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미 / 문화예술노동연대 사무국장

[특집 칼럼] 노동이라는 문턱

 

과연 예술인의 가난과 위태로움은 ‘당연한 일’인 것일까. 여전히 현대사회에서 예술과 노동은 좀처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고, 예술인을 노동자로 칭하는 것도 어색하기만 하다. 더욱이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서 예술노동의 취약성은 부각된 상황이다. 이번 기획에선 여전히 부재중인 예술노동자의 권리를 조명함으로써 문제적 현실을 고찰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예술=노동'은 예술계만의 문제일까?


오경미 / 문화예술노동연대 사무국장
 

   누구나 전염병에 노출될 수 있는 만큼 이는 절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고들 했다. 하지만 전염병은 결코 평등하지 않았다. 야속하게도 사회 안전망에서 소외돼 있던 이들은 전염병이 초래한 사회적 여파에 가장 먼저, 또 가장 극심하게 영향을 받았다. 비정규직, 계약직,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프리랜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의 법적 · 제도적 명칭을 가진 이른바 ‘비’정규직 근로자도 포함됐다. 전염병이 온 나라로 퍼지자 ‘잠시 멈춤’이라는 문구가 공유됐지만, 이들은 그럴 수 없었다. 정규직 근로자의 범주에서 제외된 탓에 사회보 장보험의 적용에서도 배제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잠시 멈춤’은 말 그대로 굶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감염인의 숫자가 날마다 갱신돼도 이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계속 일을 하는 것. 코로나19는 단지 전염병이 아니었다. 정규직과 정규직이 아닌 자들의 사회적 지위, 다른 말로 계급적 차이를 야멸차게 확인시켜준 계기이기도 했다.

   예술인은 이 집단에 광범위하게 포진돼 있다. 그렇기에 코로나19 이후 그들의 삶은 초토화됐다. 예술이라는 직업은 ‘비’정규직과 고용형태가 동일하다. 해당 산업은 보통 계약직이란 이름의 ‘비’정규직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다. 더불어 애초부터 매우 낮게 설정된 고용에 대한 대가와 초단기간의 고용계약으로 인해 반복되는 실직은 예술인이 단속적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n잡러’로서의 삶을 택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때 이들이 주로 택하는 직업이 대리운전, 배달노동자 등과 같은 특수고용직이다. 예술인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가를 견디며 예술계 외부의 경제 활동을 통해 위태로운 삶을 견뎌왔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예술 활동은 물론 그들의 삶을 간신히 지탱해주던 경제 활동까지 중단됐다. 대부분의 수입을 예술 활동에 투여하고 난 후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던 이들 중 얼마나 많은 수가 실직 혹은 휴직에 대비할 수 있었을까.
 

지워진 노동자성, 강조된 예술의 낭만성

   예술노동 담론이 처음 예술계에서 불거졌을 때 우리 사회는 물론이고 예술인 자신도 담론의 부적절함을 문제 삼았다. 어떤 이들은 세상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고 골방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리던 반 고흐나 시를 쓰던 이상을 떠올리며 시장의 논리를 스스로 거스르는 예술인에게 왜 사회가 자비를 베풀어야 하냐고 따져 물었다. 또 다른 이들은 자본을 비판해야 하는 예술인이 자신의 입으로 노동을 말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인정하는 패배라거나, 예술가는 청소노동자와 다르다는 비난인지 비판인지 가늠할 수 없는 말을 던졌다.

   예술인은 이와 같은 요구를 한 적도 없거니와 이러한 반박들은 예술노동 의제의 핵심을 한참이나 비껴간 것이었다. 예술노동 담론을 시작할 때부터 예술인은 그들이 처한 난관을 노동자성 인정의 문제로 틀 지으려 노력했다. 예술인복지법이 만들어질 당시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예술인은 예술인복지법상의 예술인을 근로자 의제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순수하게 외부와 단절된 채 자신을 위해서만 작품 활동에 매진하는 이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예술인은 누군가와 임금을 목적으로 계약을 맺어 근로를 제공한다. 그러나 법이 보호해야겠다고 인정하는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장 기초적인 사회 안전망인 고용보험과 산업재해보장보험의 혜택에서 제외돼 있었다.

   프로젝트성 일감이 예술계 전체 고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예술계 내부는 고용 불안정성이 매우 높고 실직이 빈번하게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니 고용보험을 통한 실업급여 수급은 예술인의 경제적 불안정함을 경감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될 수 있었다. 또한 현장의 사고사 비율도 높고 근골격계 질환을 많이 앓는 예술인에게 산업재해보장보험 역시 절실한 사회 안전망이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가 예술인을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예술인 근로자 의제 처리에 반대한 결과 고용보험 적용은 삭제됐고, 산재보험은 임의가입으로 처리됐다. 그렇게 예술인복지법을 토대로 예술인의 복지를 책임지게 될 예술복지재단은 예술인의 노동자성이 부정당하고 ‘가난’을 증명하면 돈을 주는 예술인‘복지’재단으로 출발하게 됐으며, 예술인은 ‘국민의 세금으로 살아가는’ 계층으로 철저히 분리됐다. 이후에도 예술인은 포기하지 않고 노동자성 인정 프레임을 유지하며 예술인 고용보험 적용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지난해 통과된 예술인 고용보험 특례법이 그 노력의 결과일 것이나, 이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와 예술인을 구별 짓기 위해 특례법으로 만든 것이기에 시혜와 복지의 관점을 완벽하게 탈피하지 못했다는 박탈감에 아쉬움을 남겼다.

   한편, 예술인이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은 노동조합 조직과 교섭 · 쟁의에 이르는 노동3권을 보장받게 돼 자본을 대상으로 한 투쟁과 협상이 가능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예술노동은 곧 자본주의에 대한 패배 인정’이라는 논리 역시 얕은 식견의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노동자성 인정을 둘러싼 예술노동 담론이 예술이라는 사회적 활동의 직업으로서의 법 · 제도적 승인을 받는 문제와 더불어, 예술 활동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들의 의미 및 가치를 구분하는 시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에, 공동체에 어떻게든 기여하지 않는 직업이 어디 있을까. 예술만이 사회 기여에 있어 독보적이라는 오해와 오만은 예술인을 오히려 위험에 빠뜨린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최상의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금전적 측면에 연연해하지 않는, 동시에 창의적이면서 윤리적이기까지 한, 그야말로 낭만화된 예술인의 이미지를 산업화된 예술 생태계 내에서 예술인에게만 요구한다. 이러한 통념은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예술가의 신념을 대가의 문제로까지 확장하거나 둘을 동일한 것으로 묶어버림으로써 예술 활동의 정당한 보상에 대한 논의를 가로막는다. 창작 활동에 대한 대가가 전반적으로 낮게 책정된 근본적인 이유 중 일부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 안전망의 필요성

   담론의 함의를 고려한다면 예술노동 담론이 결코 예술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코로나19는 오랜 기간 예술인이 요구했던 바로 그 문제가 예술인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에 흩어져 고군분투하고 있던 ‘비’정규직 근로자에게도 해당하는 사회적 문제임을 깨닫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한국의 경우 IMF 이후 전통적인 근로자의 범주에서 배제된 이들이 급격하게 양산됐다. 고용 및 노동의 형태 역시 그에 맞춰 변화하기 시작했다. 일자리는 일감으로 바뀌었고 프로젝트 형식으로 고용되는 용역계약의 형태가 빠르게 증가했다. 수많은 일자리가 예술인의 고용형태를 닮아가게 된 것이다. 이렇게 양산된 근로자들을 보호하겠다는 법이 이후 지속적으로 제정됐으나, 기존의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이들을 포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특별법을 제정해 기존의 근로자와 근로자가 아닌 이들을 구분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이 법들은 근로자로 묶이지 못한 이들을 보호하기보다 법망을 피해 이들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악용돼 왔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피해는 주로 수업 취소로 출근이 무기한 유예된 방과 후 교사나 예술 강사, 회식이 줄면서 콜 역시 줄어든 대리운전 기사 등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집중됐다. 이처럼 전염병의 네트워크에 포착된 ‘비’정규직들은 아무런 준비 없이 피해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다음에 또 어떤 위험이 이 사회를 덮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전염병이 될지, 기술의 고도화에 따른 노동 시장의 재편이 될 것인지 우리는 모른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미래의 피해는 이번처럼 고스란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직이 떠안을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은 상품이 아니며 모든 인간은 자유, 존엄성, 경제적 안전성, 균등한 기회를 통해 물질적 행복과 정신적 성장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천명했다. 또한 모든 노동자에게 적절한 사회보호를 제공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하는 사람에 대한 차별을 법적으로 정당화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 예술노동 담론은 ILO의 권고와 일치한다. 그렇기에 예술을 노동으로 인정하라는 예술인의 요구는 오히려 사회 문제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볼 수 있으며, '비'정규직의 문제를 새로운 차원에서 전면화한 담론이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비'정규직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당신이 그 집단에 속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예술노동의 문제는 곧 우리의 문제이며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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