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욱 /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인공지능 혁명과 산업 변화]

오늘날 인공지능은 가장 빠르게 발전 중인 기술 중 하나이다. 알파고와 챗GPT(ChatGPT) 등 각종 미디어에서 관련 기술들을 접하고 있긴 하지만, 대중들이 해당 기술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다. 이에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의 기본적인 의의와 더불어 본 기술이 산업계와 일자리에 미칠 포괄적인 영향 등을 살펴볼 것이다. 또한, 현재 인공지능 기술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만큼 인공지능에 기반을 둔 새로운 기술들이 더 적극적으로 활용될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우리가 경험하는 인공지능 ② IT산업과 만난 인공지능 ③ IT 인공지능 기술과 음식의 만남 : 푸드테크 ④ AI 일자리 위협에 대한 대응
 

인공지능과 노동의 미래에 대한 고찰
 

김관욱 /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로봇과 인공지능: 쿠팡 물류의 최신 기술을 소개합니다” 작년 9월 쿠팡은 자사의 최신 기술력에 대한 홍보 영상을 공개했다. 3,200억 원을 투자해 구축한 대구 풀필먼트(Fufillment) 센터의 로봇 시스템과 AI기술은 고객의 주문 직후 제품의 피킹, 포장, 분류, 배송에 이르기까지 “폭발적 형태로 고객경험을 바꾸는 것”이 실현됐음을 증명하는 듯했다. 빅데이터를 통해 미리 고객들의 소비패턴을 분석해 재고를 관리하고, 최적의 경로를 계산해 모든 고객의 ‘새벽배송’ 요구에 대비한 모습이었다. 영상 속 물류센터의 노동자와 배송 기사의 모습은 첨단 로봇과 인공지능의 도움 속에 매우 편리하고 정확했으며, 그래서 여유로워 보였다. 4차 산업혁명에서 노동자가 기대하는 긍정적 변화의 모범답안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올해 초에만 쿠팡물류센터 노동자 3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그 이전에도 물류센터 야간근무자, 심야배송 기사의 사망 소식은 이어져 왔다.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19 시기 배송물량의 급증 시기에 더욱 악화된 양상이었다. 아무리 자동화의 도움으로 인간의 노동력을 보완했다 하더라도 인간이 해야만 하는 작업, 그것도 야간에 해야하는 일이 존재했다.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전주희 연구원은 쿠팡의 빅데이터 분석에서 물류센터 노동자가 퇴근 후 육체적 피로를 회복하고 다시 작업이 가능한 하루 적정 작업량이 결여됐음을 지적한다. 분명, 로봇과 인공지능의 개입은 세부적인 노동 공정에 있어서 인간의 노동력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것이 이들의 육체적 피로의 회복 속도까지 배려해 주지는 못하는 현실이다.

생성형 AI가 가져올 장밋빛 미래

  작년 11월 전 세계에 ChatGPT가 공개되면서 생성형 AI가 가져다줄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폭발했다. 공개 2달 만에 1억 명의 사용자를 돌파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지난달 2일 서울에서 열린 SBS D포럼 “AI시대, 다시 쓰는 경제 패러다임”의 기조 강연자 아니마 아난드쿠마르(Anima Anadkumar) NVIDIA AI연구 책임자는 생성형 AI가 쓸 변혁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녀는 산업지형의 변화는 물론 암과 팬데믹, 심지어 기후변화까지 생성형 AI를 통해 해답을 찾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 또한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은 생성형 AI가 만들어낼 시장의 규모가 매년 61% 성장하며 2027년에 122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러한 장밋빛 미래에 대한 논의 속에서 쿠팡 노동자처럼 소위 고스트워크, 크라우드 노동, 야간노동에 내몰린 노동자는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인공지능과 노동에 대한 두 가지 관점

  한편, AI가 초래할 미래의 노동에 대한 시각은 일반적으로 두 부류로 구별된다. 첫 번째는 소위 AI ‘최소주의’를 주장하는 부류로 AI의 장밋빛 미래는 일종의 과장광고 혹은 강매와 다름없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AI에 의한 자동화의 수준이 아직 인간을 완벽히 대체하기에 시기상조이며, 과장된 광고와 달리 사회가 기대하는 속도와 편리에 맞추기 위해서는 주야로 일해야 하는 인간 노동자가 필수적이라 강조한다. 즉, 여전히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한 시대이고, 작금의 자동화 시대란 소위 ‘가짜-자동화(Fauxtomation)’, 혹은 ‘헤테로메이션(Heteromation)’이라 해석한다. 이와 달리 AI ‘최대주의’를 주장하는 부류는 AI가지닌 자동화 능력이 종국에는 인간의 노동을 온전히 대체할 날이 올 것이며, 그로 인해 더 많은 자유시간을 지닐 것이라 낙관한다. 대표적 인물이 바로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2020)의 저자 아론 바스타니(Aaron Bastani)이다. 그는 자신의 책 제목처럼 일명 FALC(Fully Automated Luxury Communism) 사회를 주장한다. 즉, AI를 포함해 태양열·유전자 편집·소행성 탐사 등 첨단과학기술이 가져다줄 미래에는 자원의 희소성과 계급의 모순이 온전히 사라지고 모두가 ‘탈노동’의 미래를 맞이할 것이라 예측한다.

  이처럼 AI가 초래할 미래의 모습을 비관할 수도, 낙관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선택의 문제나 예측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인류는 이와 관련해 선행학습의 기회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전 세계가 최첨단 과학기술을 총동원해 감염과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보호하고자 했다. 바로 이 시기 목격했던 노동의 현실이 어찌 보면 AI가 초래할 미래의 노동을 미리 보여줬는지 모른다. 미국 제22대 노동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는 팬데믹 시기 노동자의 계급은 새로운 구분의 시대를 맞이했다고 보았다. 안전지대 안에서 원격으로 일할 수 있는 ‘Remotes’, 안전지대 밖에서 대면으로 노동을 해야만 하는 ‘Essentials’, 비대면으로 실직자가 된 ‘Unpaid’, 아예 존재조차 모른 채 일하는 ‘Forgotten’이 그것이다.

인공지능 논의에 가려진 노동의 본질적 문제들

  이러한 라이시의 분류법은 위기의 순간 기술문명의 인프라에 대한 접근성이 노동자에 따라 차별적으로 제공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앞으로 인간이 마주할 위기의 순간은 분명 또다시 도래할 것이기에 그의 지적은 AI시대에 대한 예측에 있어 중요한 참고점이 된다. 아직 위기가 도래하지 않은 시점이지만 그러한 조짐은 여러 곳에서 징후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 예로, 콜센터 상담사를 들 수 있다. 필자가 현장연구를 진행 중인 콜센터의 경우 작년 초부터 AI음성상담이 제공되면서 상담사들이 담당해야 하는 콜의 절대적 양이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단순히 수치가 보여주는 현실이다. 실제로는 아주 간단하고 쉬운 콜상담만 AI상담으로 대체됐다. 고난이도의 상담은 모두 상담사의 몫이었고, AI가 처리하다 오류가 생긴 경우 그 뒤처리 역시 상담사의 몫이었다. 결과적으로 상담을 한 고객의 수는 감소했지만, 각각의 고객과 통화한 시간은 증가했고, 그 내용 또한 복잡했다. 그럼에도 줄어든 숫자만큼 월급의 인센티브도 적어졌다.

  AI에 대한 낙관 혹은 비관, 그 어떤 것을 기대하든, 이에 대한 모든 논쟁은 그 진위와 상관없이 실제 노동자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게 한다. 이런 현실은 AI가 앞으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해 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혹시 노동의 현실을 가려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의구심마저 들게 만든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을 대체할 획기적 ‘기술’이 아니라 불완전한 ‘노동윤리’ 및 ‘노동안전’에 대한 시급한 보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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