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정 / 크리에이터

한국 대중음악의 허와 실 ① 연습생들의 현실

최근 몇 년 사이 K-POP의 성장과 해외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그중에서도 K-POP은 한류의 중심적인 콘텐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음악 시장이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일 터이다. 이러한 ‘K-POP’의 모습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돌아보며, 다음 세대에 대한 제언을 담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케이팝의 위상과 의의 ② 연습생들의 현실 ③ 한류에 대한 우려 ④ 음악과 음학, 그 사이에서

 

 
 

 
무엇을 연습하는 삶인가

한수정 / 크리에이터

 

  연습생이란 가수, 배우 등 연예계 활동을 업으로 삼는 프로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이들을 넓게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댄스 가수 그룹, 즉 아이돌을 목표로 연습하는 사람을 뜻한다. 아이돌의 수명이 길어야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으로 10년 남짓이기에 이를 준비하는 연습생 역시 10대 중후반, 많아야 20대 초반이 대부분이다.

  마찬가지로 ‘아이돌’이라는 직업 개념이 있는 일본 시장에서는 ‘연구생’이라는 표현을 쓴다. 아직 프로로 완전히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은 같지만, 보다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며 팬들이 관람하는 공식적인 무대에 나서기도 한다는 부분에서 한국과 차별화된다. 많은 전문가가 언급하듯 한국의 기획사는 ‘완성된 상품’으로서 데뷔하는 아이돌을 추구하는 반면, 일본은 성장 과정 전체를 보여주는 것을 중시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케이팝의 글로벌화로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니즈가 세계적으로 늘어나면서 기획사는 과거 거의 드러내지 않았던 연습생들을 시장에 노출시켜 상품화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홈 마스터’의 환호를 받았다. 대부분 공식적인 허가 없이 연예인들을 고성능 카메라로 촬영하는 이들은, 사진을 사용한 비공인 상품이나 데이터를 판매해 이익을 취한다. 여러 매체에 출연하는 기성 아이돌보다 그 희소성이 크고, 성공적으로 데뷔할 경우 인기가 급상승할 수 있는 ‘연습생’은 그들에게 선점할 가치가 있는 피사체로 다가왔을 것이다. 실제로 울림 엔터테인먼트 보이그룹 골든차일드 소속 이장준은 연습생 시절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모습을 찍힌 바 있고, 골드킥컴퍼니는 2016년 자사의 신인 그룹이 될지도 모르는 연습생들을 촬영할 공식적인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홍보라는 미명

 

  기획사가 연습생을 판매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데뷔한 아이돌 그룹의 활동에 카메오로 등장시켜 이름과 얼굴을 알리거나 춤과 노래 연습 내용을 영상 콘텐츠로 만들기도 하고, 언론에게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한다. 하지만 근래 가장 각광을 받은 방식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전시키는 일이다.

  과거 연습생을 다루는 방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 MTV와 YG 엔터테인먼트의 〈리얼다큐 빅뱅〉처럼 곧 데뷔할 아이돌의 준비 과정을 스토리텔링하는 프롤로그에 가까웠다. 하지만 점점 연습생 간의 데뷔를 목표로 한 경쟁과 거기서 발생하는 갈등, 고난을 자극적으로 전시하는 서바이벌 형식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약 101:11의 경쟁률을 자랑하는 Mnet의 〈프로듀스101〉 시리즈이며, 이 외에도 동사의 〈아이돌학교〉, 〈아이랜드〉, 〈걸스플래닛999〉가 유명하다. 케이팝 전문 케이블 채널뿐 아니라 MBC, SBS와 같은 공중파 역시 〈방과후 설렘〉, 〈라우드〉를 내놓으며 대열에 참가한 상황이다. 방송사는 기성 아이돌보다 값싼 출연료로 화제성을 일으킬 수 있고, 기획사는 미디어에게 연습생의 검증과 교육, 경쟁을 외주할 수 있으니 이득을 보는 셈이다.

  그러나 연습생들의 현실은 밝지 못했다. 〈프로듀스101〉의 네 번째 시즌에 참가한 강민희를 비롯한 다섯 명의 경우 숙소와 학교에까지 찾아온 사생팬으로 인해 재작년 6월 17일 소속사가 직접 사생활 보호를 요청하는 입장문을 낼 정도였다. 또한, 작년 9월 2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조정식 의원은 〈아이랜드〉의 계약서를 입수해 출연료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계약서에는 “프로그램 출연의 대가로 아티스트 1인당 회당 일금 10만 원을 지급한다”고 돼 있는데, 수일에 걸쳐 촬영했더라도 한 회로 편집된다면 최저임금에도 한참 못 미치는 출연료를 받는다는 것이다.

 

아이돌 감옥

 

  이처럼 국회의원이나 기획사가 직접 문제를 제기할 만큼 심각한 상황 속에서 유명 연습생의 직접 폭로는 특히 의미가 크다. 2017년 방영된 〈아이돌학교〉 참가자인 이해인은 재작년 10월 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해당 방송에 대한 장문의 글을 업로드했다. 그녀의 주장에 의하면 연습생들은 5월쯤부터 촬영지인 양평 영어마을에 들어가 마지막 생방송이 있는 9월 29일까지 단 하루도 외부에 나오지 못했다. 이에 더해 휴대폰을 압수당하고 정해진 식사시간 외의 모든 음식물 섭취는 금지된 채 숨긴 간식을 몸수색으로 빼앗기는 일도 생겼다. 생필품마저 한 달에 한 번 Mnet의 모회사인 CJ 산하의 올리브영에서 사야 했고, 단 한 번 부모님이 보낸 택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군부대의 구식 생활관을 본뜬 합숙소 겸 스튜디오는 비좁았으며 환기 및 난방도 원활하지 않았고, 참가자들이 추위와 피부병을 호소했지만 장기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밖에도 폭로문에는 미성년자 야간 촬영과 같이 방송의 연습생을 향한 반인권적·불법적 처우가 담겨 있었다. 그녀의 이러한 고발에 힘입어 같은 방송에 출연한 연습생 조유빈, 이슬 등이 유사한 내용을 개인 유튜브에 올렸으며 당해 10월 15일 방송된 PD수첩의 취재에 의해 모두 사실로 밝혀졌다. 프로그램은 〈아이돌학교〉라는 제목으로 교육기관을 자임했지만 실상 감옥보다도 못한 환경을 학생들에게 제공한 셈이다.

  연이은 폭로는 당연히 언론의 주목과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이도 잠깐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비슷한 방식으로 연습생들을 착취하는 방송 제작 시스템이 철폐되고, 실효성 있는 제도적·구조적 차원의 해결책이 모색돼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아이랜드〉는 1년도 지나지 않은 작년 6월부터 9월까지 방영됐고, 내년 시즌 2가 예정돼 있다. 〈걸스플래닛999〉 역시 현재진행형이며 〈방과후 설렘〉은 내달 시작한다. 포맷 역시 대동소이하다. 이는 어디 외딴 채널에서 소형 기획사가 벌이는 저질적 행태가 아니다. CJ, 하이브, 네이버, MBC 등 문화를 주도하는 위치에 있는 굴지의 대기업과 언론사가 앞장서 기본적 인권마저 포기해야 하는 경쟁의 우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 실정이다.

  모든 것을 연습생 자신의 선택이라며 참가 여부는 자유라고 말한다면 답도 쉽다. 각자의 책임이니, 힘들면 안 했으면 될 일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10대 학창시절의 평범한 삶 대신 아이돌의 길을 선택했을 만큼 절실한 연습생 개개인과 기획사, 방송사 사이에는 메꿔지지 않는 권력 위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피를 쏟는 경쟁 끝에 금박을 덮게 된 일부를 한류 스타라며 국위선양의 아이콘으로 치켜세울 일이 아니라, 그들이 보다 인간적인 환경에서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며 꿈을 향해 노력할 수 있도록 함께 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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