 명, 1994년 2,742만 명, 1995년 2,610만 명). 다행스럽게도 21세기 첫 10년 동안 세계 난민 숫자는 해마다 줄어드는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2011년부터 지금까지 5년 동안 난민의 수는 가파른 상승세에 있다.
UNHCR은 해마다 ‘세계 난민의 날(World Refugee Day)’인 6월 20일에 ‘글로벌 동향보고서(Global Trends Report)’란 제목으로 세계난민에 관한 자료를 발표해왔다. 2015년도 6월에 발표된 가장 최근 자료를 보면, 지구촌 난민은 1,950만 명에 이른다. 2012년 1,540만 명, 2013년 1,670만 명에서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는 추세이다. 2016년도 6월 새로운 동향보고서에 표기될 난민 숫자는 2천만 명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갈 곳 잃은 시리아 난민

그렇다면 최근 몇 년 사이에 그 많은 난민은 어디서 배출된 것일까. 지구에서 가장 많은 난민은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51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은 지구촌의 해묵은 분쟁지역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유혈 충돌 과정에서 비롯된 난민들로서, 최근 갑작스레 생겨난 난민이 아니다. 따라서 최근 난민 위기의 원인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말고 다른 데 있다.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소말리아가 3대 난민 배출지역으로 꼽힌다. UNHCR의 2015년도 ‘글로벌 동향보고서’는 시리아 난민을 388만 명,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259만, 소말리아 난민을 110만 명으로 추산한다. 이 가운데 특히 심각한 분쟁지역은 시리아다.
시리아 난민의 숫자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다. 2012년 말 UNHCR에 등록된 시리아 난민은 50만 명이었으나, 그 이후 2013년 말 232만 명, 2014년 말 322만 명, 2015년 6월 현재까지 400만 명에 이르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다. 현재 시리아 난민의 98%가 머무는 곳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동 주변 5개 국가(터키,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 이집트)다.
많은 시리아 난민들이 서유럽으로 떠나고 싶어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지중해를 건너다 목숨을 잃기도 하고 어렵사리 육지에 닿는다 해도 이들 난민을 따뜻하게 반겨줄 이는 없다. 서유럽 국가들은 지난 1990년대 발칸반도의 보스니아와 코소보에서의 전쟁 때 난민 홍수를 겪은 바 있다. 소말리아, 리비아 등 아프리카 난민들로 가뜩이나 머리가 아픈 서유럽 국가들은 시리아 난민들이 전혀 반갑지 않다. 독일이 그나마 난민 수용에 적극적이었으나, 성범죄를 비롯한 논란을 구실 삼아 빗장을 걸어 잠그려는 모습이다.
1951년에 제정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The Refugee Convention)’에 규정된 난민(refugee)은 “전쟁에서 국적, 종교, 종족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국경을 넘은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전통적 의미의 ‘난민’보다 더욱 심각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국내실향민(Internally Displaced Persons, 약칭 IDP)’의 문제이다.
내전 6년을 맞은 시리아 국내에서 죽음의 공포와 굶주림에 떠는 IDP는 80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말 그대로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 시리아 북부도시 알레포와 중부도시 하마, 홈스, 그리고 수도인 다마스쿠스 주변은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뺏고 빼앗기는 격전을 거듭하면서 주거지가 크게 파괴됐다. 많은 도시민은 거듭되는 포격전을 피해 지하실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중이다.

아무도 멈추지 않는 전쟁

시리아 내전은 언제 끝날 것인가. 난민은 언제 돌아갈 수 있을까. 지금은 긴 어둠의 터널 속이다. 2대에 걸쳐 45년 동안 시리아에서 철권을 휘둘러온 아사드 일족의 독재체제와 그에 맞선 반정부 무장 세력들은 친미(자유 시리아)와 반미(IS)로 갈려 그 어느 쪽도 승리를 이루지 못한 채 내전이 장기화되고 있다.
장기화되는 내전의 또 다른 원인으로 강대국인 미국과 러시아의 중동정책을 문제로 꼽을 수 있다. 미국은 최대 동맹국인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하지 않는 한 시리아 내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의지가 없다. 러시아는 오히려 시리아 아사드 독재정권의 최대 지원세력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최대 반군세력인 이슬람국가(IS)에 대한 공습을 강화함으로써 시리아 독재정권을 이롭게 하는 모습이다.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은 저마다 지역패권을 노리며 시리아 내전에 개입, 내전의 성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왔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 그리고 사우디와 이란 등 중동 주변 국가들이 저마다의 이해관계를 저울질하며 시리아 내전을 바라보는 한, 시리아 평화는 어렵고 난민 위기는 끝을 모르는 터널처럼 이어지기 마련이다. 내전을 멈추려는 국제사회의 평화중재 노력도 지지부진한 가운데 시리아 난민들의 희생은 커지고 좌절감은 깊어만 가고 있다.
“모든 통계숫자 뒤에는 살아 숨 쉬는 인간들이 있다.” UNHCR 책임자인 유엔 난민고등판무관 안토니오 구테레스가 했던 말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지구 상에서 2천만 명이 넘는 난민들이 괴로움을 겪는 중이다. 시리아 상황은 특히 심각하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말로만 인도주의를 외칠 뿐 난민 문제를 나 몰라라 외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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