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아 / 한양대 의과대학 직업환경의학교실 부교수

오래 일하는 당신에게 ② 우리가 시간을 견디는 동안

한국 사회의 노동자는 OECD 평균보다 약 35일 더 일한다. 하지만 노동의 대가인 노동소득분배율은 평균치에 한참 못 미친다. 이는 한국이 전형적인 ‘저임금-장시간’ 노동사회임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오래 일할 것을 강요받는가. 본 지면에서는 한국 사회의 ‘장시간 노동체제’를 다각도로 분석해 우리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본다. 나아가 장시간 노동체제라는 신화가 만들어낸 예속상태를 해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장시간 노동체제의 기원과 역사 ② 우리가 시간을 견디는 동안 ③ 노동시간 단축과 그 너머의 것들 ④ 노동의 시간 민주화 상상하기

 

 
 

 

열심히 공부하고 일한 당신, 쉬어라

김인아 / 한양대 의과대학 직업환경의학교실 부교수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그간 감소세에 있던 자살 요인이 크게 증가했다. 특히 10대와 30대, 40대에서의 증가폭이 크며, 이러한 현상에는 베르테르 효과를 포함한 여러 원인이 작용했으리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 덕분에 한국은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를 ‘탈환’했다. 자살률뿐만 아니라, 한국이 상위권을 유지하는 또 다른 항목이 있다. 바로 ‘과로사’다. 유명 게임업체에서 일하던 젊은 노동자가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하거나 인터넷 교육업체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과로자살로 사망했다. 이처럼 현재 한국 사회는 ‘과로사’나 ‘과로자살’이라는 용어가 보편성을 획득할 만큼 과로로 인한 노동자들의 죽음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 속 죽음의 주범, 과로사

  실제로 장시간 노동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끼친다.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수면이나 휴식을 취할 시간은 부족해지고, 이에 따라 호르몬이나 신경전달물질, 면역력에 관여하는 다양한 생체지표들이 영향을 받는다. 야간 근무 등 노동시간의 배치 역시 몸의 변화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꼽힌다. 2012년 국제협약기구(ILO)는 생물학적 개연성을 기반으로, 비정상적인 근무 일정에 장시간 노동과 야간작업을 포괄해 정의한다. ILO에서 제시한 비정상적 근무 일정의 영향을 살펴보면, 작업 일정의 특성은 생체시계의 손상, 수면 방해 및 감소, 가족 및 사회생활의 손상에 영향을 끼친다. 이는 피로감, 정서, 육체적 활동도 등의 급성 영향 누적을 유발하고, 직무스트레스 및 개인의 대처 전력과 상호작용을 하며 소화기 및 심혈관 문제 등의 부정적인 건강영향이 나타난다.
  장시간 근로와 심혈관질환에 대한 관련된 최초의 연구인 Buell. P의 표준화 사망비 연구에서는 주 48시간 이상 근무하는 경우, 급성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음을 제기했다. 이후 일본과 유럽 등을 중심으로 환자-대조군 연구(Case control study) 및 코호트 연구(Cohort study)가 진행됐다. 이 연구 결과들을 통해, 주당 평균 55~60시간을 초과 근무하는 경우 급성심근경색의 발병 가능성이 2배 정도 증가한다는 보고와 하루 11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 심근경색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후속 연구가 이어졌다. 2015년 관련 학자들을 주축으로, 국제적 학술지인 란셋(The Lancet)에 60만 여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메타분석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주당 근로시간이 35~40시간인 집단에 비해, 55시간 이상 근로한 집단의 경우 뇌졸증 위험이 33% 증가했으며, 심혈관질환의 발생은 8% 정도 증가했다. 또한 근로시간이 증가함에 따라 뇌졸중의 위험이 증가하는 양-반응 관계도 있음이 확인됐다.

 

‘사회적 자살’이라는 비극

  2015년 어느 날, 일본에서 대기업 신입사원의 자살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부서 인원이 절반가량 줄어든 작업장에서, 월 100시간이 넘는 시간 외 노동을 하다가 결국 ‘자살’한 신입사원의 죽음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됐다는 소식이었다. 이는 일본보다 더 심각한 장시간 노동 환경에 노출된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최근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자살 사망자의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우선순위를 검토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직업스트레스 요인이 정신건강스트레스 요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전문가들은 장시간 노동과 업무 부담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노동자는 우울감이나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이때 업무에서의 급격한 변화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사건을 겪게 되면 자살로 이어질 수도 있다. 35개국 18만 여명의 자료를 분석한 메타분석 연구에 따르면 주당 근로시간이 55시간을 넘어가는 노동자는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우울증상의 발생 가능성이 약 14% 높았다. 특히 아시아 국가의 경우에는 우울증상의 발생 가능성이 50% 증가한다. 이는 다른 문화권에 비해, 노동시간의 영향이 더욱 크게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일개미를 위한 변화의 시작

  앞선 연구결과들을 바탕으로 한국에서는 뇌심혈관계질환의 산재 인정에 있어, 주당 평균 노동시간을 주요한 요인으로 보고 있다. 2018년 고용노동부는 주당 근로시간이 60시간 이상인 노동자에게서 발생한 뇌심혈관계질환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한다는 고시를 발표했다. 해당 고시에서는 주당 근로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할 경우, 교대근무·정신적 긴장·육체적 노동 강도 등을 고려해 업무관련성을 인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기준이 발표되고 난 후, 장시간 노동을 하다가 사망한 채로 발견된 응급의료센터장이나 전공의가 산재 인정을 받았다. 또한 근로기준법이 개정된 덕분에 5인 미만과 일부 업종을 제외한 사업장에서는 주당 최대 노동시간이 52시간을 넘길 수 없도록 했다. 정신질환이나 자살의 산재 인정과 관련해서는 명확한 시간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시간이나 업무 부담의 변화를 업무 관련성 판단에 있어 중요한 요인으로 점차 고려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의 문제를 인식하고 정책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은 꽤 고무적이다. 사실 장시간 노동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보면, 다수의 연구결과 없이도 장시간 노동이 얼마나 건강에 나쁜지 우리 스스로 알 수 있다. 밤을 새워 무언가를 하고 나면, 자연스레 집중력이 떨어져 실수가 잦아진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되면, 본인도 모르는 새에 체중 변화가 생기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우울한 마음도 들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고속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옛날과 달리, 오늘날의 사회는 개인의 삶을 포기한 채 아무리 오래 일한다 하더라도 방 한 켠 마련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의 청년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가혹한 처사다. 어린 시절 읽었던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개미와 베짱이 중 누구의 삶이 더 행복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당사자만이 알 수 있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막연한 미래에 불안하고 암울한 청년들에게 마냥 개미처럼 일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그들은 개미와 같은 삶을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열심히 공부하고 일한 당신, 부디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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