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 / 《BTS 예술혁명》 저자

'덕질'하는 일상 ② ‘덕후 공동체’, 그 역동성

팬덤이란 특정 대상을 향한 애정을 기반으로 이와 관련된 행위를 실천 및 공유하기 위해 조직된 공동체이자 그 과정에서 생산되는 문화형식 자체를 일컫는 용어다. 현재 한국의 대중문화 영역에선 ‘케이팝’ 음악 시장이 확장됨에 따라 아이돌 팬덤 문화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되는 추세다. 이번 기획에서는 대한민국 팬덤 문화의 현주소를 다루며 그 안에 얽혀있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의미를 읽어내고자 한다. 특히 매우 조직적인 하나의 네트워크로 성장한 팬덤의 정체성 이슈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덧입혀 소개하려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팬슈머로서의 팬덤  ② ‘덕후 공동체’, 그 역동성 ③ 젠더이슈 속 ‘균열된’ 팬덤 ④ 팬덤과 문화적 혼종성

 
 

팬덤 아미의 정치적 발화


이지영 / 세종대 초빙교수, 《BTS 예술혁명》 저자
 

  지난 5월, 미국 백인 경찰의 강압적 체포로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G.Floyd)가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미국에서 시작된 ‘BLACK LIVES MATTER’(이하 BLM) 운동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로 퍼졌다. BTS는 공식적으로 BLM 운동을 지지하는 트윗을 올렸고, 소속사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BLM 운동 단체에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이 소식이 알려진 후 BTS의 팬덤 아미(Army)는 그들과 같은 액수를 모아 기부하자는 #MatchAMillion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전에는 케이팝 팬덤이 #WhiteLivesMatter와 #AllLivesMatter 같은 인종차별적 해시태그를 팬캠, 즉 팬이 찍은 직캠으로 도배해 무력화했고 달라스 경찰이 ‘시위자들의 불법적인 행위’를 제보해 달라는 언급엔 #BlackLivesMatter 해시태그와 함께 별 하나짜리 후기 수천 개로 대응해 결국 플랫폼 자체를 다운시키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들은 틱톡을 사용하는 10대들과 함께 오클라호마 털사(Tulsa)에서 개최될 트럼프 대통령의 유세 현장 티켓을 집단으로 신청한 후 불참해 유세장을 텅텅 비웠다.

편견과 차별에 대한 분노

  일련의 사건들 이후 평소 BTS와 같은 팝스타의 소식을 잘 다루지 않는 언론들까지도 팬덤의 정치적 행동에, 그리고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 부상한 아미의 존재에 주목하며 기사를 쏟아냈다. 미디어는 지금까지 팬덤을 정치적 사안과는 전혀 무관하게 묘사해 왔는데, 지금의 상황은 그 역사에 전면으로 도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기사의 대부분은 팬덤 구성원이 ‘소리 지르는 10대 소녀들’을 넘어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고 실천한 것에 대한 의아함과 놀라움으로 점철돼 있었다. 이러한 반응은 아이돌 팬덤에 대한 복합적인 편견에 근거한다. 이 편견은 ‘보이그룹의 노래는 어른이 들을 만한 수준 있는 노래가 아니다’라는 편견에 ‘10대 소녀들의 취미와 취향은 유치하다’라는 여성혐오가 결합해 만들어진다. 지금의 사회 현실에서는 팬덤에 속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러한 이중적인 편견에 시달리게 된다. 실제로 아미는 10대보다 2~30대가 더 높은 비율을 차지해 그들이 팬덤에서 주된 연령대를 이루고 있고, 40대 이상의 중장년층 팬들 역시 상당하다. 그럼에도 아미를 ‘10대 소녀들’로 규정하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이에 팬들은 10대 소녀에 대한 낙인을 비판하는 동시에, 이는 현실과도 다르다고 수없이 말해온 바 있다. 

  앞서 설명한 편견은 팬덤 구성원들 역시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시민임을 간과한다. 이런 세상에서 편견과 맞서 싸우는 일은 팬덤의 일상이 됐다. 게다가 서구 사회에서는 해당 문제가 인종차별과도 중첩된다. 특히 미국의 대중문화에서 현재 BTS가 차지하는 위치에도 불구하고, BTS와 아미는 여전히 인종차별을 경험한다. 라디오에서는 BTS의 노래가 한국어인 데다가 그룹의 구성원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노래를 틀어주지 않았다. 팬들은 이것을 명백한 차별이라고 인지하면서 BTS가 받는 차별을 체화했다. 즉, 그들은 스스로 국제사회 속 언어적·인종적 소수자가 ‘되는’ 과정을 경험한 것이다. ‘동양 남자애들 따위를 소리나 지르며 쫓아다니는 정신 나간 어린 여자애들의 무리’라는 편견과 차별에 대한 분노는 아미의 정체성 중 하나가 됐다.

Speak Yourself - 정체성의 목소리

  이러한 현실의 권력관계와 더불어 BTS의 메시지는 그들의 팬덤인 아미가 정치적 주체로 성장하는 중요한 토대로서 기능했다. BTS는 노랫말과 다양한 캠페인을 통해 사회의 폭력, 억압, 편견을 비판하고 그러한 사회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게 공감을 전하며 연대의 가치를 외쳐 왔다. 특히 “당신이 누구이든, 어디에서 왔든, 피부색과 성별 정체성이 무엇이든, 당신 자신에 대해 말하세요”라는 BTS의 UN 연설은 우리가 어떤 이유에서도 자기 자신을 침묵시켜서는 안됨을 말하고 있다. 이는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바로 그 정체성을 인지하고 그로 인해 겪는 고통과 차별을 발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당 메시지가 팬들을 변화시킨 것이든, 여기에 공감한 이들이 팬이 된 것이든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 아미가 모든 종류의 편견에 저항하는 집단이라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저항은 BTS를 정당하지 못하게 다루거나 편견을 확산하는 저널리즘에 대한 비판 및 이에 대한 대처에서도 일상적으로 드러난다. 언어적·인종적 소수자의 시선에서 미디어 문해력을 기르며 국제적인 차별에 대항하는 이들의 활동은 일종의 세계시민으로서의 학습 과정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풀뿌리 운동을 통한 연대

  다른 한편으로 아미의 일상적인 온라인 활동을 살펴보는 것은 팬덤의 집단적인 정치적 행위가 가능할 수 있었던 인프라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전 세계 아미들은 서로 독려하고 협력하며 온라인 투표에서 BTS를 승리로 이끌거나 그들의 음악이 음원 사이트에서 높은 순위에 오르도록 하고, 신곡이 공개되면 뮤직비디오 조회 수를 갱신하기도 한다. 이러한 활동들은 오직 수없이 많은 사람의 단결로만 이뤄낼 수 있다. 탈중심적인 온라인 네트워크에서의 연대는 다양한 방식의 연결접속들에 의해서 가능해진다. 사안에 따라 그에 맞는 방식으로, 수많은 개인이 스스로 조직화하고 분업·협업으로 연합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전략·전술을 통한 연대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연대의 과정’을 통해 수많은 성공과 성취를 가능하게 해 온 아미들은 연대가 어떠한 힘을 가지는지를 아주 자연스럽게 학습했다. 이제 이들은 세상의 어떤 것도 바꿀 수 없었던 무기력한 개인이 아니다.

  아미는 세계시민으로서의 역량을 일상적으로 학습하고 온라인 풀뿌리 운동을 위한 조직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또한 평소에도 동물권, 환경보호, 소외계층 지원을 위한 기부활동을 벌였고 인종차별에도 아주 민감한 집단이다. BLM 운동은 민주적 시민이라면 누구든 분노할 만한 사안이었지만, 아미가 처한 조건은 이 운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인 팬덤은 이권(利權)에 휘둘리지 않는, 사랑에 기반을 둔 놀라운 집단이다. 더군다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가 팬덤 내의 암묵적인 공통의 가치인 그들에게 인종차별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리 낯설지 않다. 이제 아이돌 팬덤이 정치에 목소리를 낸다고 놀라는 대신 불의에 맞서 그들과 손을 잡고 함께 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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