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호 [특집-대학원괴담 혹은 진실] 어떤 큐브(cube)에 갇힌 K씨의 나날

공동글쓰기: 어떤 큐브(cube)에 갇힌 K씨의 나날

편집위원회

그때 대학원 문에 끼어있던 K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K는 대학원에 다닌다. 즉 원생이다. 그는 저항보다는 타협을, 갈등보다는 화합을 추구하는 아주 ‘상식적인’ 3학차의 원생이다. K를 불쌍히 여기지 말자. K의 혐의는 우리 모두의 것이니까.

2000년 5월 1일, 대학원에서 길을 잃다.
오늘도 K는 가위눌린다. 요즘 들어 그 정도가 심하다. 이마의 식은땀을 훑고 시계를 쳐다본다. 벌써 열시. 주섬주섬 옷을 입고 책과 가방을 챙겨,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집 대문을 나선다. 발걸음은 학교를 향하지만, 간밤에 가위눌린 탓인지 좀처럼 무거운 어깨를 털어내기 어렵다. K의 몸은 아주 자연스럽게 대학원을 향한다. 바로 ‘골’로 간다. 솔직히 K는 대학원말고는 갈 데가 없기도 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K는 이런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곤 했다. 언제나 (놀)꺼리를 찾아 소위 풍류란 걸 좋아하던 날라리였던 K였기에 더욱 그렇다. 대학원에 들어오자마자 처음부터 가위에 눌렸던 것은 아니다. 실은 일하긴 싫고 갈 데는 없고 에라 모르겠다하고 대학원에 왔지만, 나름대로 공부한답시고 뽐낸게 엊그제일 만 같다. 그런데 K가 서서히 달라지는 자신의 육신과 정신상태의 퇴행을 알아챈 것은 요 얼마전 일이다. K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살덩어리들이 자신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들거나, 도대체 현실 감각이라고 없는 궁색한 인간들, 그러니까 이상을 꿈꾸는 선량한 이들 사이에서 발버둥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형 혹은 퇴행을 알아차렸을 땐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라는 물음을 던지는 그 순간부터 가위눌림이 시작됐고 갈수록 그 정도는 심해갔다.

K는 처음에 “저 인간들은 뭐지?”하며 따져 물었지만, 이 근본적 문제의 원인이 인간을 초월한 그 무엇에 있음을 깨달았다. 만약 K가 입 밖으로 내뱉는다면 미쳤다는 소리라 하겠지만, “대학원관은 살아있는 생명체다!”라 생각했다. 도통 이를 깨닫지 못하는 인간들뿐이지만 말이다.
예로부터 학교엔 전설들이 있기 마련이다. 어렸을 적엔 밤 열두 시만 되면 이승복 동상이 살아나 칼차고 돌아다닌다거나 하는 이야기들 말이다. 대학시절엔 청룡연못이나 할매동산에 얽힌 괴담들이 오고갔고 종종 밤잠을 설치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은 세월이 약이라고 추억 속에 묻히고 가끔 우스갯소리로 기억 속에서 불려나오지만, 지금 K가 처한 상황을 돌이켜 볼 때, 진짜 전설은 대학원 관에 존재한다. K는 이 사실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고로 금계포란형 또는 여성의 자궁형이라 할 흑석동 골짜기 한가운데를 차지한 학교의 위치를 고려할 때, 학교 앞 연못골과 Y로 그리고 청룡연못으로 이어지는 음습한 기운을 떨쳐 낼 수 없다. 이럴진대 여성이 총장이 되어야 학교가 잘 된다는 말조차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고로 대학원관은 계곡의 ‘날이라 할 수 있겠다. 노자의 ‘도덕경’에 ‘곡신불사(谷神不死)’란 말이 있다. ‘대마불사’가 아니다. 골짜기 신은 죽지 않는다란 말이다. 풀어보자면 여성의 저 축축한, 마르지 않는 샘을 가리킨다. 어찌 목마른 자가 샘을 찾지 않으랴.

오늘도 K는 ‘타는 목마름’으로 대학원관에 오른다. 그리고 매일매일 꼬리를 끊고 나온다. 마치 홀린 듯 들어갔다가 나온다. 그러나 K는 한번도 계곡의 저편을 본적이 없다. 이 지랄도 꽤 경쟁이 심한 편이다. 계곡의 입구는 비좁은데 어떻게든 들어가려고 대가리부터 밀어 넣는다. 그렇더라도 더 깊숙한 곳은 엄두를 못 낸다. 그곳은 마치 신성함으로 무장한 아니 매직(마법)에 의해 봉인된 곳과 같다. 그러나 그 뻗어 나오는 기운마저 막을 수는 없을 터.
늘 피가 거꾸로 솟는 걸 느끼지만, 가믈고 또 가믈은, 어둑하고 습한, 즉 현묘(玄妙)한 기운을 맡는 순간, 기운이 아스러지고 미련만이 남는다. 아마 K의 일상의 반복이랄까.
대개 한번 발을 들이민 이상 이곳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다만 소수의 몇몇이 골짜기 너머로 넘나드는 걸 보았지만, 그들은 의문부호를 다는 것조차 거부했다. 그저 마냥 이대로 일뿐. 오늘도 K는 골로간다. 계곡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악몽에 가위눌리면서.

2000년 8월 9일, 난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 건지 알고 있다
K가 대학원에 처음 들어왔을 때 선배들에게 지겹게도 많이 들었던 얘기 중에 하나가, ‘대학원은 학교와 사회의 중간이다’라는 얘기였다. 당시만 해도 K는 이것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저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건, ‘넌 풋내기 학부생이 아니라 이젠 공부로 먹고 살 사람이다’는 말이라는 것 정도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당시의 생각이 반은 맞은 것 같다. 차수가 올라가면서 정말 대학원을 가려고 준비하던 학부 4학년 때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심각하게 ‘먹고 살 궁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게 왜 반이 되어야 하는지 궁금하겠지? 흐흐… 거기에 대학원의 음모가 있다고 K는 생각했다.

1차 때는 도대체 일주일에 세 과목밖에 안 듣는데, 이게 왜 이리 하기가 힘들었지? 대학원 공부는 다르다는 말이 틀린 것 같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하지만, 내가 정말 생활하기 힘든 건 단지 학습량이 많아서는 아니었어. 왜 선배들은 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어. 대학원에서 만난 선배들은 모두 자기 앞길만을 바라봤어. 학부 땐 힘들어하면 끌고 가려는 노력도 하더니만, 여기서는 갈구기만 했지. 도대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한테 가르쳐주지는 않고 갈구기만 하면 나보러 어쩌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어. “이건 어쩌죠?”라고 물어보면, “넌 대학원생이란 놈이 그것도 모르냐 ?” 혹은 “그냥 하면 돼”가 전부였어. 이게 무슨 군대인가, 까라면 까게.

대학원 석사 3차가 되었을 땐 말이지, 난 슬슬 3차로서의 짬밥을 챙기기 시작했어. 그러기 위해서는 나에게 타겟이 하나 필요했는데…. 왕따란 게 그렇듯이, 나의 약점을 가리는 방법은 두 가지 뿐이었어. 나같은 패거리에 끼거나 아니면 약점이 있는 놈을 표적으로 삼아서 집중공략을 하는 거지. 그 표적은 바로 1차였지. 선배들 말대로 요즘 1차 놈들은 지나치게 빠졌단 말이야. 1차면 뭐냐. 열심히 대학원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어야 할 놈들이 아니 이제 1년 반을 보내고 말년 맛 좀 즐겨보려는 나하고 같이 놀고 있다니, 이게 말이 되느냐 말이지. 이건 이 사회가 좀 더 공평하고 정당해지기 위해서도 맞지 않는 일이다. 내가 고생했으면 녀석들도 알아서 빠릿빠릿하게 빈자리를 메꾸어야 할 것 아닌가. 1차나 하는 이런 일을 왜 내가 아직까지 해야 하냔 말이야. 재생산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그 조직이 망가진다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어. 1차들이 공부 좀 하겠다고 껄렁대는 것도 볼쌍 사납다. 지들이 공부를 하면 얼마나 한다고. 대학원에 공부 안 하는 사람있느냐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K는 속이 편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좀 지나니 별 효과가 없었다. 여전히 뭔가가 꼬여 있었기 때문이다. K는 그 비밀을 우연히 들은 한 박사 선배의 푸념에서 알게 되었다.
“젠장 돈 벌랴 공부하랴 정신이 없구만. 교수가 어제 또 나한테 책 얘길 꺼냈다. 이게 금년만 벌써 몇 번짼지 원. 이번 책엔 내 이름을 좀 넣어줄지 모르겠다. 더러워서 나도 이제 앞길 좀 보여야 할 거 아니야. 그렇다고 시키는 거 안 할 수도 없고. 정말 X같네. 아휴, 이름은 고사하고 돈이라도 좀 띠어줬으면 좋겠다. 내가 무슨 노예도 아니고... 그나저나 이 자식들은 선배들이 오라고 그랬으면 잽싸게 튀어올 것이지, 왜 이리 안 오는 거야. 석사들 주제에... 난 석사 때 도서관 자료 뒤지고 다닌 기억밖에 없다. 이런 기회라도 주면 감지덕지한 줄 알 것이지, 무슨 지들이 한 거라고 싸가지 없이 댓가를 바라는거야. 아직 박사인 나도 함부로 말을 못 꺼내고 있는데 말이야.”
사실 K는 그 때 그 선배가 불러서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즉 잽싸게 튀어가야 할 후배는 바로 나였고, 그가 날 부른 이유는 교수가 시킨 일 중 무언가를 K씨에게 시키려는 것이었다. 아마 난 그의 일을 도와주고 술이나 밥을 한 끼 먹게 되겠지.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치레와 함께 말이야. K는 대학원에서 ‘먹고 살 궁리’를 하면서 먹는 게 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2000년 8월 27일, K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몇 가지 것들
K는 오늘도 어김없이 터덜터덜 학교로 향했다. 대학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J를 보았다. 저 시끼. 난 시끼만 보면 재수가 없어. 지가 뭐 그리 잘 났다고. 모르는 척 지나쳐야지.
K는 J를 피하려 고개를 푹 숙였다. “여어, 어디가?” K는 결국 아는 척을 하고 말았다. K는 잘 나가는 J와 굳이 나쁘게 지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요즈음 바쁘다며?” “그냥…. 교수가 시키는 일이 좀 있어서.” “거참, 살살 좀 살아.” K는 J에 대한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K는 대학원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좌절을 겪었다. 그 좌절은 J 때문이었다. K와 J는 입학동기로, 그 학기 신입생은 그 둘이었기에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K는 J가 불편했다. 왜냐하면 K는 자신과 J가 비교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강의시간과 세미나 때면 우울해졌다. 강의 시간마다 교수들은 J의 발언을 상당히 높이 샀고, 그에게만 질문을 던졌다. 또한 그의 발제문은 언제나 화제거리였다. 아무리 튀고 싶어도, J가 있어 불가능해 보였다. J의 축적된 경험을 K로선 쫓아갈 수 없었다. 언제나 소외되는 K였다.

그런 K를 더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J의 태도였다. J는 자신에게 뻗치는 수많은 도움의 손길에 무관심한 듯 보였다. J는 교수들과 선배들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걸핏하면, 교수들 밑에서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하는 사람들을 비웃었다. 한 번은 교수의 심부름으로 자료를 찾으러 허겁지겁 뛰어가는 선배의 뒷모습을 보면서, “막말로, 저런다고 누가 키워주나?”라고 중얼거렸다. 그런 J와 같이 있으면, K는 작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J는 늘 그렇게 당당했다.
그런데 얼마 전, K는 충격을 받았다. K는 어느때 부터인가, 과 분위기가 허수선하다고 느꼈다. 과 사람들은 ‘어느 정도 했어?’ 혹은 ‘초고가 언제까지야?’라고 안부를 대신하는 것이다. 다들 바빠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자신만 한가하니 뒤쳐지는 느낌이었다. 바쁘다는 것은 곧 능력이 있음의 다른 말이니까. K는 그 이유도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도대체 뭘까.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다. K가 배제된 것을 모르는 N선배가 힌트를 주었던 것이다. “너는 주제가 뭐야?” “네?” “거, S교수 신간 말이야. 난 논문 땜에 못해. 교수이름으로 나가지만, 기획은 괜찮은 거 같애”

아무도 얘기해준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K는 충격을 받았다. J가 총괄책임이란다. J가 ‘몰러 팀을 꾸리고, 주제를 정하고, 교정을 본다고…. 이제 3차밖에 안된 J가 선배들을 제치고, 책임을 맡았단다. 도대체 왜 내가 빠졌을까. J는 나를 왜 뺐을까. 사실이 아닐 거야. 박사 선배들도 많은데, 설마 J가 그렇게까지…. N선배가 잘못 안 게지. 하지만 왜지. J에게 물어볼까. 안돼. 그럴 순 없어. 아니지…. 뭐야? 그 놈은 매일 비판을 했잖아. 속 보이는 놈. 도도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J의 도덕성에 감히 근접할 수 없었던 K는 참을 수가 없었다. K는 이유를 물어야 했다. J는 ‘인정적(人情的) 합리성’이라고 답했다. 교수가 J에게 잘 한단다. 너무 잘 한단다.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주는, 그렇게 잘 해주는 교수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어려웠단다. 그렇지만 J, 자신은 별 다른 뜻은 없다고. 교수에게 잘 보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그런데 K는 정작 중요한 것을 묻지 못했다. 왜 자신은 배제되었는지에 관해서.

그 날 이후로, K는 혼자만의 고민이 생겼다. 매일 밤마다 자신과 J가 함께 보낸 1년 6개월을 생각했다. 처음 만난 그날로 거슬러 올라가 보기도 하고, 세미나, 강의시간 등도 기억해 보았다. 그렇게 끊임없이 되짚어 보았다. 혹시 자신이 J에게 실수 한 적은 없는지.

2000년 9월 15일, 대학원은 실력을 키워주는 곳이다. 아… 실수, 실연이다
K는 오늘은 땡땡이를 결심했다. 이런 기분으로 학교를 간다는 것은 ‘나 찍히겠소‘하고 자임하는 꼴이 될 테니깐 말이다. ‘따르르릉’ 간밤의 악몽을 깨우는 전화벨소리는 우렁찼다.
“여보세요”
잠이 묻어나는 K의 목소리가 송수화기 너머로 전달이 되었는지 말았는지 저편에선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 나야”

P였다. 일주일만에 들어보는 P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사소한 일로 K에게 토라진 채로 지금껏 전화한 통 없었다. K는 오랜만의 그녀의 전화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웠다. 오후에 만나자는 얘기를 꺼내는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도 단조롭고 평이해서 마치 어제 만나고 헤어진 사람 같았다. 하지만 K는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올 것이 왔다는 것을.
평일 오후의 찻집 안은 한산했다. P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군대 제대 후 졸업, 그리고 대학원을 진학하는 것과 동시에 만난 P. 벌써 1년 반전의 일이었다. 중학교 졸업 후 9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그녀의 미모와 우아한 자태는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K와 그녀는 중학교 시절 한 쌍의 아름다운 커플이었다. 똑똑하고 명민한 반장이었던 K와 예쁘고 다소곳했던 부 반장이었던 그녀는 반 아이들의 부러움뿐 아니라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종종 그들의 그림 같은 모습을 즐기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K는 그녀에게 자신이 곧 대학원을 진학할 것이며, 나름의 학자로서의 비전을 자랑했다. 물론 속으론 ‘설마 믿겠냐’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왠걸. 그녀의 눈은 ‘존경심’으로 반짝했고, 우린 연인이 되었던 것이다.
“멍청하게 입벌리고 앉아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뒤통수를 치는 듯한 P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그녀와의 과거회상 씬에서 흠칫 빠져 나왔다. 막 직장을 다니며 수줍고 수수했던 그때의 P와는 달리 지금 그녀는 짙은 화장에 도전적인 옷차림과 거친 말투로 K를 조금씩 당황하게 만들고 있었다.
“용건부터 말할게. 나 선봐.”
P의 일상적 어투는 꼭 시장이나 목욕탕, 또는 미용실을 간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들렸다.
“니가 졸업하면 어디 취직을 하기라고 할거니. 또 누가 시켜주기라도 한데? 그렇다고 니가 빽이 있어 강의 자리를 얻을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집안이 받쳐 줘서 유학을 갈 수 있길 해.”
P의 말은 청산유수 같아서 끼어들 틈이 없었다. 꼭 인민재판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가방 끈 길다고 다 좋은 거 아니라는 거 잘 알잖아. 말이 좋아 대학원생이지, 이건. 백수보다 더 악질이야. 너나 내 입 속에서 나오는 유식한 말들로 남 주눅들게나 하지, 뭐 이 사회에 보탬이 되게 하는 거 있냐. 매일 교수 앞에서 설설 기고…. 후배가 해 놓은 거 니가 한 것 처럼 가로채는 걸 본 게 하루 이틀이어야 말이지. 강자 앞에서는 약하고, 약자 앞에서는 강하고. 그게 니가 말하는 진보적인 지식인의 참모습이냐.”
여기까지 얘기하고 P는 숨이 찼는지 물을 꿀꺽꿀꺽 들이켰다.
“어쨌든, 미래도 없고, 빽도 없고, 돈도 없고, 거기다 인간성까지 글러먹은 인간하고 더 이상은 만나고 싶지 않아. 그래도 지금까지 만난 정을 생각해서 내가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이 한마디 있다. 너, 앞으로 그렇게 살지마.”

P는 K의 말은 한마디도 듣지 않고 일어섰다. 점원이 주문한 차를 가져오기도 전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P의 뒤모습이 일으킨 바람이 쌩하니 불어오고 나서 한참이 지난 후에야, K는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 밖은 벌써 어두웠다. 찬바람이 코끝을 스치며 몸을 한없이 움츠리게 했다. K는 생각했다. 아, 공벌레가 되고 싶다. 그리고 한없이 한없이 작아지고만 싶다.
K는 P와 헤어졌다는 실연의 아픔보다, 그녀가 했던 말들이 더 뼈아프게 다가왔다. P의 한마디, 한마디가 반복해서 재생되었다. 하지만,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IMF 한파에 밀려 집안에 입 하나 덜어 보려고 쫓기듯 군대에 갔고, 제대하고 졸업할 때쯤 실업율이 최대치를 갱신할 때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대학원이었다는 걸. 그럼 P와의 헤어짐도 예정된 수순이었단 말이더냐.

2000년 12월 6일, 대학원은 살아있다, 고로 나는 죽어간다
K는 생각했다. 유독 자신만이 거미줄에 걸려 바둥거리는 파리 신세는 아니다. 옆의 H를 봐도 L을 봐도 나와 별반 차이가 없으니까 말이다. 이상한 건 그들의 이상한 여유로움이다. 언제나 허허거리고 후배 여자들이 줄기차게 쫓아 다니질 않나, 유뷰남이면서도 간간히 시간을 쪼개 다른 여자를 만나러 다니질 않나. 그들도 자신과 같이 대학원이란 거미줄에 걸려 살아가기는 마찬가진데, 도대체 뭐가 문제냔 말이다.

나의 생활 패턴은 오후반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바뀌어버렸고, P와는 끝장이 나버리고 수업에도 흥미를 잃고 말았다. 더더구나, 교수들한테는 완전 날라리로 찍혀 있으니 논문을 어떻게 써야 될지 막막하다. 졸업하면 뭘 하나. 변변한 기술도 익히길 했나, 믿는 것은 구라뿐인데 요즘 어떤 직장에서 말만 많은 놈을 쓰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막막한 것은 매일반인건 마찬가지다. 곧 졸업이라는, 또 실연이란 폭탄을 맞은 지금의 심정으로는 도대체 출구가 보이질 않는다. 게다가 K의 주위에는 그를 노리고 있는 부비트랩들이 존재한다.

누군가가 자신을 쫓고 있다는 확신이 드는 것도 요즘이다.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대학원 복도에 있는 인터넷 전화기이다. 처음엔 공짜라는 말에 무료통화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점괘를 보는 순간 ‘이것이 나를 옭아매려는 고도의 수법’임을 깨달았다. ‘천파성이 있어 당신의 인생은 천지풍파를 겪을 것이며...’ 이런 X같은 경우가 다 있나. 도대체 컴퓨터사주 나부랭이가 언제부터 인간에게 이런 부정적인 메시지를 주기 시작했단 말인가. 사실 어떤 컴퓨터 회사에서 시범용으로 갖다 놓았다고는 하지만 대학원이 시장성이 있기나 하냔 말이다. 생각해보면, 커피 자판기도 의심스럽다. 보통 하루에 세잔 정도 먹는 편인데, 유달리 K가 뽑은 커피잔들은 많이 샌다.
K는 주변의 A를 불러, 최근에 정리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대강 ‘우리한테만 이상한 일이 연이어 일어나는 것 같다, 주저리주저리, 어떤 교수는...주변에 1차들을 볼 때도...인터넷 전화기나 커피자판기만 해도 그렇다...’이런 정도의 이야기를 꽤나 자세하게 말하였다. 그런데, A란 놈 반응이란 것이 고작 기지개를 한껏 피더니 피식 웃고 자리를 뜨는 것이 아닌가.
아! 그것은 ‘다 알고 있다’는 반응이었다. 그래, 그 친구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그리고 그 뒤 배경에 대해서도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야 모든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K는 자신이 무능하거나 소심해서 주변의 자그마한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K를 배제하고서 이야기들이 굴러가는지는 몰랐다. 그러고 보면, 대학원 건물은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긴 하다. 2층의 로비에서는 1층 현관이 다 내려다보이는 것이다. 왜 다른 층들은 보통의 복도 모양을 유지하는 데 유독 2층만 그렇게 만들어 놓았을까. 2층에 올라갔을 때, 그 이유를 알았다. 아래의 사람들은 전혀 2층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그동안 자신을 지켜보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대학원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K를 서서히 소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일들이 하나의 회로판 처럼 분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 K는 자신의 문제가 오로지 그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K는 깨달았다. 대학원은 하나의 기계처럼 이미 완결된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각 학기마다 일어나는 일들, 논문을 쓰는 것, 교수와 그 밑에서 열심히 줄을 서는 선배들, 앞이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여유 있는 사람들…. 모두들 K를 속이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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