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으로 시대 읽기]

다만, 말해야 하는 이야기

 

■소설《소년이 온다》(2014) 표지
■소설《소년이 온다》(2014) 표지

  이 책을 읽을 때면 나 외에 다른, 그리고 낮은 목소리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등목을 했지, 끼얹었지, 웃었지, 달렸지…. 나열된 짧은 문장과 반복되는 문말어미를 읽어주는 낮은 목소리를 따라가다 쉬이 넘어가지지 않는 페이지를 만난다. 물리적인 페이지라기보다는, 예의 그 목소리가 나의 목소리가 되는 순간이라는 표현이 낫겠다. 나는 그렇게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기억한다. 이로써 1980년의 5월과 그때의 광주를 이전과는 다르게 여기는 삶이 됐다.
  국가기록원의 5.18민주화운동 아카이브에서는 1980년 당시 작성된 ‘광주소요사태 사망자 조서’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는 5월 20일부터 6월 7일까지 총상·자상·타박상·교통사고로 사망한 162명의 인적사항이 나열돼 있다. 7세부터 68세까지의 이들은 학생, 주부, 운전기사, 종업원, 목수, 회사원, 이발사, 페인트공, 양화점 점원으로 살아왔었다.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아니게 됐다. 이 사라진 사실에 대해, 이 중 어렸던 그 소년, 그의 삶에 대해 한강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삶으로 존재했어야 했을 한 사람의 부재를 이야기했다. 예술이 가치를 갖는다면, 말할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해내고야 말기 때문일 것이다. 그로 인해 누군가의 삶의 방식을 바꿔버리는 계기가 되는 힘 말이다. 이제 나에게 예술의 역할은, 말해야 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목소리’와도 같다.

정보람 편집위원 | boram2009@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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