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정 /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박사후연구원

 

'덕질하는 일상' ④ 팬덤과 문화적 혼종성

팬덤이란 특정 대상을 향한 애정을 기반으로 이와 관련된 행위를 실천 및 공유하기 위해 조직된 공동체이자 그 과정에서 생산되는 문화형식 자체를 일컫는 용어다. 현재 한국의 대중문화 영역에선 ‘케이팝’ 음악 시장이 확장됨에 따라 아이돌 팬덤 문화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되는 추세다. 이번 기획에서는 대한민국 팬덤 문화의 현주소를 다루며 그 안에 얽혀있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의미를 읽어내고자 한다. 특히 매우 조직적인 하나의 네트워크로 성장한 팬덤의 정체성 이슈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덧입혀 소개하려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팬슈머로서의 팬덤 ② ‘덕후 공동체’, 그 역동성 ③ 젠더이슈 속 ‘균열된’ 팬덤 ④ 팬덤과 문화적 혼종성

 

 
 


초문화적 팬덤의 문화 감수성

 

박소정 /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박사후연구원

 

  한국의 대중문화가 동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으며 ‘초문화적(Transcultural) 팬덤’이 형성된 지도 벌써 10여 년이 돼 간다.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에 위치한 팬들은 특정 스타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언어와 국경을 뛰어넘으며 유대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인해 충돌하기도 한다. 케이팝 글로벌 팬덤 내에서 일어난 화이트워싱(Whitewashing)과 옐로워싱(Yellowwashing) 간의 논란은 그 충돌을 보여 주는 흥미로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화이트워싱과 옐로워싱

 

  한국 미디어에서 스타의 이미지를 밝고 하얗게 연출 및 보정하는 것은 흔하게 구현되는 미학이자 미디어 문법이다. 아이돌을 지속적으로 촬영해 올리는 홈페이지의 운영자, 이른바 ‘홈마스터’를 비롯해 여타 팬들이 직접 찍은 사진 역시 필터의 사용이나 후보정 작업을 통해 투명한 미백의 피부가 연출된다. 그러나 해당 이미지가 해외 팬들의 응시 속으로 들어갔을 때, 이는 불안하고 거슬리는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국내의 홈마스터가 배포한 사진에 대해 일부 해외 팬들이 ‘화이트워싱’이라고 비판하기 시작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원래 화이트워싱이란 할리우드 영화에서 백인 배우가 비백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상황을 일컫는 말로 사용됐지만, 해외 케이팝 팬들은 아이돌 사진을 미백 보정하는 행위를 화이트워싱이라고 명명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미백 보정은 백인중심주의적 혹은 서구중심주의적 미의 규범을 내면화해 ‘아시아의 진정성’을 부정하는 행위라는 것이 비판의 요지다.

  해외 팬들은 미백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흑인은 아름답다(Black is Beautiful)’ 운동이나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Love Yourself)’ 같은 메시지와 동일한 맥락에 연결 짓는다. 일례로, 어느 해외 팬은 한국인이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를 꼬집었다. 그는 Love Yourself라는 제목의 방탄소년단 앨범을 거론하면서 방탄소년단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했는데, 너희는 그들의 피부색을 완전히 바꿔 버리고 다른 인종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더욱이 그동안 한국 미디어에서는 아이돌들이 자신의 까무잡잡한 피부가 콤플렉스라고 발언하거나 피부색이 어두운 멤버를 놀리는 장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서구권의 팬들은 이러한 문화가 피부색에 기반해 차별과 위계질서가 작동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진다고 비판한 가운데, 미백 보정 관습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화이트워싱의 논란 속에서 해외 팬들은 미백 보정이 된 사진을 재보정하거나 보정이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들을 아카이빙하는 운동을 벌였다. 구글 이미지 검색창에 ‘Kpop Whitewashing’이라고 검색을 하면 수많은 사례를 볼 수 있다. 또한 이미지 기반 소셜 미디어인 텀블러에는 ‘Restored’ ‘Recolored’ ‘Unwhitewashed’ ‘Unbleached’라는 단어를 계정명 및 해시태그에 활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은 필터나 조명 등에 의한 미백 효과가 가해지지 않았다고 판단되거나 또는 재보정을 통해 원본에 가깝도록 ‘복구한’ 사진들을 아카이빙한다. 그리고 해당 계정을 지지하는 팬들은 이러한 복구 작업이 지닌 정치적 올바름에 지지를 보내며 이를 팬덤의 발전적인 방향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 복구의 방식에서 문제가 발견됐다. 복구 사진 중의 일부는 과도하게 명도를 어둡게 조정하거나 노란빛의 필터를 입힌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인 또는 아시아인에게 ‘자연스러운’ 또는 ‘알맞은’ 피부색에 대한 상상력이 국제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케이팝 아이돌 실물을 볼 기회가 적은 해외 팬들에게 케이팝 아이돌은 아시아인에게 부여된 기억색(Memorial Color)으로 상상되기 쉬우며, 그 기억색이란 유구한 오리엔탈리즘의 역사에 의거해 고착된 인종색(Racial Color)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복구 사진에 반발하는 국내외 팬들은 복구 사진이야말로 옐로워싱 또는 블랙워싱(Blackwashing)이라고 비판한다. 진정성을 운운하며 한국인을 특정한 외양으로 고정시키려고 하는 태도 자체가 식민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이라는 것이다.
 

상호이해와 존중을 향해 가는 초문화적 팬덤

 

  케이팝 아이돌 팬덤 안에서 일어난 이 논란은 그저 팬들 간의 갈등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이 논란으로부터 우리는 전 지구화된 환경 속에서 소통하는 초문화적 팬덤 내에 어떠한 감수성과 윤리에 대한 성찰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방탄소년단의 슬로건을 통해 미백 보정 사진을 비난했던 팬의 트윗에는 반박 댓글이 달렸다. 해외 팬들은 언제쯤이면 하얀 피부가 한국 문화에서 오랫동안 미의 기준으로 존재해 왔고 백인과 상관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을지, 이러한 비판이 오히려 특권화된 서구 시각에 입각해 다른 문화에 대한 무지함을 보이는 건 아닌지와 같은 내용이다.

  이 반박에는 화이트워싱을 주장하는 측과는 또 다른 인종적 감수성이 작동한다. 화이트워싱 주장을 비판하는 국내외 팬들은 어떤 고정된 인종색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흰 피부는 백인의 전유물이 아니고 황인종 또한 오리엔탈리즘 속에서 상상된 타자화의 결과물임을 주장한다. 그리하여 인종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과 새로운 상상력의 가능성을 불러온다. 더욱이 케이팝이 지닌 문화적 혼종성은 이러한 상상력에 결을 더한다. 케이팝이 글로벌 팬덤에 호소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국가, 인종, 문화의 경계를 넘는 혼종적 미학 때문이다. 음악 장르에서는 흑인 음악, 일렉트로닉 팝 등을 혼성적으로 구현하고 스타일링에서도 다채로운 색조를 활용해 경계를 항해하기에 고정된 정체성 범주를 넘어서며 미학적 확장을 해 왔다. 이러한 혼성과 변용을 바라보는 팬들 또한 이(異)문화에 대한 다층적인 수용을 경험하면서도 서로를 이해하는 감수성을 길러가고 있다.

  화이트워싱과 옐로워싱 외에도 케이팝 산업과 글로벌 팬덤 사이, 그리고 초문화적 팬덤 안의 충돌은 반복돼 온 문제다. 2017년에는 걸그룹 마마무가 흑인 분장을 하고 브루노 마스의 곡을 패러디해 흑인 비하의 의미가 담긴 '블랙페이스(Blackface)'로 비판받았고, 최근 블랙핑크의 뮤직비디오에 힌두교 신상이 등장한 것에 대해 인도 팬들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충돌이 상호이해의 실패 경험으로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세대의 문화적 감수성을 토대로 상호존중의 지평으로 나아갈 때 초문화적 팬덤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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