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기획의도] 환상을 횡단하다

 

 
 


예술, 그 우아한 거짓말

 

  모든 것이 움츠러든 한 해였다. ‘폐쇄’ ‘금지’ ‘취소’와 같은 라벨이 덕지덕지 붙어버린 탓에 평범한 일상은 옴짝달싹 못 하게 됐다. 두 발을 딛고 설 수 있는 공간은 점차 좁아졌고 그만큼 마음의 여유도 한 뼘씩 작아지곤 했다. 2020년은 그렇게 고립되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돼야 했기에 이내 치유와 회복이라는 키워드가 뒤를 따랐다. 특히 예술은 피폐해진 정서에 숨을 불어넣는 역할로 주목을 받았다. 많은 이들이 예술을 통한 ‘힐링’에 관심을 보였고 그 가치는 조각난 누군가의 하루를 잠시나마 메우는 데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이 ‘아름다움’을 피난처로 여길 때, 다른 한쪽에선 예술이란 이름을 의심하며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은 논쟁에 목소리를 보태고 있었다. 종종 특별한 무언가로 전시된 채 현실 세계에서 ‘격리’되는, 예술의 현주소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였다.

뒤에 ‘사람’ 있어요

  지난 1월 19일, 한국 뮤지컬 종사자들이 방역 지침 완화 촉구를 위한 호소문을 발표했다. 다른 업계와의 형평성 및 공연 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방역 수칙을 재수립해 달라는 것이 주된 골자다. 이는 당사자들이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제시한 대안인 만큼 연극·뮤지컬 팬들의 응원과 지지가 함께 했다. 그러나 혹자는 공연계의 외침을 ‘배부른 소리’라고 비판하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이 시국에 공연을 지속하는 것을 사치로 여긴 그들은 오히려 셧다운 상태가 아닌 것에 감사하라는 말을 반복했다. 이러한 의견 충돌은 뜻밖에도 예술이라는 큰 개념 뒤에 존재하는 ‘사람’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만든다. 예술을 향유하는 것은 누군가에겐 단지 선택지에 불과한, 소비하지 않으면 그만인 부수적인 활동으로 인식되기 일쑤다. 일상에서 잠시 그 자취를 감춰도 당장 내일이 걱정될 만큼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가벼운’ 예술이 생계 수단이자 전부인 이들에겐 분명 상황이 다르다.

  예술이라는 개념은 종종 일상을 환기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만큼 현실과 동떨어진, 신비롭고 이상적인 대상처럼 여겨진다. 문제는 해당 프레임이 예술 산업내 주체들을 추상화시켜 쉽게 뭉개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겸업으로 돈을 버는 형태가 당연하고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수입이 하나의 관행처럼 자리 잡게 된다 한들, 모든 것은 예술이라는 이름하에 정당화된다.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조차 마련되지 않은 현실이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지 못하기도 한다. 점차 노동의 테두리 안에서 예술을 바라보는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여전히 예술 장르 및 예술인을 향한 시선은 사회적 합의를 이룩하지 못한 것이다. 덕분에 ‘고난을 먹고 자라야 훌륭한 예술을 꽃피울 수 있다’는 말과의 불편한 동거만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자유를 밟고 올라선 어떤 신화

  여기 예술을 겹겹이 감싸고 있는 환상들로부터 시작된 또 다른 논쟁이 있다. 표현의 자유라는 울타리 속에 거주하고 있는, 예술 창작에 대한 갑론을박이 그 주인공이다. 사실 이와 관련된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를 향한 혐오에 대항할만한 언어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더욱 다층적인 감수성이 요구되는 사회가 도래함에 따라 그 논쟁은 조금은 다른 결을 갖게 됐다. 대중은 많은 것들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더는 ‘괜찮지 않은’ 작품들이 생겨났으며 창작에 있어서 새로운 상상력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함께 높아졌다. 그럼에도 이 불편함은 곧장 표현의 자유 문제로만 결부됐고, 자유라는 이름이 최대한 납작하게 소비됨으로써 논쟁은 종종 시작도 하기 전에 길을 잃고 말았다.

  몇 년 전, 한 누아르 영화가 여성 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여성을 과도한 폭력에 노출시키고 철저히 대상화하는 방식이 주요 비판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 제기엔 역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라는 반박이 일었고, 한 관계자는 앞으론 디즈니 영화와 같은 작품이나 만들어야겠다는 ‘농담’으로 해당 이슈를 맞받아쳤다. 이 논쟁에서 우선으로 고려돼야 하는 지점은 누아르라는 장르가 가진 영화 문법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무엇이고 결국 별다른 고민 없이 이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그리고 이러한 획일적인 재현이 어떤 효과를 낳았는지 등이었다. 그러나 예술 창작에서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식의 카드를 꺼낸 이상 논의는 진전되지 못했고, 해당 영화는 누군가에겐 ‘옳고’ 또 다른 이에겐 ‘틀린’ 작품으로 남게 됐다.

  이처럼 새로운 소통을 요구하는 자리엔 극단적인 비관만이 함께 했다. 문제 제기에 대한 보다 예리한 고민과 본질적인 물음은 생략된 채 한쪽이 일차원적인 의미의 자유에게 도피한다면, 다른 한쪽은 표현 그 자체에만 집중해 더이상의 대화를 거부했다. 덕분에 매번 반복되는 논란에도 그 명제는 점차 골치 아픈 ‘말장난’처럼 박제되는 중이다.

특별함에 균열을 내다

  2021년 상반기 대학원신문 특집호에서는 다양한 환상 속에 위치하는 예술이란 개념, 그로 인해 파생된 이슈들을 가로질러 가본다. 먼저 예술노동자의 사회적 정체성 획득을 위한 근본적인 고민을 함께하려 한다. 예술계에서 권리 보장과 같은 단어의 질감은 여전히 거칠고 투박하기에 예술적 행위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그 실체가 지워지는 현실에 제동을 걸고자 한다. 한편 혐오의 시대 속 ‘표현의 자유’라는 명제가 예술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요즘, 우리가 그 과정 가운데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읽어보려 한다. 최근 이슈가 된 웹툰계 사건들을 중심으로 자유와 검열, 더불어 노동 환경에 대한 고찰 역시 담으려 한다.

  반면에 특집 문화면에선 전통적인 의미의 검열 즉,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토대로 자행된 국가폭력에 대해 톺아본다. 또한 코로나 시대에 더욱 초점을 맞춘 특집 사회면을 통해 더욱 넓어진 아동학대의 사각지대를 다룸으로써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고자 한다. 나아가 비대면 사회 속 부쩍 늘어난 디지털미디어 기반의 문화예술 향유가 갖춘 모습과 그 안에서 빚어진 새로운 문화소외계층을 특집 중앙아카데미아 지면을 빌려 조명할 계획이다.

  예술은 그 어떤 분야보다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는 현장을 마련하면서도 명확한 답을 내리기 어려운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껏 관련 논의들은 해당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자만 참여할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로 무장돼 비교적 쉽게 무관심 속으로 묻혔다. 심지어 이젠 '위기의 시대, 모두의 삶엔 예술이 필요하다'라는 식의 그럴듯한 말만 나열된 채 곳곳에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다시금 논외로 밀려나는 움직임을 보인다. 조금은 더 유효한 질문과 대답, 이로써 시작되는 소통이 자리하길 바라며 이번 상반기 대학원신문 특집호가 그 길을 함께하고자 한다. 부디 나란히 걸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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