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걸 / 전북대병원 임상시험센터장

[신약개발과 바이오강국] ② ‘임상시험’의 현주소

제 4차 산업혁명으로 제약·바이오 산업이 떠오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미래의 제약·바이오 강국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이를 위해선 신약개발과 임상시험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이번 기획에선 초기 신약의 임상시험 역사와 그 과정에서 발생한 윤리적 문제를 시작으로 현재 임상시험의 현주소, 이슈화되는 첨단바이오의약품에 대해 알아보고 마지막으로 바이오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방향에 대해서도 논의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신약개발, 그 첫걸음 ② ‘임상시험’의 현주소 ③ 떠오르는 신약, 첨단바이오의약품 ④ 바이오강국을 향해

 

임상시험, 세계를 무대로

 

김민걸 / 전북대병원 임상시험센터장

 
 

 

   2019년 4월, 정부는 시스템반도체·바이오헬스·미래차 산업을 3대 중점 육성산업으로 선정했다. 이는 곧 이러한 산업들이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갖췄다는 것을 의미하며 기술 혁신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고도의 성장이 기대되는 분야라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지난 20여 년간 바이오헬스 분야를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으며, 그 결과 세계 선진국과 견줄 수 있을 정도로 급격한 발전을 이뤘다. 특히 바이오헬스 산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신약개발 분야의 성장은 더욱 그렇다. 최근 보고에 의하면 국내 제약사에서 개발 중이거나 개발 예정인 신약은 953개며, 이 중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에 진입한 것은 173개라고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미국, 유럽, 일본과 같은 제약 선진국들과 더불어 신약 강국으로 도약할 준비가 된 것이다.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평균 10년 이상의 길고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한다. 소요되는 연구·개발 자본의 규모도 평균 1~3조 원으로 만만치 않으며 이 중 절반가량이 임상시험 단계에 투입된다. 그러나 글로벌 신약개발 성공률은 0.01%에도 못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1만 개의 신약후보물질 중 1개의 성공 여부도 장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설령 동물시험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있다고 평가된 신약후보물질조차도 임상시험 단계에서 90% 이상이 탈락한다. 이것이 바로 신약개발을 대표적인 ‘High Risk, High Return’ 산업이라고 하는 까닭이며 선진국형 산업일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임상시험은 신약개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반까지도 임상시험을 수행할 인프라가 매우 열악했다. 신약을 개발하려면 해외에 있는 병원에 의뢰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전국 지역거점병원에 ‘지역임상시험센터’ 사업을 추진했고, 2007년엔 ‘국가임상시험사업단’을 출범시킴으로써 보다 체계적인 인프라 확충을 도모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전국 주요 병원에 임상시험 전문인력과 시설, 장비 등의 인프라가 마련됐을 뿐만 아니라, 환자 진료 위주로 운영되던 병원에 연구 역량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 최근엔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정부가 2012년부터 2019년까지 글로벌 신약개발의 역량을 강화하자는 취지의 ‘임상시험 글로벌 선도센터’ 사업을 추진했다. 그리고 이 사업을 통해 한국의 임상시험 데이터와 인프라가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갔으며 병원과 임상시험 연구자들에게 임상 개발을 지원하고 리드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다.

 

 바뀐 전략, 유리한 한국


   하지만 이와 같은 임상시험 인프라의 고도성장과는 별개로 지속적인 증가를 보이던 글로벌 임상시험의 건수는 2015년 이후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감소 현상은 모든 임상시험 단계에서 나타났고 1상보다는 2상, 특히 3상에서 두드러졌다. 이러한 현상에 더불어 끝없이 증가하는 신약개발 비용과 10%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임상시험 성공률로 인해 신약 개발사들은 전략을 바꿨다. 기존에는 주로 소수의 신약후보물질로 비 임상, 1상, 2상, 3상의 순차적인 개발을 했지만, 이젠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을 통해 확보된 다수의 후보물질로 비 임상 단계 등에서 신중하게 스크리닝해 임상개발 단계로 진입시키는 것이다. 또한 초기 임상시험에서 개념증명(POC, Proof of Concept)을 완료해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후기 임상시험으로의 진행을 매우 신중하게 결정하는, 이른바 ‘Quick Win, Fast Fail’ 전략을 적극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신약개발의 기간과 비용을 줄일 뿐 아니라 성공률까지 높이고자 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신약개발 상황에서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초기 임상시험 수행 인력인 임상약리학자, 전문연구간호사 등을 양성하기 위해선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한데 한국은 그간 이러한 일들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IT 강국이 아니던가. 최근 IT 기술을 임상시험에 활용해 신약개발을 가속화하는 방법 역시 등장하고 있다. AI 기술로 신약후보물질을 스크리닝하는 것은 물론, 병원 내 구축된 환자의무기록(EMR, Electronic Medical Record)을 통해 임상시험을 설계하고 대상자를 모집함으로써 보다 빠른 수행이 가능해졌다. 또한 2019년 7월부터 서울대학교병원을 비롯해 6개의 대학병원과 국가 임상시험 지원재단이 협력해 ‘스마트 임상시험 플랫폼 기반 구축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4차 산업혁명 융·복합 기술, 연구자원과 인프라를 개방·공유하는 시스템이 임상시험과 신약개발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우리가 바이오강국의 주인공,
이제부터 시작이다


   간혹 어떤 이들은 임상시험의 산업적 이익을 위해 국민을 생체실험 대상으로 삼는다며 비난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임상시험과 신약개발의 가치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임상시험은 신약에 대한 국민의 접근성을 높여주며 궁극적으로는 삶을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아가는 데 이바지한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 주도로 ‘국가 감염병 임상시험사업단’을 출범시키고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전적으로 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국민 누구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리의 힘으로 백신을 만들기를 염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 제약사들이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고 전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임상시험을 수행해 그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일부 후기 임상시험이 우리나라에서 중국, 러시아, 폴란드 등의 국가들로 옮겨간다는 소식에 아쉬워할 필요 없다. 우리는 세계를 선도할 IT 기반의 스마트 임상시험 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세계 최초의 코로나19 치료제·백신 임상시험 지원 체계까지 갖춘, 바이오 강국으로 나아갈 만반의 준비가 돼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SK바이오팜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첫날부터 상한가를 보이며 K바이오 열풍을 일으킨 사건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우리나라는 바이오강국으로 가는 패스트트랙의 길을 걷고 있다. 앞으로 수많은 ‘SK바이오팜’이 등장하리라 예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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