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용수 /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그곳엔 무엇이 있을까 ② 21세기의 한반도와 탈식민성

현실은 온갖 것들로 가득 찬 곳이자 사물들이 끊임없이 이동하고 변하는 철학적·사회적 공간이다. 이 공간 속에서 개개인은 권력으로 구획된 축들의 교차점 위에서 억압하고 저항하며, 생성·작동·소멸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공간의 정치적 의미를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실천적 의미를 찾아 적용하며 인간의 신체에 이르는 지리학적 정치의 의미를 에둘러 항해한다.

본 기고문은 은용수의 “혼종 식민성(Hybrid coloniality): 탈식민주의로 바라본 한국의 외교안보정책” 『국제정치논총』 제 60집 1호 pp.7-61을 요약 및 발췌한 것임을 밝혀둠.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공간에 숨은 정치, 비판지정학 ② 21세기의 한반도와 탈식민성 ③ 헤게모니, 미국에서 어디로 ④ 지리-신체적 공간의 페미니즘

 

우리는 식민성을 극복한 것일까

 

은용수 /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기나긴 일제강점기를 겪어내며 맞이한 1945년 독립은 드디어 한반도가 탈식민화돼 주체적인 외교·안보행위자로서 국제사회에 등장하고 활동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이 조성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독립 후 74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과연 실질적인 탈식민화 과정을 거쳐 외교·안보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확보했다고 할 수 있을까.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라는 이론적 시각에서 볼 때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렵다. 탈식민주의는 비록 ‘주의(ism)’라는 용어를 접미어로 갖고 있지만, 이를 하나의 통일된 인식체계로 묶여 있는 일종의 패러다임으로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 이유는 탈식민주의의 매우 복합적인 분석적·인식적·규범적 속성과 그것이 갖는 다면적인 함의 때문이다.

 

해체하고 해방하는 탈(脫)식민주의


   거칠게 요약하면 탈식민주의는 특정한 지역·문명·세계관·역사관을 하나의 보편으로 간주하는 보편주의와 여기에 내재된 위계적 권력 관계에서 해방돼 인식과 실천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궁극적으로는 복수·보편적 세계를 이루고자 하는 정치 담론이자 운동이다. 물론 그 출발은 식민주의의 유산이나 지배 이데올로기의 해체 및 극복 여부다. 탈식민주의의 ‘탈(脫, post)’이란 접두어는 무엇 ‘다음에 오는’이라는 시간적 의미와 무엇을 ‘넘어서 가는’을 뜻하는 주체적 극복의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물론 식민성의 해체 혹은 해방의 방식은 다양하게 진행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에드워드 사이드(E.W.Said)가 말하는 자기성찰과 주체적 저항정신의 논 세르비암(Non-Servaim)이 우선시 될 수도 있고, 호미 바바(H.K.Bhabha)가 논했던 것처럼 식민지배자를 ‘흉내 내기’함으로써 지배자의 정체성 분열을 유도해 지배자가 전복될 수 있음을 상징화시킬 수도 있다. 무엇을 강조하고 우선시하든, 탈식민주의가 공통적으로 중시하는 것은 피지배자 자신의 ‘몸(삶)과 터(장소)’에 착근된 시각을 통해 서구 중심적 보편주의가 해체되고 지배 정당화 논리체계에서 해방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는 결과적으로 소거됐던 주변부의 주관적인 경험과 감정을 전면에 등장시켜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탈식민주의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는 민족주의 혹은 토착주의인가. 물론 탈식민주의 이론은 나의 ‘몸과 터’에 뿌리 내려 ‘위치 지워진(Situated)’ 시각으로 수행하는 비판적 성찰을 강조하고 이를 통한 주체성의 회복을 추구하지만, 이것이 모든 지향점을 포괄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체성의 회복만을 강조할 경우 탈식민주의에 대한 오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들뢰즈(G.Deleuze)와 가타리(F.Guattari)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배자 중심의 ‘영토화’ ‘코드화’에서 ‘탈주’하고, 주변부의 삭제된 경험·감정·관점의 회복을 추구하는 것이 탈식민주의인데, 해당 과정은 하나의 세계가 아니라 복수의 세계·세계관·근대성·발전모델이 존재함을 전제로 한다. 이 전제는 나의 세계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세계를 ‘평등한’ 주체로 인정하는 것이며 다양한 세계·역사·문화·사상이 ‘동등하게’ 공존함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은 규율과 배제의 기능을 발현하는 하나의 보편성이 아니라, ‘복수보편성’ ‘복수중심적 세계’ 개념을 강조한다.

 

한국의 역사 위에, 혼종된 식민성(Hybrid Coloniality)


   이제 한국의 외교 문제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독립된 지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한미동맹·판문점 정전협정이 체결돼 한국은 ‘제도화’된 냉전체제에 빠르게 포섭됐고, 이에 한국 외교·안보의 가용범위는 매우 협소해졌으며 탈식민 과정은 유예·변질됐다. 냉전기의 한국 정부는 국내·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미국 주도의 반공 동맹에 하위주체로서 적극 동참했고 이는 같은 시기, 다른 국가의 외교적 행태와도 대비된다. 한국은 미국 주도의 냉전체제에 귀속돼 지구적·지역적·민족적 대결 및 균열구조를 유지 혹은 확대 재생산하는 데 자발적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군사주의와 권위주의, 반공 발전경제 체제가 자리 잡은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한국의 군사 정권은 정통성 확보를 위해 미국에 더욱 의존했고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국가 주도적으로 확산해 정권 유지를 도모했다. 요컨대 한미동맹과 반공은 동전의 양면처럼 짝지어 냉전기 한국 외교·안보의 실천과 담론을 지배한 것이다.
   이러한 구조-행위 조응의 결과, 한국 외교·안보는 ‘탈식민적’ 주체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특히 한국전쟁이라는 트라우마적인 집단경험을 통해 미국은 한반도에서 일본제국주의를 몰아낸 해방자일 뿐만 아니라 북침과 공산화로부터 한국을 구해준 절대적인 안전 보장자라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됐다. 이런 배경에서 한국은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되려 내부로 적극 편입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또한 서구자유주의 사상이 아닌 서구의 ‘특정한’ 국가인 미국과의 ‘관계’가 한국 외교·안보 정책의 이상적 지향으로 내면화되고 그에 상응하는 외교정책이 실행됐다. 물론 전 세계 많은 국가들이 미국의 영향을 받지만 한국 외교·안보 정책의 경우 실천과 담론 모두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작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관계 자체가 ‘가치’ 판단, 즉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는 특이성을 보인다. 예를 들어 한국의 안보담론에서 동맹은 현실주의적으로 해석되기 보다는 가치규범적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즉 동맹을 안보를 위한 하나의 기능적 ‘도구’로 활용하는 현실주의적 접근보다는 한미동맹을 지구보편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규범’모델로써 추인하거나 그것을 한국외교안보의 시대초월적인 디폴트(Default) 값으로 인지하는 기류가 크며 나아가 일부에서는 한국의 정체성과 미국의 정체성을 동일시하는 양상까지 포착되기도 한다. 이는 내면화된 미국 보편주의인 혼종식민성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식민성의 역사적 기원이자 물리적 구조로 작동하고 있는 한반도의 냉전체제에서 ‘탈(脫)’하는 것은 필수다. 정전협정으로 제도화된 한반도의 냉전체제는 전술한 바와 같이 한국의 외교 자율성을 제약하는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해 한반도의 탈냉전을 제도화할 필요성이 크다. 그러나 진정한 탈식민을 위해 중요한 것은 내면화된 ‘인식적’ 식민성의 극복이다. 탈식민을 위한 물리적 조건이 달성됐다 하더라도 인식적 측면에서 특정한 가치를 보편화한 결과, 그에 따른 위계적 타자화가 행위로서 지속될 개연성은 여전히 남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식의 기초가 되는 지식장(field)의 서구·미국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인식의 다원성을 확보하는 실천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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