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수 / 청년정치크루 대표

‘전시’의 대상에서 ‘전복’의 주체로 ③ 청년 정치의 첫 걸음, 18세 선거권
 
현재 대한민국 정치권에선 ‘청년’이라는 두 글자가 다시금 ‘소환’되고 있다. 그러나 선거철이면 일부 청년들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걸고 ‘청년 중심 정치’라는 이미지만을 취할 뿐, 정작 청년이라는 존재 그 자체는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는 청년세대를 대변할 수 있는 담론 및 언어의 부재, 타자화된 청년의 위치, 몰이해가 빚어낸 부정적 낙인 등과 맞물려 심화하고 있는 양상을 보인다. 그렇기에 청년 정치의 개념을 확립하는 것에서부터 실질적 변화를 향한 노력까지, 적극적이고 꾸준하게 해당 이슈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청년 정치, 그 의미에 대하여  ② ‘386세대’와 ‘2030세대’의 현주소 ③ 청년 정치의 첫 걸음, 18세 선거권 ④ 청년의 일상 속 ‘정치학교’
 
 
 

언제적 18세 선거권인데
 

이동수 / 청년정치크루 대표
 
  선거연령을 두고 빚어진 갈등은 우리나라 헌법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시작됐다. 1948년 5월 10일, 우리나라가 해방 후 처음으로 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하게 되면서 선거권을 몇 살부터 부여할 것인지가 세간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승만 박사와 지주들의 이익을 대변했던 한국민주당측은 선거권의 경우 만 25세 이상, 피선거권은 만 30세 이상부터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보통선거라는 개념 자체에 반기를 들지는 않았지만 되도록 젊은 사람들은 배제하려고 했다. 해방 직후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기대수명이 40대 후반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지금의 40대를 떠올렸을 때 체감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선거권을 부여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만 25세 선거권은 미군정에 의해 거부됐다.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25세 선거권, 30세 피선거권’은 미국에게도 큰 부담이었다. 자칫 세계 도처에 민주주의를 이식하고 이로써 소련을 봉쇄하겠다는 자국의 국제정책에 잡음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들은 결국 만 23세 이상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한편, 피선거권은 만 25세 이상에게 부여하는 것으로 안을 결정했다. 그리고 이후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이 선거를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단계에서 선거권은 만 21세, 피선거권은 만 25세로 최종 확정됐다. 제헌국회는 이러한 토양에서 탄생했다.
  우리나라 첫 선거에서 적용된 만 21세 선거권은 12년 뒤인 1960년, 만 20세로 한 살 더 낮아졌다. 그리고 45년 동안 유지되다가 2005년에 이르러서야 만 19세로 내려갔다. 이는 당시 국제적 흐름에 맞춰 제기된 만 18세 선거권 이슈와 그에 따른 강한 반발을 포용한 일종의 절충점이었다.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은 2001년 민주당이 ‘19세 선거권’을 추진했을 때에도 반대하고 나섰는데, 선거연령 인하는 고등학교 교실까지 정치의 장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선거연령 인하에 대한 보수진영의 그간 반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전통적으로 10대와 20대는 진보진영의 강력한 지지층이었다. 보수정당 입장에서는 선악의 잣대로 판별할 수 없는 가치의 충돌에서, 손해 볼 것이 명백한 선거연령 인하에 손을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진보적 성향이 강한 것이라고 볼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일례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가장 낮은 집단은 20대 남성이다. 또한 평창 동계올림픽과 조국 사태에서 20대가 보였던 반여권 감정은 미래통합당으로 하여금 선거연령을 낮추더라도 큰 위협이 되지 않겠다는 판단에 이바지했을 것이다. 실제로 연동형 비례제를 포함한 공직선거법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만 18세로의 선거연령 인하는 눈에 띄는 갈등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정치교육의 뒤늦은 달음박질

  선거연령이 드디어 만 18세로 낮아졌다. 오랜 시간 숱한 청소년들과 시민사회가 염원한 결과였다. 선거연령이 낮아지면 교실이 정치화된다는 기성세대의 우려는 말 그대로 기우였다. 교실은 조용했고 청소년들 사이에서의 논란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정작 어른들 사이에서는 정치교육의 방법을 둘러싼 갈등이 빚어졌다. 선거연령이 하향되면서 서울특별시교육청은 모의선거 교육을 추진했으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바로 제동을 걸었다. 서울시교육청이 주관하는 청소년 모의선거는 선거법 위반이라는 것이 그 사유였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86조에 따르면 공무원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수 없는데, 교사가 정치인들에 대한 청소년들의 지지도를 조사・발표하는 행위가 이에 해당한다고 해석한 것이다. 결국 조희연 교육감은 “선관위의 판단을 존중하고 선관위와 협의하며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모의선거 교육 논란은 정치교육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하향되자 곳곳에서 정치교육을 둘러싼 잡음이 불거졌다. 그것은 대개 교실이 정치화될 것이라는 우려에 앞선, 정치교육을 확립하는 방식 그 자체에 대한 문제였다.
  도대체 언제적 만 18세 선거권인가. 2005년 선거연령이 만 19세로 내려간 직후부터 만 18세로의 선거권 하향에 대한 논의는 축적돼왔다. 충분히 예견된 사안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연령이 내려간 이후에야 부랴부랴 정치교육을 준비하는 현실은 우리 교육이 얼마나 근시안적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심지어 선거권 하향을 주장하던 집단마저 이제서야 정치교육의 마스터플랜을 준비하는 현실은 씁쓸하기까지 하다.
 
정치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2015년 국정 역사 교과서 추진과 관련된 논란은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다. 검정 교과서들이 산업화의 유산을 부정하고 좌편향됐다는 것이 주요 이유였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정권이 바뀌자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통일교육이 큰 비중으로 확대되고 북한과의 교환학생 제도를 추진하겠다는 공약도 등장했다. 그러나 청소년들 입장에서는 정치가 본인 눈앞에서 매일같이 펼쳐지는 폭력과 차별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산업화나 남북통일이라는 고담준론이 와닿을 리 없었다. 기성세대가 가르치고 싶은 것만 가르치는 정치교육은 그들의 아바타를 양산할 뿐 새로운 시대를 개척해나갈 세대를 양성할 수는 없다.
  정치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청소년들로 하여금 산업화 시대를 숭배하고 박근혜 석방을 외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민족화합과 남북통일을 염원하고 조국 수호를 외치게 하기 위함 또한 아니다. 정치란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규칙을 결정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스스로 제 권리를 지키도록 돕는 것이 정치교육의 역할이다. 쉽게 말해 민주사회의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정치권은 그들에게 우호적인 청소년들을 양성하는 수단으로 정치교육을 취급해왔다. 교육이 이런 식이면 그때야말로 교실은 정치판이 된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정치교육을 고민하고 그 교육의 대상인 청소년을 개개인의 민주 시민으로 인정할 때 이런 우려가 종식될 수 있지 않을까.
  기성세대의 틀에 청년과 청소년들을 끼워 맞춘다면 그 사회의 발전은 없다. 단지 이전 시대를 답습할 뿐이다. 왜 박정희가 위대한 대통령인지, 왜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해야 하는지 줄줄이 읊게 하는 교육은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본인이 당장 피부로 느끼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을 스스로 바꿔갈 수 있는 방법부터 알려주면 된다. 일상에서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갈 때 그 사회는 진보한다. 이는 충분히 훌륭한 토양을 갖추는 길이 될 것이며 만 18세 선거권은 그 위에 뿌려질 씨앗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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