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성 /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석좌교수

[알 수 없는 아이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아이들이 살고 있다. 끔찍한 잘못을 저지르거나, 반대로 괴롭힘을 당하고, 알게 모르게 차별을 당하는 아이들까지. 이를 위해 어른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양한 아이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어떤 미래를 물려줄 수 있을지 고찰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촉법소년, 언제까지 보호해야 하는가 ② 여전히 이어지는 아동학대 ③ ‘노키즈존’, ‘~린이’. 확대되는 어린이 차별 ④ 아이들에게 필요한 미래

 

 촉법소년 연령 하향 논란에 대한 단상

 

오윤성 /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석좌교수  

  한국사회에서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중요한 이슈다. 작년 대통령 선거유세가 한창일 때 여야 모두 촉법소년 연령기준 하향 조정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것만 봐도 그렇다. 「소년법」은 성인범죄자의 악풍감염으로부터 소년범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1958년 제정됐다. 「소년법」상 소년은 크게 범죄소년·촉법소년·범법소년으로 구분되며 범죄소년은 14세 이상 19세 미만의 형사책임 능력자를 말한다. 형사처벌을 할 수 있으나 보호처분을 할 수도 있고, 금고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범죄 혹은 형사처분을 함이 타당할 때에는 검사의 공소제기로 형벌을 가할 수도 있는 연령대다. 촉법소년이란 형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해도 형사처벌 대신 「소년법」 적용을 받는 형사 미성년자를 말한다. 최초 촉법소년 연령을 12세 이상 14세 미만으로 정했다가 2007년 10세 이상 14세 미만으로 조정했다. 이 조치를 통해 범죄를 저질러도 법적 규제가 불가능했던 범법소년 연령대인 10세에서 11세까지가 촉법소년 영역에 포함됨으로써 「소년법」 적용을 통한 교화·선도 등이 가능하게 됐다. 작년 10월 법무부는 현행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촉법소년 연령을 10세 이상 13세 미만으로 하향 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소년범죄의 현실

  우리 사회에서 촉법소년의 연령 하향 관련 논란은 크게 소년법 폐지, 촉법소년 연령 하향 반대와 찬성 등 세 가지 입장으로 나뉜다. 첫째는 「소년법」 자체를 없애자는 주장이다.그러나 이는 세계적 추세와도 동떨어진 의견으로 ‘UN 아동권리협약’에 가입돼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협약을 탈퇴하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둘째,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대한 반대 입장이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범법행위를 한 13세 이상 14세 미만 소년범을 교도소에 보내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성인범죄자로부터의 악풍감염이 우려되고, 출소 후의 낙인효과 등을 고려했을 때도 「소년법」 취지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는 연령 하향 조정 찬성의견으로 현장 실무자를 포함한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사안이다. 필자 역시 이에 동조하는 입장이다.
   전체 소년 인구는 감소하고 있으나 소년 강력범죄는 급증하고 있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소년보호사건 중 「성폭행법」 위반 건수는 2020년 1,376건에서 재작년 1,807건으로 한 해 동안 무려 31.3%가 증가했다. 그런데 현행 촉법소년에 대한 보호처분은 1호부터 10호까지로 나뉘며 가장 강력한 보호처분은 10호로 최장 2년 소년원 송치에 전과기록이 남지 않는다. 따라서 일부 청소년들은 14세가 되기 전에 범죄를 저질러도 전과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근시안적 사고를 공유하면서 별다른 심적 부담 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증명하듯 보호처분을 받은 촉법소년 중 13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70%에 달하고 있다.

촉법소년 사각지대의 현실

  실무현장에서 촉법소년들의 질적 일탈은 훨씬 심각하다. 음주 후 경찰 지구대 순찰차 위에 올라가 “나는 촉법”이라며 비상식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하고, 또래 폭행 장면을 찍어 영상을 공유하기도 한다. 차량절도로 검거돼도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석방되면 다음 날 또다시 차량 절도를 한다. 검거된 후에는 경찰서 내 인증샷을 찍고 SNS에 올린다. 그들 사이에는 법을 어기는 행위가 일종의 자랑거리로 인식되는 것이다. 촉법소년인 줄 알고 범죄를 저질렀다가 연령이 지났다는 사실에 당혹해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이 제도가 청소년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주고 있음이 명백해 보인다. 전과기록이 남지 않는다며 법을 조롱하고 상습적으로 성인범죄자 수준의 죄를 저지르는 소년범을 단순히 악풍감염과 낙인효과 방지를 이유로 소년원에 보내는 것은 소년법의 취지와도 어긋날 수 있다. 경미한 비행으로 소년원에 수용 중인 나머지 소년들에 대한 소년범 교화 기능까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또래 학생을 무차별 폭행하거나 성폭행, 심지어 살인에 가담했던 청소년 관련 사건들이 보도되면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2017년 부산 여중생 사건, 2018년 관악산 집단 폭행, 인천 여중생 성폭행 사건 등이다. 심지어 개성중학교 폭행치사사건의 가해자는 친구를 때려 살해했음에도 2년 6개월 형을 받고 보석으로 풀려났는데, 당시 가해자가 쓴 글을 보면 가히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살인도 좋은 경험이다. 덕분에 모든 인간을 다 이길 수 있겠다. 어차피 나는 법적으로 살인이 아니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그동안 「소년법」에 의한 소년 감경 과정에서 기계적이고 일률적인 판사의 재량이 일조했다는 비판도 있다. 결과적으로 부모가 아이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학교에서 교사가 통제하지 못한 나머지 이제는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이 수사기관이나 사법체계마저 두려워 않는 세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형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법의 허점을 이용해 촉법소년을 데려다 범행을 시킴으로써 현행 촉법소년 제도를 범행에 적극 악용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 조정이 나아갈 곳

  금번 법무부의 촉법소년 연령 하향 조정은 단순히 엄벌주의뿐 아니라 소년 범죄자의 교화와 피해자 보호라는 목적 그리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구분하는 현행 학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다. 촉법소년의 연령 하향 조정은 암환자에 대한 항암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항암표적치료를 하자는 의미와 유사하다. 그러므로 촉법소년 연령 하향 조정 반대를 주장하며 현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마치 암 진단을 받고 병이 깊어가는 환자를 보며 별다른 조치 없이 치료를 꺼리는 것과 같다. 치료부위를 13세 이상 모든 소년범으로 무한정 확장하자는 것이 아니다. 잔혹범죄를 저지른 자, 혹은 촉법소년이라는 점을 악용해 상습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일부 청소년들과 대다수의 일반적인 소년범들을 구분해 각각에 요구되는 조치를 취하자는 것이다. 특정 강력법상의 강력범죄, 예컨대 살인 약취 강도 강간 등의 흉악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에 대해서는 「소년법」 대신 「형법」 적용을 하자는 요지의 법안들도 국회 발의 중이다. 이는 수위가 높은 청소년 범죄자와 보호해야 할 대다수 소년범을 구분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처벌 가능성을 인식하고 행동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사고와 행동결정능력을 가져야 하는 존재다. 이번 촉법소년 연령 하향 조치가 사법체계의 빈틈을 악용하는 일부 청소년들에게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해 국민들이 염려하고 있는 촉법소년 범죄 예방에 효과적 대안이 되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