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의창 /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교수

스포츠다움을 찾아서 ④ 한국체육이 지향해야 할 스포츠 가치에 대한 고찰
스포츠는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 수렵생활을 기반으로 이어져 온 태초의 본능 중 하나다. 사람들로 하여금 몰입과 흥분을 일으키는 스포츠는 이러한 특성 때문에 상업적으로 때로는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번 기획을 통해 스포츠가 경기 외적인 요소로 인한 명과 암을 살펴보려 한다. 더불어 순수한 ‘경쟁’에서 벗어나 맹목적 성과주의를 지향하는 사회 분위기로 인해 스포츠의 본질을 잃고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해 논해보려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도쿄올림픽을 바라보는 정치, 경제학적 고찰 ② 지나친 대형자본으로 인한 스포츠 정신의 훼손 ③ 기업이 스포츠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④ 한국체육이 지향해야 할 스포츠 가치에 대한 고찰

한국스포츠4.0의 가치지향과 그 실현

최의창 /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교수

 
 

  지난 몇 년간 한국스포츠의 최대 화두는 단연 인권이었다. 폭력 관련 뉴스가 그칠 만하면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에 대한 조재범 코치의 성폭행과 철인3종 최숙현 선수 자살 사건으로 최고점에 다다랐다. 결국 한국스포츠계에 만연한 비인권적 행태와 풍토를 척결하기 위해 스포츠윤리센터라는 초유의 독립된 국가기관까지 신설됐다.
  이런 장면들을 목도하다 보니 성선설은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확신, 스포츠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체육인의 경우 성악설에서 주장한 인간 본성을 지녔다는 생각이 뚜렷해지고 있다. 승자독식과 패자독박의 스포츠판 오징어 게임에서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인가.
  물론, 성선설과 성악설 이외에 성무선악설(性無善惡說)도 있다. 인간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고 살아가면서 변화된다는 주장이다. 나는 약간 변형된 형태로, 인간은 본성과 환경의 영향을 함께 받는 존재이나 환경의 영향이 좀 더 강하게 작용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스포츠의 생태계는 오염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한국스포츠의 환경오염은 인권문제로 끝나지 않으며 금품수수·입학비리·승부조작·도핑 등 부지기수다. 한국 사회는 지금 대변혁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여 있다. 격랑이 휘몰아치는 이 칠흑의 밤바다에서 한국스포츠호를 안전한 항구로 이끌어 줄 진북(眞北)은 어디에 있는가.

 

한국스포츠3.0의 성과지향적 가치

 

  한국스포츠의 황금기는 지난 88서울올림픽 이후라고 할 수 있다. 한일월드컵·세계육상선수권대회·아시안게임 등의 성공적 유치가 이를 증명하며, 국제대회 및 해외 프로리그에서의 활약도 더욱 빛을 발하는 중이다. 개항 이후 한국스포츠는 세 시기로 구분된다. 구한말부터 50년대까지의 1.0시대,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2.0시대, 그리고 88서울올림픽 이후 90년대부터 평창동계올림픽까지의 3.0시대다.
  지금은 한국스포츠3.0이 저물고 4.0이 막 시작되는, 어스름한 여명의 시기라고 부를 수 있다. 황금기였던 지난 30여 년간 한국스포츠3.0은 ‘성과의 스포츠’를 지향했다. 1등과 금메달의 ‘업적’을 중요시하는 ‘금은동 가치’를 추구한 시기다. 이때, 승리지상주의와 성적제일주의를 강조하며 국내외적으로 많은 성과를 거뒀고, 스포츠계의 신흥강국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이다. 성과지향적 스포츠가치의 추구로 인한 폐해가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다. 3.0시스템의 버그가 심해지고 있으며 조만간 작동불능의 상태로 빠질 위험이 있다. 새로운 스포츠를 위한 OS시스템의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그 중에서도 스포츠 가치의 확정이 최우선이다.

 

한국스포츠4.0의 성숙지향적 가치

 

  환경·평등·공정 등은 현 시대에서 추구하는 주요 가치들이다. 특히 기업경영에 있어 가치변화가 두드러지는데, 이는 이윤추구에서 공헌 지향으로의 대전환이며 ESG경영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전환은 기업의 이윤추구가 궁극적으로 사회적·자연적 환경과 함께 사는 공동체를 위함임을 상기시켜 준다. 지향해야 할 본연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되새겨 볼 때 한국스포츠4.0이 벤치마킹해야 할 좋은 사례다.
  국제스포츠계에서의 변화도 두드러진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 어젠더 2020〉에서 ‘스포츠를 통한 보다 나은 세계 만들기’라는 올림픽 운동의 비전을 강조하며, ‘탁월성’ ‘존중’ ‘우정’의 세 가지 가치를 추구한다. 유럽연합은 〈EU 스포츠발전계획 2021-2024〉에서 ‘스포츠 공정성과 가치의 보호’ ‘스포츠의 사회경제적 및 환경적 측면 강화’ ‘스포츠 참여와 건강을 증진하는 신체활동의 촉진’이라는 3대 관심 영역을 선정하고 있다.
  현 정부는 〈스포츠비전 2030〉을 통해 한국스포츠4.0의 청사진을 마련했다. 그 과정에서 ▲사람 중심 ▲삶의 질 향상 ▲건강한 공동체 ▲정의로운 스포츠 ▲민주적 거버넌스가 핵심 가치로 선정됐다. 다만 국가정책문서임을 감안하더라도, 스포츠의 수단적 활용이 부각되며 지나치게 무거운 측면이 보인다. 즐거움·유희·행복 등 스포츠 본래의 가치들은 뒤편으로 밀려나면서 여전히 3.0의 연장선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에 필자는 ‘의미의 스포츠’로의 방향 전환을 권장한다. 스포츠 참가자들이 신체활동을 통해 스스로 찾아내고 부여하는 행복·즐거움 등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물론 스포츠가 갖는 평화·공정·인권 등 공적 가치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다양한 가치들을 하나로 묶어서 ‘진선미 가치’로 통칭할 수도 있다.

 

‘문질빈빈’의 아레테 한국스포츠

 

  이상적으로 본다면 과거 문제의 해결과 단절을 위해서 한국스포츠4.0에서는 진선미 가치만이 부각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의 스포츠 세계에서는 금은동과 진선미가 함께 추구돼야 할 것이다. 스포츠는 메달과 가치 두 가지로 성립되기에 가치 없는 메달은 맹목적이고, 메달 없는 가치는 공허할 뿐이다. 한국스포츠4.0은 두 차원의 가치가 위도와 경도가 돼 만들어내는 스포츠 지도에 따라 항행해야 한다.
  이 어려운 과제는 앞으로 한국스포츠가 국제스포츠계에 차별적으로 공헌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기와 도, 즉 스포츠 기량과 스포츠 정신의 최고 수준을 모두 시현해내는 것이다. 스포츠팬들은 두 차원이 통합되길 갈망하고 있으나 아쉽게도 역사상 이 두 개가 동시에 구현된 시기는 ‘아레테(arete)’, 즉 ‘탁월함’과 ‘훌륭함’이 하나로 존중받던 그리스 시대뿐이다. 훌륭한 과정을 통해서 얻은 탁월한 결과만이 최고로 인정받을 수 있던 것이다.
  동양에서는 ‘문질빈빈(文質彬彬)’의 개념이 아레테에 상응한다. 외적 차원의 ‘문’과 내적차원의 ‘질’이 모두 하나로 온전히 실현되는 이상 상태다. 문이 질보다 앞서거나(文勝質), 질이 문보다 앞서거나(質勝文) 모두 바람직한 상태는 아니다. 문과 질이 함께 얻어져야만 최고의 바람직함이다. 문질빈빈은 격심해지는 국제스포츠의 격랑 위에서 한국스포츠의 안전한 항해를 가능토록 해 주는 유일한 항해술이다.
  돌이켜 보건대 한국스포츠3.0은 전적으로 문승질이었다. 이를 극복한다고 한국스포츠4.0에서는 질승문의 반대편으로만 기울어져서는 안 된다. 반드시 탁월함과 훌륭함이 함께 추구돼야 한다. 그것만이 한국스포츠3.0과 구별되는 한국스포츠4.0를 세워주고, 세계 스포츠계에서 우뚝 솟아 뉴 한국스포츠를 밝혀 주는 최선의 가치실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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