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영 / 큐레이터

[예술_사진을 통해 사유하기]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카메라의 발명, 필름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인공지능이 만들어 내는 사진 이미지 등 사진이 발명된지 200년 만에 사진분야는 급격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도 사진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와 개념, 사진을 읽는 방법, 그리고 사진이 현대미술에 미친 영향에 대한 깊은 지식은 사진 전문가 이외에는 한정된 영역처럼 느껴진다. 이에 지금 시대에 사진을 쉽게 촬영하는 것만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사진의 역사와 탄생 ② 사진 해석의 중요성과 평론 ③ 사진과 현대미술의 상호작용 ④ 사진매체를 활용한 실험적 예술가들

 

지진 방지 액자와 기대야 하는 사진

 

김아영 / 큐레이터

이정근, 〈Water World〉, 스틸, 스테인리스 스틸, 파우더 코팅, 어항, 유리, 물,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77×146×125cm, 2023.
이정근, 〈Water World〉, 스틸, 스테인리스 스틸, 파우더 코팅, 어항, 유리, 물,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77×146×125cm, 2023.

 

  예술로서 사진은 존재 가치와 의미를 의심하고, 또 의심받는다. 많은 사진가들이 사진의 매체적 특성을 정의 내리고 그것을 증명해나가는 작업에 몰두한다.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와 시대에 따른 기술 발전을 경유하며, 한때 혁신으로 여겨진 사진의 기술·광학적 속성은 한계와 극복의 대상이 돼 버렸다. 2차원의 평면이라는 사진의 특성은 종종 3차원의 입체로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로 읽히는가 하면, 정지된 이미지로서 사진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여겨지기도 한다. 회화의 대체재로 시작한 역사 때문인지 혹은 오랜 기간 예술로서 인정받지 못한 불완전함 때문인지 사진은 사진만의 구역 또는 경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 삼아 스스로를 정의하고 증명하는 데 집중해 온 듯하다.

  그러나 사진은 늘 거짓과 사실의, 정지와 운동의,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사적 기억과 공적 기록의, 실용과 순수의,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 위에서 존립해 왔다. 사진은 오직 사진으로 존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지만, 어쩌면 경계 위에 놓인 불안정성과 위태로움이 사진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미술의 역사에서 사진은 원본의 아우라를 해체하는 표현 매체이자 혼성과 절충을 위한 수단으로 선택돼 왔다. 보장되지 않은 순수함과 다면성, 중간자적인 특성이 사진이라는 매체의 안팎을 구성한다. 누구나 만들고 공유하며 소장할 수 있게 된 동시대 사진의 지위는 더욱 그렇다. 데이비드 조슬릿(David Joselit)은 사진 이미지를 자유롭게 교환하고 유통할 수 있는 통화(Currency)에 비유하며, 네트워크 속에서의 이미지 생산과 유통의 거대한 잠재력을 언급했다. 이제 매체만이 지닌 견고한 힘, 또는 순수성을 증명하거나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경계 위 불안정함과 위태로움을 탐구하는 시도와 그 가능성에 주목할 때다.

 

위태로움을 마주하고 드러내기

 

  이정근은 사진 매체의 유약하고 연약한 특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작업을 선보인다. 본고의 제목으로 차용한 〈지진 방지 액자와 기대야 하는 조각〉(2022)을 비롯해 그의 최근 작업에서 사진은 〈너네 집에 가는 길〉(2023)과 같이 가시 돋친 구 형태의 조형물 안에 자리하거나, 〈Temptation Trap〉(2023)처럼 여러 개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3미터가 훌쩍 넘는 크기의 스테인리스 액자 속 일부만을 드러낸 채 보호받고 있으며, 〈눈 좀 패스해 줘〉(2023)에서는 시각적 조형성이 강조된 액자와 무게감 있는 뮤지엄 글라스에 둘러싸여 있다. 사진보다는 조각으로 불리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법해 보이는 그의 작업은 사진과 사진을 둘러싼 액자를 물성적으로 대비시키는 방법을 통해 사진의 연약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방법이 오히려 연약한 사진 이미지에 집중하게 하는 힘을 만들어낸다. 이는 사진 매체만의 기술적 능력 또는 그 영향력과 강인함을 부각하며, 이미지 자체의 힘을 강조해 온 여타 작품들과는 대조적이다. 최근 OCI미술관에서 진행된 개인전에서 그는 수해로 인해 작업실이 침수됐던 과거의 개인적 경험을 밝히며, 평범한 나무 액자로 제작한 사진 작업들이 물에 젖거나 잠긴 사건이 작업의 계기가 됐다고 언급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사진을 보호하는 동시에 너무도 과장되고 장식적이어서 발걸음이 오래 머물 수밖에 없는 독특한 형태와 크기의 액자를 고안해냈다.

  화려하고 또 수사로 가득한, 비대해져버린 액자를 보고 있으면 외려 역설적으로 화려함 안에 포장된 ‘단순하고 조용한’ 이미지에 집중하게 된다. 그의 작품은 마치 범람하는 이미지 홍수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사진과, 그런 사진이 자리한 동시대적 위치나 위상을 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액자라는 외피는 의도적으로 이미지를 향한 시선을 빼앗으며, 알맹이보다는 껍데기에 현혹되며 그 비대하고 조악한 포장에 결국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 지금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단편적으로 작품의 제목과 사진 속 이미지는 서로 지시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Water World〉(2023)는 비오는 날 창문 위에 손가락으로 그린 (울고 있는☹) 스마일을 찍은 사진이 스테인리스 액자에 담겨 있고, 액자는 다시 육면체의 유리 어항 안에 반쯤 잠겨 있다. 그리고 네 개의 투박하고 무거운 다리가 유리 어항과 그 안의 사진을 받치고 있다. 사진 속 스마일을 그린 손가락의 자국은 필립 뒤봐(Philippe Dubois)의 설명처럼 사진은 현실의 ‘자국’이자 대상을 지시하는 ‘흔적’으로서 수해와 침수로 작업이 소실돼 버린 작가의 상황과 감정을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그 사진 이미지 또한 “모두 과장되고 조작된 장면이다”(작가 노트) 우리는 곧 작품이 실제로 존재할 수 없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사진으로 담고자 연출한 이미지들은 빛, 공기, 시간, 날씨, 물방울 등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고 형체가 없는 대상이거나 멈춰 있거나 지속되지 않는 불안정한 상태를 소재로 하고 있다. 우리는 사진을 보며 은연중에 사진의 사실성을 맹신하려는 태도를 견지하지만, 그 태도와는 무관하게 현실의 많은 사진 이미지는 포토샵이나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에 의해 과장되거나 조작되며, 이미지 생성 AI인 미드저니(Midjourney)가 만들어 낸 것처럼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현실의 장면, 즉 보이는 것을 찍는다는 사진에 관한 통념과는 반대로 작가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장면이나 상황을 연출하며 매체에 관한 관념을 전복하는 동시에 작업의 의도를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도록 혼란을 유도한다.

 

불안정성과 위태로움에 기대기

 

  그의 작품에서 사진 이미지와 사진을 둘러싼 모든 요소가 사진 매체를 지시한다. 이정근의 작품은 결국 사진이라는 매체를 다루는 경험에서 시작돼, 액자의 형태와 재료, 고정 장치 등 작품을 구성하는 크고 작은 요소가 사진 매체를 향한 고민과 그것을 대하는 태도, 매체를 둘러싼 환경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무척 사진적인 작업의 결과물로 읽힌다. 그의 작품을 살피며 고민의 흔적들을 찬찬히 발견하다 보면, 그가 사진 매체를 향해 얼마나 큰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상태는 정의나 판단을 유보하고, 대상을 편견 없이 직시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모든 작품은 작가로부터 시작된다. 실험, 혁신, 변화와 같은 강박이나 중압감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를 들여다볼 때 분명하고 솔직한 마음과 생각을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작품을 보는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늘 분명하고 명확하며 안정적일 필요는 없다. 때로 그 불안정성과 위태로움이 더 큰 힘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