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본 / 협성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TV 드라마 수용원리로서의 놀이성과 그 너머
 

  스토리텔링은 최근 발견 혹은 재발견된 것이다. 이는 그동안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음을 뜻한다. 스토리텔링은 화자와 청자의 상호작용성, 그리고 진행형의 역동성을 강조하는 스토리 전개 기술이다. 이때 상호작용성은 대면한 상황에서 말(tell)을 미디어로 활용하는 까닭에 나타난다. 그리고 진행형(ing)의 역동성은 완성된 이야기를 화자가 하고 청자는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까닭으로 나타나게 된다.

  김은경의 〈한국 시간여행 드라마의 놀이성 연구〉는 바로 스토리텔링의 이 두 특성을 주목한다. 논문에는 기원이나 재발견에 대해선 언급되지 않는다. 즉, 말이라는 미디어의 원초성 혹은 스토리텔링의 재발견과 관련한 혁신의 정신(Spirit)은 살피지 않는 것이다. 대신 TV 드라마라는 미디어와 시간여행이라는 장르, 놀이성이라는 콘셉트 또는 수용원리가 집중 조명된다. 그러므로 연구 범위로 내세운 2010년 이후를 한국 TV 드라마 환경의 변화와 시간여행 장르의 본격화와 관련해서 설정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10년 이후 한국에서의 프라임 시간대 연속극은 이전처럼 주목도가 높은 드라마라고 하기 어려워졌다. 이제 새로운 트렌드는 케이블이나 종합편성 채널의 미니시리즈라고 봐야 한다. 또한 미국 드라마의 경우 적어도 10년은 앞선 상태로, 할리우드 영화 인력이 대거 참여하며 완결성 높은 스토리와 함께 영상미학까지 구현된 상태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의 ‘몰아보기 감상자들’에게는 작지 않은 문화적 충격을 안겼다. 이는 당연하게도 드라마 제작 현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홈드라마의 훈훈한 스토리는 장르물의 피 튀기는 이야기로 바뀌었고, 온 가족이 함께하던 시간과 공간은 세대와 취향에 따라 나뉘게 됐다.

  대표적으로 〈시그널〉(2016)이 ‘미드형’ TV 드라마로 꼽힌다. 김은희 극본, 김원석 연출의 이 드라마는 본 논문에서도 연구 대상 중 하나로 채택된 가운데, 익숙한 수사물에 낯선 시간여행의 장르성을 더한 작품이었다. 또한 실제 범죄 사건을 모티브로 해 지난 현실을 다시 관통함으로써 실패와 후회의 트라우마에서 빠져나오게끔 하는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한편 논문은 시간여행의 중심 개념과 함께 작동하는 특유의 서사 장치들의 의의를 밝히는 식으로 진행된다. 〈시그널〉을 통해 ‘타임워프’를 개념화한다면, 이에 앞서 〈나인〉(2013)과 〈죽어도 좋아〉(2018)를 대상으로 각각 ‘타임리프’와 ‘타임루프’라는 시간여행의 후속적 개념을 도출해 이를 명확하게 규정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고전적 시간여행 서사의 ‘타임머신’은 하드웨어로, 리얼리즘과 어느 정도 닿아 있다. 이에 반해 ‘타임슬립’은 시간여행의 소프트웨어 형식을 갖추고 있어 환상성을 향해 내달린다. 이때 환상성은 그사이 발전 및 세분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김은경의 논문은 시간을 자유자재로 거슬러 가는 행위인 타임리프, 특정한 시간의 구간에서 갇혀 유사한 행위를 반복하는 상황인 타임루프, 현재의 시간에 왜곡이 일어남으로써 과거나 미래가 뒤섞여 나타나는 현상인 타임워프로 그 양상을 정리하며 따라잡았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분명 시간여행과 관련한 한국 TV 드라마의 훨씬 더 복잡하고 또 에너지 넘치는 시도를 생각하면 제한된 작품 수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나 그만큼 선명한 개념을 뽑아낼 수 있는 작품을 선정하고, 나아가 시간여행과 연동하며 효과를 발휘한 장치까지 밝혀낸 것에 주목할 만하다. 이전 연구가 양상 나열과 미시적 의미 부여에 그쳤기에 그 수용원리까지 밝히고자 한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규칙을 정해놓고 승부를 겨루는 놀이를 게임이라 할 때, 그 규칙은 때로 무규칙하게 보일 정도로 요동치는 세계를 반영해야 한다. 근원적으로 보자면 시간여행 서사는 세계관의 새로운 정립 과정의 서사여야 한다. 논문이 이를 분명하게 의식했다면 어떻게 됐을지에 대한 지점도 기대된다.

  반면에 이 논문은 TV 드라마와 같은 특정 미디어와 시간여행이라는 장르를 대상으로 하는데도 스토리텔링의 재발견이라는 문제를 환기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고 보인다. 특히 본 논문의 결론에서 놀이성의 핵심으로 제시된 것은 게임인 가운데, 이는 엄밀히 말하면 게임의 메커니즘을 여타 분야에 접목하는 ‘게이미피케이션’ 개념과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이때 김은경은 소비자나 참여자의 관심을 유발하고 몰입도를 높이고자 하는 게이미피케이션이 제시된 놀이의 속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후속 연구에선 이러한 놀이의 역사는 물론 온라인 게임의 보편성과 특수성, 그리고 문화혁명적인 흐름이라 칭한 게이미피케이션에 관한 지점까지 다룰 수 있으리라 본다. 그 연구는 스토리텔링의 화자와 청자의 상호작용성과 진행형의 역동성을 분명하게 하는 작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스토리텔링은 디지털 시대에 재발견된 것이고, 게임은 디지털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양식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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