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흔적 너머의 얼굴들


■ 디지털 비디오예술사(史)에서 2000년대의 의미는

2000년대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새로운 예술의 해’라는 슬로건을 표명할 정도로 디지털 예술에 대한 가능성이 활발히 제기됐던 시대다. 본 연구는 디지털 비디오예술이 서구의 것을 모방하고 번역하는 예술이 아닌, 한국 예술로서의 독창성과 가능성을 도출할 수 있다고 봤다. 서구 비디오예술운동이 일어났던 1970년대 전후, 한국은 정치·경제적 이유로 비디오예술운동이 이어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1.5세대 비디오예술가들이 텔레비전 모니터 설치를 중심으로 여러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후 민주화 운동 및 김영삼·김대중 정부를 거치며 예술 검열과 감시로부터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따라서 본 연구는 2000년대라는 특정 시기를 디지털 비디오예술을 통해 다양한 의제들이 관객과 소통됐던 시기로 간주했다.


■ ‘여/성’과 ‘여성’으로 표기를 구분한다

한국 디지털 비디오예술을 통해 여성의 몸에 나타난 타자의 정치적 수행성이 논문의 주제이기 때문에 여성의 몸을 논의하는 데 있어, 성(섹스·젠더·섹슈얼리티)의 다양한 장치들을 여(女)와 분리해 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여성의 몸을 논의할 때 생물학적 여성의 몸만을 논의하지 않았다. 김두진의 〈우리는 그들과 함께 태어났다〉와 〈페어웰 투 미스터 아놀드〉는 생물학적 남성의 몸이지만 화장하는 남성, 또는 퀴어로서의 몸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버틀러의 젠더 패러디 이론을 기반으로 심도 있는 논의를 위해 ‘/’로 표기했다.


■ ‘가부장 재현체계’의 개념을 설명한다면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는 가부장제 관습으로 인해 오랫동안 많은 여/성/소수자들이 고통을 받아왔다. 그렇기에 아시아는 여/성/소수자를 지칭하는 언어가 거의 없는 반면, 혐오단어는 일반화돼있다. ‘가부장 재현체계’는 버틀러가 《불확실한 삶》(2008)에서 명명한 ‘재현의 시각장’과 스피박(G.Spivak)이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1988)에서 제기한 ‘가부장적 재현’에서 빌려온 개념들이다. 버틀러가 퀴어이론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면, 스피박은 탈식민주의이론을 중심으로 ‘말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해 논의한다. 특히 이중적 층위에 겹겹이 놓여있는 사회적 타자들은 가부장 재현체계에서 더 논의되기 쉽지 않음을 제기한다. 본 연구는 이들의 논의를 통해 가부장 재현체계에 균열을 일으키고 틈을 발생시켜 가부장 내부와 외부를 뒤섞거나, 가부장 내부로 규정된 몸을 사회적으로 ‘길들여진 몸’으로 제기하며 ‘정상성’에 대한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밝히고자 했다.


■ ‘대항기억’이 ‘상처의 재수행’을 통해 정치성을 획득한다고

‘대항기억’은 공적 역사가 제기하지 않는 사건들을 거론하는 ‘아래로부터의 역사쓰기’라 할 수 있다. 공적 역사에서 기록되지 않기 때문에 사실 많은 자료들이 누락되거나 파편화, 혹은 소멸된 흔적으로만 남아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였던 고(故) 심달연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담아낸 〈몸에 새긴 기억들〉은 그림동화 작가인 권윤덕의 디지털 비디오예술 작품이다. 작품은 사진을 이어붙이고, 할머니를 알고 있는 주변인물을 인터뷰한 내용이 흘러나오는 게 전부다. 내가 중요하게 여긴 부분은 이 사회에서 끊임없이 피해자로 호명되는 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얼굴’에 관한 것이다.
가부장 재현체계에서는 한번 피해자, 소수자로 호명돼 ‘얼굴’이 재현되면 그 ‘얼굴’은 시간이 엄청 흘렀음에도 끊임없이 ‘그 얼굴’로 기억되고 각인된다. 재현에서 다른 삶의 가능성이 배제되는 것이다. 작품은 ‘부재하는 얼굴’과 더불어 심달연 할머니의 꽃 그림을 표상함으로써 상처의 재수행을 실현시켰다. ‘흔적’들로도 충분히 발화가 가능하고, 여성주의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트라우마의 발현인 히스테리 수행성으로도 정치적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음을 타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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