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9.9.4 수 00:59
특집
[중앙아카데미아] 정상성에 균열을 내는 불완전의 정치김연호 / 문화연구학과 박사
김규리 편집위원  |  dc88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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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호]
승인 2019.09.03  23:2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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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 밖으로] 여/성/소수자 드러내기

중앙아카데미아 : 『2000년대 한국 디지털 비디오예술을 통해 본 여성의 몸에 나타난 타자의 정치적 수행성』 김연호 著 (2019, 문화연구학과 박사논문)


본 지면은 학위 논문을 통해 중앙대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 성과가 있는지 소개하고, 다양한 학과의 관점을 교류하고자 기획됐다. 이번호에서는 문화연구학과 김연호의 박사 논문 『2000년대 한국 디지털 비디오예술을 통해 본 여성의 몸에 나타난 타자의 정치적 수행성』을 통해 권력체계에서 타자화된 몸이 지닌 정치적 수행성의 가능성을 탐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정상성에 균열을 내는 불완전의 정치

김연호 / 문화연구학과 박사


  한국에서 여성의 몸은 ‘가부장 재현체계’에 길들여진 여성성을 제외하고는 사회에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만으로도 혐오·배제·낙인의 대상이 돼왔다. 성폭력 여성 생존자·디지털 성범죄 피해여성·불법이주여성·여성노동자·여/성소수자 등 가부장 재현체계 규범에서 벗어나는 ‘얼굴’은 드러나는 동시에 경계 너머에 위치돼야할 ‘얼굴’로 낙인화된다.
  본 논문은 한국의 가부장제와 공모한 신자유주의체제 속에서 여/성의 몸을 윤리적으로 재현하고자 한 한국 디지털 비디오예술 작품에 주목한다. 최근 20여 년간 간혹 모습을 드러낸 이 작품들에서 여성은 자신의 몸을 정치적으로 매개해 성인 남성 이성애 중심의 재현체계에 도전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그동안 지배적인 권력의 시선에서 왜곡되거나, 유령화돼 ‘보이지 않는 것’, 발화하는 즉시 공중에 분해되거나 ‘생략’돼버리는 수많은 상황들에 처했다.
  2000년대 한국 디지털 비디오예술에는 ‘완전하지 않은 방식’으로 재현된 형상물들이 등장했다. 이 형상물들은 ‘흔적, 부재하는 얼굴, 이방인, 이산(離散)’의 모습을 한 채로 영상에 재현됐다. ‘완전하지 않은 방식’은 여성의 몸이나 타자를 왜곡하거나 대상화해서 낙인화하는 가부장 재현체계의 포획을 거부하기 위한 표상이자 전략이다. 이로 말미암아 ‘완전하지 않은 형상물’들은 ‘여성적 트라우마·젠더 수행성·이주의 여성화’라는 세 가지 조건의 타자성과 연관된다. 흔적, 부재하는 얼굴, 이방인, 이산의 형상들을 표상하는 방식이 재현체계에서는 ‘완전하지 못한’ 방식으로 해독되지만, 본 연구에서는 여성의 몸의 타자성을 재의미화(Resignification)하는 ‘정치적 수행성’으로 접근한다.


완전하지 못한 방식의 정치성

  주디스 버틀러(J.Butler)는 트라우마가 생긴 그 사건들을 논의하지 않고는 폭력·혐오·배제에 의한 사회적 타자의 상처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타자의 트라우마를 애도하려면 그 트라우마가 체현된 몸을 기존의 재현 방식이 아닌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소환해야한다. 연구자는 ‘완전하지 못한’ 방식이야말로 ‘타자의 박탈(Dispossession)’을 심화시키지 않을 수 있는 방식이 모색된 정치적 장치들이라 가정하고 이를 고찰한다.
  이러한 이론적 토대를 바탕으로 여성의 몸을 통한 세 가지 타자의 정치적 수행성을 검토했다. 첫째, ‘대항기억으로서의 히스테리 수행성’에 관한 것이다. 여성의 트라우마는 역사적으로 히스테리 연구와 연관 있다. 무의식에 침잠해있던 여성의 트라우마는 다양한 히스테리 증상으로 나타난다. 히스테리 언어는 가부장체제의 언어로 포획되지 않기 때문에, ‘히스테리컬하다’의 의미는 가부장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여성의 감정으로 취급돼 왔다.
  작품에서 여성의 트라우마는 히스테리 표상으로 수행성을 갖는다. 가부장체제에서 언어로 포획되지 않았던 기억들이 표상됨으로써 여성의 트라우마를 애도하는 효과를 지니게 된다. ‘대항기억’은 과거에 사소한 말과 이미지로 취급됐던 것을 대안적 역사의 장치로 재구성한다. 버틀러의 논의에 따르면, 새로운 역사의 장치가 된 대항기억은 그 사건의 장면을 배제하는 동시에 재현하는 기호라 할 수 있는 ‘상처의 재수행’을 통해 정치성을 획득한다. 히스테리 수행성은 이러한 상처의 재수행을 통해 가부장체제로부터 배제되는 과정에서 받게 된 상처를 애도하는 효과를 낳는다. 김세진의 〈너무 먼, 너무 가까운〉(1996)과 〈상실〉(1997), 권윤덕의 〈몸에 새긴 기억들〉(2013), 홍이현숙의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2013), 흑표범의 〈베가〉(2016)의 작품들에서는 타자의 흔적들, 부재하는 얼굴들, 대항기억이 체현된 수행자의 몸이 ‘상처의 재수행’을 실천한 히스테리 수행성으로 기능한다.


추방된 존재, 비체(Abject)

  둘째, ‘비체적 존재로서의 수행성’에 관한 것이다. 여성은 가부장체제의 성적 착취와 억압 구조를 통해 ‘여성답게’라는 젠더수행을 함으로써 사회적 타자로 길들여진다. 생물학적 남성에게 이익이 되는 행위를 의무적으로 행해야하는 젠더정체성이 체화된 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버틀러가 제기한 ‘젠더정체성’은 원본 없이 떠도는 자유로운 인공물이다. 젠더정체성은 사법체계의 질서대로 양식화된 젠더 패러디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며, 가부장체제가 원하는 성별이분화된 젠더적 수행성을 갖게 된다. 본 연구는 젠더위계를 해체하고 재맥락화할 수 있는 개념으로 메리 더글라스(M.Douglas)와 줄리아 크리스테바(J.Kristeva)의 ‘비체’ 개념을 도입했다. 비체는 주체의 일부였지만, 주체에서 떨어져나가 그 질서를 교란시키는 물질적 양상을 나타내는 타자다. 버틀러가 비체에 대한 논의에서 주목한 부분은 비체가 ‘몸’에서 추방된 것처럼 보이지만, “추방을 통해 이질적인 것이 효과적으로 설정된다”는 부분이다. 즉 ‘나(주체) 아닌 것’을 비체로 설정할 때, 주체의 외형이기도 한 몸의 경계가 설정되고 확립된다. 여기서 주체의 몸의 일부였던 비체의 정체성이 ‘더러운 타자로 방출되거나 전환’하면서 타자에 대한 성차별·동성애 공포증·인종차별이 발생된다.
  버틀러는 주체의 몸에 존재해도 되는 정체성(내부)과 존재하면 안되는 정체성(외부-비체)을 은유적 구분의 장치로 논의한다. 그는 비체의 몸짓을 주체를 위협하고, 주체가 가진 정체성의 내·외부 분리 공간의 경계를 해체하는 특성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몸의 숨겨진 비가시성을 어떻게 몸의 표면 위에 형상화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젠더화된 몸의 구성을 재기술해야할 필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본 연구는 한 개인의 정체성이 유동성을 지니고 있으며, 다양한 여성성의 ‘퍼소나(Persona)’를 가질 수 있음을 제시하는 니키 S. 리의 〈니키 리라고도 알려진〉(2006), 유교관습에 균열을 일으킨 신여성으로서의 나혜석을 살펴본 곽은숙의 〈나혜석 괴담〉(2001), 국경을 횡단하는 비체를 담아낸 김세진의 〈일시적 방문자〉(2015), 이성애적 관습에 의한 낙인과 배제에 저항하는 정치성 전략을 제시한 김두진의 〈우리는 그들과 함께 태어났다〉(1997)와 〈페어웰 투 미스터 아놀드〉(2005)를 통해 정치적 수행성 전략을 도출하고자 했다.


주변부의 공간을 메우는 타자성

  셋째, ‘타자의 공간과 윤리적 수행성’에 관한 것이다. 여성적 트라우마, 젠더 수행성을 가진 여성은 주체의 공간에서 자신의 타자성을 드러낼 때 가부장체제에서 타자화된다. 가부장제의 공간에서 정치적 수행성을 취하더라도 공간을 구성하는 재현체계가 재구성되지 않으면 정치성을 쉽게 획득할 수 없다. 본 연구는 가정, 집과 같은 사적 영역의 공간을 중심으로 타자의 공간이 획득될 수 있는 윤리적 수행성을 살펴봤다. 사적 공간은 가부장제의 공간으로 기획됐지만, 원래 타자도 함께 살았던 집이다. 이러한 ‘집’이라는 공간을 타자의 공간으로 살펴본 작품들을 통해 가부장 재현체계에 포획되지 않는 전략을 세 가지의 윤리적 수행성 전략으로 살펴봤다. 해외입양인의 관점에서 ‘가정’을 인종적 패러디 전략으로 관철한 제인 진 카이젠(J.Kaisen)의 〈입양시리즈〉(2006-2015), 한국인의 집에 거주하게 된 재중동포여성의 불안한 심리를 표출하며 ‘환대’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심혜정의 〈아라비아인과 낙타〉(2013), 여성 성노동자의 공간으로 재전유되는 김동령의 〈아메리칸 앨리〉(2008)는 다층적인 층위를 지닌 이주 여성들에 관한 작품이다. 전세계로 뻗어나간 이주 여성들이 주로 머무는 ‘장소 없는 지역들’ ‘연대기 없는 역사를 지닌 공간들’은 어떤 공간에도 속하지 않기에 그 흔적을 복구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동시에 타자의 공간은 그 존재 자체로 정상 공간들에 관해 반박하고 이의제기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본 연구는 대항기억으로서의 히스테리 수행성, 비체적 존재의 정치적 수행성, 타자의 공간과 윤리적 수행성으로 여/성이 가부장 재현체계에서 새로운 재현을 획득할 수 있는가를 살펴봤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여성의 역사는 오랜 시간 배제돼 왔기에, 오늘날의 역사에서 여성은 주변부의 존재로 머물러 있다. 버틀러의 정치적 수행성 논의는 동일자가 오랫동안 형성해온 가부장체제에서 각 개인이 할 수 있는 정치적 방법들을 제시해준다. 본 연구는 버틀러의 논의에 기대어 타자로서의 여성의 몸에 드리워진 타자성이 오히려 여/성의 도구가 되어 권력체계를 위협하는 정치적 장치로 기능함을 도출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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