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한 /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기록이 걷는 길, 아카이브 ① 사회적 기억으로서의 아카이브

보급화 된 개인 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일상을 습관처럼 기록한다. 그리고 매체 곳곳에서 ‘아카이브(ARCHIVES)’라는 용어를 어렵지 않게 마주친다. 사실 아카이브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기록 자체’ 혹은 ‘그 기록을 보존하는 기관’을 말하지만, 우리의 일상 속에서는 단순히 자료의 백업·보관 등의 의미로 사용하곤 한다. 이렇듯 용어가 문화 속으로 넓게 파고든 틈 사이로, 은연중에 인지하고 있는 기록과 아카이브의 의미 및 가치를 보다 질적으로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사회적 기억으로서의 아카이브 ② ‘국가’의 ‘기록’, 그 중요성을 말하다 ③ 세계기록문화유산 ‘화성성역의궤’ ④ 기록물과 WWW, 디지털 아카이브의 시대

4.16 기억저장소_이미지를 클릭하면 해당 웹사이트로 이동. 
4.16 기억저장소_이미지를 클릭하면 해당 웹사이트로 이동. 

 

사회적 기억을 기록하는 발걸음

김익한 /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리 사회에서 지금처럼 기억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된 적은 없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의 ‘기억’은, 언론은 물론 시민 모두의 새로운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우리는 “잊지 않겠습니다”를 외쳤고 “꼭 기억하겠습니다”는 약속을 되뇌었다. 우리가 외치고 약속한 이 기억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기록학에서 기억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2000년대 이후 ‘기록 아카이브’에서 ‘기억 아카이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학계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록학은 과거 아카이브 기록을 바탕으로 다양한 연구를 해왔다. 주된 연구 주제는 기록의 인식론, 평가론이나 분류기술론을 중심으로 하는 기록 관리론, 기록의 물리적 보존론 등이다. 그러나 현대 기록학으로 오면서 주제 역시 다변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기록 아카이브에서 기억 아카이브로의 전환도 그 일환이다. 기록 아카이브가 소장하는 기록의 대부분은 기득권의 산물이다. 그렇기에 결국 민중의 삶을 반영하지 못하고 지배 이데올로기를 관철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한편 민중의 삶은 집합적 기억 속에만 남아 있어 시간이 흐르면 휘발돼버리므로, 그 삶과 생각들을 구술을 포함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이 점차 일반화되고 있다. 민중의 생활세계와 생각 및 바람들을 아카이브의 핵심 기록으로 삼아 기억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지배 수단으로서의 아카이브가 아닌,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민중 지향적 아카이브의 세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흐름이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다. 기억 아카이브에서도 마을(Community) 아카이브·국가폭력과 그 피해자들의 아카이브·전쟁과 재난 피해자들의 아카이브부터 페미니즘 아카이브·성소수자 아카이브에 이르기까지 생활세계의 대부분을 포괄하는 수준으로 확산되고 있다.

심층의 재현, 기억 아카이브

  기억 아카이브는 심층을 재현한다는 의미도 함께 지닌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Braudel)이 ‘사건’을 ‘표층’으로, ‘구조’를 ‘중간층’으로, ‘습속(習俗)과 문화’를 ‘심층’으로 보고, 역사의 변동이 이 심층의 지속적 영향에 의해 일어난다고 주장한 것은 기억을 논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5.18 민주화운동이나 6.10 민주항쟁은 직접적인 사회변동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1980년 5월 18일, 수많은 젊은이들이 잔혹하게 살해됐음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막아설 수 없었다. 그리고 1987년 6월 10일 역시 수많은 시민들이 서울역과 시청, 광화문을 메웠지만 결국 대통령 직선제는 노태우의 6.29 선언으로 진행됐다. 비록 직접적인 사회변동은 불가했지만, 처절한 투쟁의 사건들에 대한 시민들의 기억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심층’을 지속적으로 형성하는 원천이 됐다. 이로써 우리는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마침내 민주주의 사회로의 성장이 가능했다. 광주에 설립된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부설로 설립된 민주화운동사료관 등의 기억 아카이브는 이러한 역사의 저류를 흐르는 습속과 문화 형성의 보루다. 기억 아카이브는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드러나게 하는 하나의 진지이며, 기득권의 기록 아카이브를 상대화함으로써 사회 정의를 실현해가는 민중 지향적 기관으로 볼 수 있다.

살아있는 아카이브와 죽은 아카이브

  기록 아카이브가 사건의 증거성을 추구했다면 기억 아카이브는 심층의 울림과 공명을 추구한다. 고전적 기록학은 기록을 어떤 사건이나 과거의 행위를 증거하는 존재로 봤고, 이에 따라 이용자들은 법적·행정적·역사적 증거를 찾으려는 목적으로 아카이브에 접근했다. 기록 아카이브는 기록들을 ‘죽은 상태’로 뒀다가 어떤 목적을 위해 간헐적으로 선별된 기록만을 잠시 ‘살려내는’ 기관이었다. 이에 비해 기억 아카이브는 사건의 표층을 보여주는 사진이나 일기, 문화적 흐름을 보여주는 영상 등을 통해 이용자들에게 기억을 소환하게 하고 그 기억을 통해 느낌 또는 생각, 삶의 지향에 대한 각오 등을 생성하도록 한다. 기록 아카이브는 증거를 위해 사용되는 반면, 기억 아카이브는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의 지속적 생성을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새로운 생성들을 다시 기록화해 아카이브로 환류함으로써 ‘살아있는 아카이브’가 되기를 지향한다.
  생각과 문화의 지속적 생성이 사회적 차원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기억’은 ‘집합적 기억’의 기반이고, 일정 집단이나 기억 공동체의 집합적 기억은 역사 변동의 기저로 작용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기억’으로 형성돼간다. 개인 기억과 집합적·사회적 기억의 관계는 차이와 반복의 변증법적 관계나 다름없다. 개인이 무언가를 기억하거나 기록을 통해 기억을 소환한다는 것은, 어떤 과거의 경험이 시공간을 넘어 주체화됨을 의미한다. 세월호 참사의 기억이 우리에게 ‘주름(Multiplicity)’을 형성시키고 새로운 주체로 거듭나게 했던 것처럼, 의미 있는 경험으로 형성된 주름과 그 주름의 지속이야말로 주체를 구성해가는 실재다. 세월호 참사 이후 기억이라는 단어가 일상화된 이유는 그 기억이 우리 자신을 성찰하게 했으며, 나아가 기억에 의한 주름의 형성과 실천을 통한 주체화를 많은 시민들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기억에 의한 개인의 전변(轉變)은 곧 사회적 기억에 의한 세상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브로델이 말한 심층에 의한 역사 변동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기억 아카이브로서의 4.16 기억저장소

  세월호 참사 이후 기록전문가들과 유가족들은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 스스로의 힘으로 ‘4.16 기억저장소’를 만들었다. 4.16 기억저장소는 세월호 참사의 기억에 대한 기록 40여만 건을 수집했고, 이를 활용해 영화 〈나쁜 나라〉(2015),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2015) 《그리운 너에게》(2018), 구술증언록 《그날을 말하다》(2019) 등을 만들었다. 그리고 8회에 걸친 기획전시와 ‘기억과 약속의 길’이라는 시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기억 아카이브의 실천 활동들은 유가족을 중심으로 기억공동체를 형성시켜가고 있기도 하다.
  기억 아카이브로서의 4.16 기억저장소는 끊임없이 기억을 소환함으로써 더 이상은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를 강요하지 말라 요구하고, 더 이상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세상을 남의 일이라 치부하지 말라 요구하고,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속박하는 그 어떤 권력에도 더 이상 굴종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박근혜 정권이 무너진 지금 이 순간에도 기억 아카이브는 우리와 우리 사회와 우리 국가의 끊임없는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4.16 기억저장소의 새로운 시도는 ‘살아 있는 기억 아카이브’야말로 사회적 기억과 주체의 실천을 이끌어내고, 주체들의 자유와 행복을 배양하는 작지만 큰 진지임을 말해준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