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9.9.4 수 00:59
기획예술
[예술] 말이 멈추는 곳에서 시작된 이야기김요섭 / 문학평론가
정보람 편집위원  |  boram2009@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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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호]
승인 2019.04.30  16:2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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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 - ③ 문학: 5.18과 소설 ‘소년이 온다’]
  어떤 예술작품은 사회적 맥락과 역사 속에서 바라봤을 때 무게를 다르게 지니는 경우가 있다. 역으로, 역사적 사건이 창작자에 의해 또 다른 매체로 다시 표현될 때 사람들은 사건을 감동적인 이야기로 내면화해 새롭게 기억하기도 한다. 굴곡 깊은 한국 근현대사를 작가의 시각으로 오롯이 담아낸 작품들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덧붙인 이야기를 집중 조명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회화: 군사정권과 신학철의 ‘모내기’ ② 영화: 제주4.3과 영화 ‘지슬’ ③ 문학: 5.18과 소설 ‘소년이 온다’ ④ 사진: 비틀어진 근현대사와 노순택의 ‘비상국가’
 

말이 멈추는 곳에서 시작된 이야기

 

   
■사진출처 5.18기념재단 (www.518.org)

김요섭 / 문학평론가

  내게 처음으로 광주의 5월을 이야기해준 사람은 나의 어머니다. 당시 경기도의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어머니와 동료들은 모두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그 실상은 알지 못했다. 어머니는 광주가 진압된 뒤 공장에 올라온 화물 운전기사에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주저하던 운전기사는 짧게 답했다. 좋은 세상이 오면 알게 될 거라고. 그의 대답이 담고 있던 서글픔과 무력함이 그때를 기억하던 어머니의 눈에서 느껴졌다. 나의 어머니는 그곳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으나 그 5월을 함께 앓았다. 내게 광주의 5월은 말할 수 없는 것, 알 수 없는 것. 말할 수 없고 알 수 없기에 더 아프게 앓아야 했던 삶이다. 마치 동호, 당신처럼 말이다.
  한강의 장편 《소년이 온다》(2014)는 계엄군에게 살해당한 소년 ‘동호’에 대한 소설이다. 소설의 에필로그에서 유가족은 부탁한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그에 답하듯 작가는 동호를 무기력한 희생자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 이야기를 써간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소설에서 동호는 그가 5·18을 어떻게 체험했는가를 보여주는 1장을 제외하곤 더 이상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나머지 장들은 그의 가족이나 친구 같은 주변 인물들의 삶을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그리고 이들의 삶 속에서 동호는 단편적인 기억으로 등장할 뿐, 소년의 죽음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는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이런 서술전략은 광주의 5월을 재현하고 기억하는 양상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각을 보여준다. 한강은 광주를 설명하는 공식적 언어들 속에 소년의 삶이 온전하게 남을 수 있다고 보지 않는 것 같다.

민주화 서사가 재현하지 못한 ‘잃어버린 삶’

  1980년 5월 광주의 시민들이 겪었던 사건의 공식 명칭인 ‘5·18민주화운동’은 이 역사적 사건을 한국사회가 기억하는 방식을 적확하게 보여준다. 한국사회를 지탱하는 두 개의 강력한 서사에는 민주화와 산업화가 있다. 박정희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산업화의 서사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말해진다. 길게는 3.1운동과 임시정부에서 그 정통성을 주장하는 민주화 서사는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그리고 6월 항쟁과 최근 촛불혁명까지 승리와 좌절의 경험을 반복하며 오늘날까지도 점진적으로 형성돼가는 서사다.
  ‘5·18민주화운동’이라는 호명은 광주의 5월을 한국의 국가정체성을 구성하는 민주화 서사의 진행경로 위에 배치함으로써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국가적 서사로의 편입은 광주의 5월을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만들어줬고, 군부정권에 의해 ‘빨갱이’로 낙인찍혔던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광주의 5월에 대한 국가적 기억을 충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모든 서사가 그러하듯 민주화 서사 역시 서사의 핵심 줄기를 구성하기 위해 삶의 단면만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민주화의 서사는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해주는 강력한 기반이지만, ‘그들이 잃어버린 삶’ 전체를 포괄하지는 못한다. 민주화 서사에서 광주의 희생은 사회 진보의 도정이지만, 개인의 삶에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미래의 상실이자 기억의 훼손이다. 주디스 허먼(J.Herman)이 《트라우마》(1992)에서 말하듯 트라우마를 남긴 사건을 가해자의 규정과 다르게 말하는 일은 치료의 한 방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한강은, 아물지 않는 어떤 기억은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되게 만든다고 소설을 통해 말한다. 그 상처가 어떤 말 속에도 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 상식은 논리적인 언어가 사실을 전달하고 확인하는 가장 분명한 수단이라고 여기지만, 고통스러운 경험의 진실은 오히려 나오지 않는 말과 일관되지 않은 기억을 통해 전해질 수 있다. 임지현이 그의 저서 《기억전쟁》(2019)에서 도리 라우브(D.Laub)의 논의를 빌려 공식적이고 합리적인 ‘지적 기억’과 일관되지 않고 불분명한 피해자의 ‘깊은 기억’을 구분하면서 전자의 강조가 오히려 희생자들을 억압할 수 있다고 비판한 것처럼 말이다. 고통의 경험은 상실의 체험이며, 그 상실에서 언어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기에 논리적이고 명료한 언어로 다듬어진 고통은 적확하게 전달되는 대신, 총체적 경험을 인과적으로 쪼개어 놓는다. 흔히 ‘증언의 아포리아’라고 불리는 폭력적 경험을 증언하는 일의 역설은 말의 힘을 의심하게 만든다. 공적 기억의 언어에 대한 한강의 의심은 일견 당혹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강이야말로 언어에 대한 믿음으로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니던가.

상실된 삶들의 궤적을 드러내는 일

  《소년이 온다》 이전의 작품들에서도 한강은 언어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준 바 있다. 그의 대표작인 《채식주의자》(2007)를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 고통의 경험으로 언어를 상실한 이들을 그려왔으며, 실어증에 걸린 주인공을 내세운 《희랍어 시간》(2011)에서는 언어가 개인의 삶을 압도하는 공포감을 세밀하게 살핀다. 한강의 소설은 언어를 두려워하면서도 언어를 통한 재현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질문한다. 동호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오히려 그에 대한 직접적인 서술을 제한하는 《소년이 온다》의 독특한 서술 전략은 언어의 위협과 맞서는 재현의 시도로 이해해야 한다. 소설은 소년의 상실을 경험한 이들의 삶 속에 나타난 비어있는 자리들을 통해서 소년의 삶이 차지했던 세계의 너비를 가늠하게 한다. 세 개의 원으로 이뤄진 벤다이어그램에서 양옆의 원들과 겹쳐진 가운데를 지우는 것을 상상해보자. 가운데 원이 사라지면 그것과 포개어져 있던 다른 원들도 일부를 잃는다. 그런데 이 남겨진 원들이 잘려나간 부위의 곡률을 따라 선을 이으면 어렴풋하게나마 사라진 가운데 원의 모습이 그려진다. 함께 포개어졌던 삶의 상실을 이어가다 보면 동호가 가졌던 삶의 부피가 더 선명해진다. 소설은 동호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그를 잃은 삶들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그의 삶이 무엇이었는가를 전달한다.
  《소년이 온다》가 동호의 삶을 재현하는 독특한 방식은 한국사회의 모두가 알고 있다고 믿는 5·18민주화운동의 ‘말해질 수 없는 틈’을 파고든다. 광주의 5월과 그곳에 있던 이들의 삶이 민주화라는 국가 서사의 한 요소로 구성될 때, 민주화의 명예가 그들의 사회적 존엄을 회복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함께 살고 사랑했던 삶들과 맞닿아 있지 않다면 그들이 온전한 한 사람으로 돌아갔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2015)에서 사회적 성원권(사람됨)이 생물학적인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인정 속에 있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한강은 동호를 한 사람의 희생자가 아니라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은 한 사람”으로 바라본다. 온전한 한 사람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그를 사랑한 관계들과 만나야 한다. 그것이 상실의 경험이라 할지라도, 그 비어버린 자리가 한 사람으로 돌아올 자리다.
  그 상처 입은 사람들의 틈으로, 소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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