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건웅 /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부 교수

 [출구 없는 공포 ③ 약과 악의 경계]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이 주는 무한한 두려움은 인간에게 공백의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공포는 혐오와 맞닿아 발현되기도 한다. 인류에게 공백의 공포를 메꿔주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는 바로 의약의 개발이었다. 그러나 모든 ‘약’이 치료를 가능케 한 것도 아니며 약이 ‘약’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데다가 오히려 공포를 재생산하기도 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질병의 공포를 메꿨던 의약의 역사, 현재, 미래를 정확한 지식과 함께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팬데믹의 등장 ② 의약의 변천사 ③ 약과 악의 경계 ④ 공포, 질병의 재생산

 

치유와 파괴의 양면성

염건웅 /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부 교수

   유명 연예기획사와 연예인이 연루된 일명 버닝썬 사건을 계기로 마약 청정지대라 자부하던 한국의 부끄러운 민낯이 여실히 노출됐다. 클럽 내에서 마약류를 이용한 성범죄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이 사건을 지켜본 국민들은 마약류 범죄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마약류가 우리 사회에 깊숙하게 들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했다.
   국제사회에선 연간 5천억 불 규모의 마약류가 불법 거래되고 있고 2억여 명이 마약류를 남용하고 있다. 의학적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마약류가 본래의 용도로만 사용됐다면 신비의 묘약일 수 있었겠지만, 많은 사람이 마약의 확산으로 인류 전체의 안전까지 우려하는 이유는 마약류가 지니는 엄청난 파괴력 때문이다. 사람들이 고통과 불쾌를 회피하고 기쁨, 환락을 쫓는 건 본능에 가까운 것일 수 있으나 이 쾌락을 위해 마약류의 힘을 빌린다면 그 대가는 부메랑처럼 엄청난 폐해로 돌아오게 된다. 마약류는 특성상 의존성, 금단증상, 내성, 재발 현상이 나타나는 등 중독성이 강하다. 중독은 특정한 자극물을 사용하면 만족감을 얻는 원리이기에, 이러한 자극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길 원하고 그만큼 사용을 중단할 경우 불쾌한 기분과 금단 증상을 경험하게 된다. 한마디로 신체적·정신적으로 자극물에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마약류 중독은 도취된 약물뿐 아니라 유사한 성분의 모든 물질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처럼 처음 약으로 사용됐던 마약류는 ‘악’으로 탈바꿈해 부적절하고 불법적으로 사용되며 개인에게는 심신, 가정, 일상의 파괴를, 사회적으로는 각종 범죄와 혼란을, 경제적으로는 불법 자금의 유출과 유입 및 자금흐름의 왜곡을 가져왔다.

 
 
약에서 슈퍼 신종 마약이 되기까지


   전통적인 마약류는 보통 천연마약류와 합성마약류,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한다. 천연마약류 계열은 대마초 등 자연에서 얻을 수 있고 합성마약류는 화학약품을 합성한 것이다. 특히 합성마약류는 의약품 개발 과정에서 모르핀(Morphine)과 유사한 진통 효과를 내는 것이 목표였다. 모르핀은 오랫동안 진통제로 쓰였으며 사용 초기에는 평온감, 꿈꾸는 듯한 수면 상태 등의 기분 변화가 일어나지만 중독됐을 경우 의존성과 부작용이 나타나고 강력한 환각작용을 일으킨다. 식욕감퇴로 영양실조에 빠지게 되는 것도 흔한 일이다. 합성마약류는 물질구조의 유사성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하는데, 그중 페티딘(Pethidine)계와 메타돈(Methadone)계의 약물이 가장 널리 남용되고 있다. 향정신성 의약품에는 대표적으로 일명 히로뽕으로 불린,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이 있다. 이 또한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남용할 경우 육체적·정신적 의존성을 일으킨다. 이때 향정신성 의약품에는 환각, 각성, 습관성, 중독성이 있는 의약품 및 환각을 유발하는 물질 모두가 포함된다.
   대마초, 히로뽕 등으로 대표되던 전통적인 마약류는 최근 신종마약류로 진화하고 있다. 신종마약류는 야바, 엑스터시, 카트, GHB, LSD뿐만 아니라 고농축 액상 대마와 대마 쿠키 등 다양한 종류와 형태로 존재한다. 신종마약류는 상대적으로 값이 싸지만 환각 효과는 더 강하며, 쉽게 구할 수 있는 만큼 반입 경로도 갈수록 다양해지는 추세다. 특히 해외 인터넷 사이트에서 주문한 신종마약류가 국제우편물 등을 통해 밀반입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고농축 액상 대마는 금값의 4배가량이고, 환각성이 일반 대마보다 40배 정도 높다. 일반 대마는 냄새가 많이 나서 흡연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금방 알 수 있지만, 액상 대마는 냄새가 잘 나지 않아 적발하기 어렵기 때문에 최근에는 고농축 액상 대마의 선호도가 높다. 한편, 향정신성 의약품 펜터민(Phentermine)의 원래 의학적 목적은 비만 환자에게 처방되는 식욕억제제였다. 하지만 비만이 아님에도 식욕 억제의 효과를 노리고 살을 빼길 원하거나 집중력 향상을 위해 각성 효과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해당 의약품을 인터넷으로 불법 거래해 적발되는 사례도 있다. 향정신성 의약품은 반드시 의사와 상담하고 적절한 처방을 받아 안전하게 복용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마약류의 불법적인 거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들의 약 복용과 관련된 안전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위협받는다.


적극적 대안이 필요할 때


   국제기준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마약류 사범이 20명 미만인 경우 그 나라는 마약 청정국에 속한다. 현재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24명꼴로 이미 청정국 지위를 잃었다.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단속된 마약류 사범은 1만 2천 613명에 달했다. 수사기관에서 적발한 마약류 사범 이외에 단속되지 않은 암수 범죄까지 더하면 국내 마약류 사범 규모가 3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인터넷, SNS 등을 통한 마약류 유통이 확산되고, 인터넷과 연계된 국내외 유통구조로 일반인들이 해외에서 마약류를 구입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또한 과거에는 마약류 사범이 유흥업소 종사자, 조직폭력배 등 특정 직업에 종사하거나 남성의 비율이 높았던 데 반해 최근에는 회사원, 무직자, 농업종사자, 노동자 등 다양한 직업의 종사자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 여성과 학생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이제는 불특정 다수가 다양한 방법으로 손쉽게 마약류를 접할 수 있는 현실에 다다랐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한편, 마약류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할 수 없다는 특성이 있다. 마약류 판매자는 금전적 이득을 취할 수 있고 구매자는 약물로 쾌락을 경험할 수 있으니 서로의 자발적 합의 하에 거래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런 마약류 관련 범죄의 특성 때문에 수사망에 걸리지 않는 한, 친밀한 거래 관계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마약류는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법적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사회로 복귀한 후 다시 마약류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 마약류 중독자의 재범률은 2018년 기준으로 36.6%에 달한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신종마약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초국가적 기관을 통한 일원화된 원스톱 시스템의 우선적 도입이 요구된다. 이를 통해 현재 경찰, 검찰, 해양경찰청, 관세청 등 산발적으로 나뉘어 있는 단속 기관의 시스템을 통합해 신종마약류 관련 범죄에 집중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세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신종마약류 범죄 특성을 분석해 임시마약류에 대한 처벌기준을 세분화하고, 지정되지 않은 환각물질의 흡입 등에 대해 신속한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법이 마련돼야 한다. 또한 마약류 관련 사범에 대한 단속과 처벌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마약류 사범의 재범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치료 및 재활 시설과의 연계를 통한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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