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나현 / 큐레이터

[예술_사진을 통해 사유하기]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카메라의 발명, 필름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인공지능이 만들어 내는 사진 이미지 등 사진이 발명된지 200년 만에 사진분야는 급격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도 사진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와 개념, 사진을 읽는 방법, 그리고 사진이 현대미술에 미친 영향에 대한 깊은 지식은 사진 전문가 이외에는 한정된 영역처럼 느껴진다. 이에 지금 시대에 사진을 쉽게 촬영하는 것만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사진의 역사와 탄생 ② 사진 해석의 중요성과 평론 ③ 사진과 현대미술의 상호작용 ④ 사진매체를 활용한 실험적 예술가들

 

사진의 시선으로 바라본 예술

 

맹나현 / 큐레이터

 

  사진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에 스며들었다. 다양한 기종의 카메라와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부터 누구나 쉽게 사진을 활용해 일상을 기록할 수 있게 됐으며, 이제 사진술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기술 중 하나이다. 동시대 예술에서도 사진은 익숙한 매체 중 하나이며, 평평한 한 장의 사진으로 출력된 작품 이외에도 사진으로 조각을 만들거나 디지털 이미지를 활용하는 등 새로운 방식의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기술과 예술 사이, 늘 애매한 사진의 위치

 

  사진이 처음 세상에 보급됐을 당시에는 예술 매체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기보단 여러 측면에서 편리성을 제공하는 획기적인 기술에 가까웠다. 1826년 조제프 니세포르 니엡스의 최초의 헬리오그라피 사진과 1837년 그의 동료였던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의 다게레오타입을 통해 20분이면 초상 및 정물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촬영 시간은 단축됐으며, 카메라는 휴대하기 용이해졌다. 이렇듯 사진은 우리의 일상에 깊숙하게 침투하기 시작했지만, 당시 사진을 접한 예술가들의 시선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초기에는 단지 사진을 기술로 치부하며 자신의 그림에 도움이 되는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했다면, 점차 회화와 조각 등 기존의 매체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일부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심상을 표현하기 위한 새로운 매체로 사진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극단적인 양상은 쉽게 와해되지 못했지만, 기술로 인식되던 사진 매체를 예술로 안착시키려 했던 많은 노력들이 존재했다. 이에 사진을 기술로 인식하던 20세기 초중반, 사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던 대표적인 사례와 이러한 시도가 현대 미술에 미친 영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초현실주의와 사진

 

  1920년대 초반 사진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예술가는 ‘초현실주의자들’이다. 초현실주의는 현실(Real)을 넘어(Sur)선 초현실적이면서도 이성의 굴레에서 벗어난 무의식과 꿈, 환상의 세계를 예술로 표현하고자 했던 예술 장르를 의미한다. 그 당시 사진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측면이 강조됐던 매체로,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이러한 사진의 특성을 활용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했다.

  또한 이들은 의식과 무의식을 혼합해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거나 꿈과 환상, 비현실적인 요소를 부각해 현실에는 없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미지를 탄생시켰다. 이를 위해 무의식적으로 이미지를 기록하는 자동기술법과 우연적인 결과에 기대는 콜라주, 앗상블라주, 데칼코마니 등의 기법이 활용됐는데, 현실과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는 사진은 콜라주의 재료로 자주 활용됐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직설적인 이미지를 새롭게 결합해 만들어 낸 이질적인 이미지는 그들이 상상하는 세상을 추상적이면서도 직설적으로 묘사하며 그 효과를 촉진시켰다.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예술가인 만 레이는 사진과 빛을 활용한 레이요그래프라는 기법으로 추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었다. 또한 사진의 네거티브 현상과 이중노출 기법을 활용해 현실에 기인하지만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재현해냈다. 반전된 이미지를 만드는 네거티브 인쇄 기법과 현실 속 이미지를 여러 겹 중첩해 친숙하지만 낯선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이중노출 기법은 실재하는 장면을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만 레이는 더 나아가 그가 마주한 현실을 수동적으로 촬영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상황과 대상을 구성해 연출 사진을 촬영하기 시작한다. 1932년 발표한 작업 〈눈물〉은 화면 가득 채운 여인의 눈과 눈물이 강조된 사진인데, 이 사진은 독특한 분위기와 구도로 이목을 끈다. 하지만 사실 이 사진 속 여인은 마네킹이며, 눈물 역시 유리 구슬을 얹혀 연출한 사진이다. 이렇듯 그의 작업은 있는 그대로의 장면을 포착할 것이라는 사진에 대한 편견에 균열을 일으키며, 익숙한 재료로 연출한 극적인 장면을 담은 사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했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현실의 자국(Index)을 남기는 사진 매체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극대화했다.

 

잭슨 폴록의 드리핑 작업의 가능성

Jackson Pollock painting in his studio on Long Island, New York, 1950. ©Hans Namuth
Jackson Pollock painting in his studio on Long Island, New York, 1950. ©Hans Namuth

 

  만 레이는 현실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기 위해 사진을 활용했다면, 지금부터 소개할 한스 나무스의 사진[도판 1]은 이전까지 정당한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위대한 예술 작품을 세상에 증명하는 증거로 채택됐다.

  잭슨 폴록은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이 자주 사용했던 자동기술법과 무의식적인 이미지에 영감을 받아 1940년대부터 드리핑기법을 활용한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커다란 크기의 종이와 캔버스를 바닥에 두고 캔버스 사방을 왔다 갔다 하거나 그 안으로 직접 들어가 페인트를 붓거나 물감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을 완성해나갔다. 1950년 여름 한스 나무스는 잭슨 폴록에게 그의 작업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렇게 촬영된 그의 사진은 물감을 역동적으로 흩뿌리는 잭슨 폴록의 동세를 제대로 포착했다. 이후 이 사진은 그를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 탈바꿈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여전히 잭슨 폴록을 대표하는 사진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스 나무스가 촬영한 잭슨 폴록의 사진들을 유심히 보면, 그가 단순히 작업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촬영한 것이 아니라, 작품의 본질을 담아내기 위해 고심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촬영자의 시선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데, 작품의 스케일을 강조하기 위해 망원과 광각을 적절히 활용하거나, 역동성을 강조하기 위해 버드 아이뷰나 사선의 각도로 촬영하는 등 세밀하게 뷰 파인더를 조정해 그 순간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통해 증명된다. 당시 촬영된 사진이 흑백이라는 점 역시, 작품 위의 화려하게 수놓은 물감의 흔적들이 아닌 작가의 손과 표정, 움직임, 붓에서 떨어진 물감의 자국 등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그의 사진은 우연의 효과를 강조했던 드리핑기법을 더 극대화하며, 난해하게 여겨졌던 잭슨 폴록의 작업 과정 자체를 노출함으로써 작품의 진정한 가치를 배가했다.

  이처럼 예술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사진은 늘 그 기로에서 새로운 시선과 접근법을 제시하거나 생략됐던 과정의 순간을 증명하는 등 주요 역할을 수행해왔다. 카메라라는 몸체를 통과해 인화된 이미지로서의 사진 그 자체가 예술로 인정받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동시대 예술에서 사진은 평평한 한 장의 사진을 넘어 다양한 형태로 변주하는 이미지로 기능하며 매 순간 새로운 예술의 혁신을 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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