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원 /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1, 블랙리스트의 현주소] ② 대한민국 문화정책 톺아보기

2019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가 간행되며 블랙리스트 사건 자체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이전 블랙리스트 실행자들의 현장복귀 또는 인사이동과 관련해 최근 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이는 블랙리스트 사건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짐작하게 한다. 따라서 이번 기획을 통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련의 사건을 다시 짚어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더듬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국가검열의 어제와 오늘 ② 대한민국 문화정책 톺아보기 ③ 문화예술, 국가지원과 공공성 ④ 현재진행형 블랙리스트

 

 
 

다른 세상, 다른 상상의 예술

 

김규원 /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뱅크시(Banksy)는 “예술은 불안한 자들을 편안하게 하고, 편안한 자들을 불안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예술은 끊이지 않는 상상력으로 사람들에게 일상과 다른 세상을 보여줘 왔다.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은 과학 발달과 사상의 탄생, 사회 진보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힘이 중요하기 때문에, 예전부터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예술이 보호 및 증진돼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상상력과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세심한 방식들이 필요하기에 예술이 발전하기 위한 방식은 다른 분야와 같을 수는 없었다.


예술지원정책의 시작

 

 예술지원을 정책적으로 시작한 것은 대부분 2차 세계대전 이후로 볼 수 있다. 문화부가 처음 창설된 프랑스의 문화부 초대 장관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는 1959년 ‘국가는 예술을 감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술에 봉사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타 정책 분야와 다른 문화예술을 위한 ‘문화민주주의’ 등의 개념을 만들어 이를 기준으로 예술을 지원하고 시민들의 향유를 확대해 나갔다.

 반면 영국 및 미국에서 예술에 관한 지원 근거를 만든 것은, 자칫 예술과 먼 분야인 듯 보일 수 있는 경제학자들이었다.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J.M.Keynes)는 2차 세계대전 중 국가발전을 위해 예술지원이 필요하다는 신념으로, 현재의 영국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를 창설하고 그 유명한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을 제시했다. 정책적 지원은 하되 운영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이 원칙을 통해 예술 자체의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예술위원회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또한 미국의 경제학자 보몰(W.Baumol)은 어떤 분야의 노동생산성이나 효율성이 높아지면 그 분야의 임금이 상승하면서 다른 분야에서도 임금상승 압박을 받게 된다는 비용질병 이론(Cost Disease)을 제시해 예술지원 근거를 마련했다. 이는 추후 미국 연방정부 예술진흥기구(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설립에 일조하게 됐다. 이러한 기구들의 특징은 타 정책 분야와 다른, 예술에 적합한 방식을 통해 자율적인 지원이 가능한 방식을 실험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 때 도화서, 장악서 등을 통해 예술인들을 양성하고 활용하기도 했으나 이는 예술 자체에 대한 지원으로 보기 어렵다. 게다가 해방 이후의 대한민국 예술지원은 검열 중심의 문화시책을 새 국가의 틀에 맞추는 것이 우선시됐다. 대표적인 예로는 조선총독부의 시각예술 행사인 ‘선전’을 ‘국전’으로 바꾸는 과정이 있다. 한편 해방 이후 예술계는 정치 상황에 따라 다양한 예술단체들이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직후인 이승만 정부 시절, 예술이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기에는 국내 정치적 상황이 요원한 상태였다. 게다가 1961년에는 박정희 정부에서의 공보부 신설과 문화공보부 확대 개편으로 문화예술의 지원은 국정홍보, 민족문화 등의 기치 아래 시행됐다.


 예술이 타 분야와 다르고 이에 따라 적합한 기능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 제정과 다음 해 문화예술진흥원 설립으로 시작됐다. 물론 정부가 예술에 대해 관리하겠다는 생각이 중심이었지만, 이는 형식적이더라도 예술지원이 정책적으로 시작된 시기로 볼 수 있다.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측면은 1990년대까지 그 윤곽을 드러내지 못했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을 통해 공식적으로 ‘검열’ 중심의 문화정책이 ‘지원’ 중심으로 전환됐고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 자율적인 문화예술지원의 물꼬가 트인 게 그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이어 참여정부에서는 기존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산하기관이던 ‘문화예술진흥원’을 민간자율기구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로 전환하는 성과를 이뤘다.

 형식상으로는 프랑스식의 국가 예술지원 정책과 영국식의 국가가 지원하는 민간자율 위원형식을 합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국가-민간’의 애매한 간극과 ‘정치-관료-정책’으로 이어지는 위험한 간섭의 고리는 계속 남아있게 됐다. 이는 문예위 위원 임명이나 예산사용과 관련된 사안, 그리고 주무부서의 관계에서 관료주의와 정치적인 압력이 언제라도 민간자율을 위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둔 것이다. 따라서 이번 블랙리스트는 이전 정부에도 존재했을 터이나, 박근혜 정부에 이르러 예술지원이 ‘정치-관료’의 손을 거쳐 대대적으로 자행돼 왔다는 사실을 확인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의 청사진을 그려보며

 이러한 문제는 현 정부에 이르러서도 전부 해결되지는 않았다고 본다. 이는 정책적인 수단, 방법 그리고 체계가 이전 정부에서 하나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언제라도 블랙리스트가 다시 자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고 이전의 모습과 단절하기 위해서는 문체부 및 정부의 역할을 행정적인 지원으로만 제한하며 문예위는 진정 민간예술인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새로이 변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입법·사법·행정 3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기관으로서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조직, 혹은 합의제 행정기관의 사례가 되는 국무총리 소속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단 이와 같은 예시들은 행정적 조직구성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형태이기에 예술이 지닌 그 고유의 가치를 국가가 인식하고 이를 지원하는 원칙에 대한 공감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다행히 올해 3월 10일, 문예위와 문체부가 ‘자율운영보장 공동선언’을 채택하는 모습을 통해 예술지원의 새로운 변화를 볼 수 있었다. 그 내용은 공동으로 예술의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에 최선을 다하며, 이에 문체부는 현장의견을 토대로 정책 수립 및 사업 추진을 시행하고, 문예위는 법령에 근거한 자율과 책임 원칙 내에서 문예기금을 운용하자는 것이었다. 또한 문체부-문예위 집행 사업은 표현의 자유 등 헌법 정신을 준수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를 통해 앞서 언급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기본원칙이 지켜지기를 바란다.

 소설가 커트 보니것(K.Vonnegut)은 예술가의 역할을 설명하며 이들을 ‘광산의 카나리아’로 비유하고 있다. 한 사회의 자유와 다양성이 훼손될 때 이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는 척도로 예술가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예술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며 국가가 지원하는 앞으로의 밝은 제도를 상상하는 데 정부, 관련 전문가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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