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은자 / 성균관대 아동청소년학과 교수

[문학] 그림책의 재발견 ① 그림책 이해하기

과거 그림책은 교훈적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읽기를 연습시키기 위한 도구로 여겨졌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그림책은 문자텍스트와 시각텍스트가 결합한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아동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영감을 주는 그림책은 독자들에게 미감(美感)에 의한 즐거움은 물론이거니와 깊은 사색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그림책의 구성, 표현기법에 관한 지식과 텍스트 분석을 통해 그림책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그림책을 제대로 읽는 기쁨과 즐거움을 느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그림책 이해하기 ② 포스트모더니즘과 그림책 ③ 그림책의 새로운 흐름 ④ 멀티미디어 시대와 그림책

 

그림책을 읽다, 그림책을 보다


현은자 / 성균관대 아동청소년학과 교수


  그림책(Picture book)을 정의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그림책은…다’고 정의하는 것과 ‘그림책’과 ‘그림책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본 글에서는 후자로부터 시작한다. ‘삽화가 있는 책’(Illustrated book)과 ‘이야기 그림책’(Story picture book)은 ‘그림책’과 자주 혼동되는 용어다. 엄밀하게 말하면, ‘삽화가 있는 책’은 ≪전래동화≫, ≪안데르센 동화집≫같은 기존 문학 작품에 삽화를 더한 것이며, ‘이야기 그림책’의 경우에는 전자보다 스토리 전달에서 삽화의 역할이 더 크다. 그러나 두 형태의 공통점은 삽화 없이도 스토리 전달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림책은 어떠한 책인가. 그림책의 그림은 글의 의미를 더 명료하게 해 주고, 독자적인 의미를 전달할 뿐 아니라, 나아가 글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그러한 형태가 극단으로 가면 글 없는 그림책(Wordless picture book)이 된다. “그림책에서 글은 그림을 반복하지 않으며, 그림도 글을 반복하지 않는다. 글과 그림은 대위적 관계로 서로를 보완하고 완성한다”고 유리 슐레비츠(U.Shulevitz)는 설명한다.


기호학과 그림책

  ‘현대 그림책’을 연구하기 위해 학자들은 다학제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특히 기호학(Semiotics)은 유용한 이론적 기초다. 그림책에서 글은 문학 장르에, 그림은 조형 예술에 속하며 이들의 유기적 관계로부터 의미가 생성되므로 그림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학과 미술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기호학은 그림책 속의 글과 그림을 별개의 기호로 다루면서 동시에 글과 그림의 조합 자체를 또 다른 하나의 기호로 본다. 우리가 그림책을 보는 과정은 기호학자 사이프(R.Sipe)가 말한 기호 삼각형 모형과 유사하다. 글은 대상을 표상하는 기호의 역할을 담당하며, 이 기호는 다시 그림으로 표현되면서 새로운 해석을 낳는다. 그림에서 시작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림은 대상을 표상하는 기호가 되고, 이 기호는 다시 글로 표현되면서 새로운 해석을 낳는다. 이렇듯 그림책에서 글기호와 그림기호는 동시에 읽히면서 새로운 해석을 창출한다. 그렇다면 그림책 해석은 어떤 기호를 먼저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는 아동이 그림책에 보이는 반응이 왜 성인과 다른지를 설명한다. 아직 글을 모르는 아동의 경우 그림을 먼저 보게 되고(게다가 눈에 더 잘 띈다), 성인은 관습적으로 글을 먼저 보게 되므로 아동과 성인의 해석과 반응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림책을 아이코노텍스트(Iconotext)로서 접근하는 것도 그림책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프랑스의 사진작가이자 이론가인 네를리쉬(M.Nerlish)는 아이코노텍스트가 글과 그림이 불가분의 관계에 놓인 하나의 단위로서 작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아이코노텍스트란 글로도 그림으로도 보기 어려운 ‘제3의 텍스트’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림책이란 글과 그림이 함께 읽히는 아이코노텍스트라고 말할 수 있다.


다양한 글과 그림의 관계

  기호학은 한 장면에서 글과 그림 기호의 의미를 해석하는데 유용하지만 그림책을 하나의 서사로서 해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점점 더 많은 그림책들이 성인문학에서처럼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기법을 구사하고 있으므로 소설의 구조를 논할 때 사용되는 개념과 이론들이 그림책 해석에 적용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학자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인 니콜라예바(M.Nikolayeva)를 들 수 있다. 그는 소설 분석에서 사용하는 문학과 미학 이론(카니발 이론, 서사학, 타자성, 상호텍스트성 등)을 아동문학과 그림책 분석에도 적용해 그 유용함을 증명해 왔다. 그는 특히 서사에서의 글과 그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이를 분류하고 도식화함으로써 그림책의 서사 구성 방식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 이후에도 여러 학자들이 나름의 분류체계를 고안했으나 여기에서는 가장 단순하고 보편적인 분류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글이 그림의 의미를 정박(Relais) ▲글과 그림이 상호보완 ▲글과 그림의 대위(Counterpoint)관계로 나누는 것이다. ‘정박’이란 프랑스의 문예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R.Barthes)가 사용한 용어를 차용한 일종의 은유다. 배가 해안에 정박하기 위해서는 닻을 내려 배를 고정시켜야 하는 것처럼 그림 기호의 다양한 해석을 글이 고정시켜 한 방향으로 묶는 것이다.
  ‘상호보완’이란 글, 그림 두 언어가 서로 보완해 스토리를 완성하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그림책에서 글, 그림은 서로를 돕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어떤 작품에서는 그 역할 분담이 매우 명확하다. 예를 들어, 가브리엘 벵상(G.Vincent)의 ≪박물관에서≫(1997)의 글은 인물간 대사를, 그림은 그 외의 서사를 담당하고 있으며 차지하는 공간도 나뉘어 있어 마치 무성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대위’ 관계는 ‘아이러니’라고도 불리는데, 글과 그림이 전달하는 정보가 서로 일관성이 없거나 심지어는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존 버닝햄(J.Burningham)의 ≪알도≫(1996)라는 작품의 한 부분에서 글 텍스트는 “가끔은 엄마랑 놀이터에도 가고, 어쩌다가는 외식도 해. 그럴 때에는 정말 신이 나지.”다. 만약 이 글만 본다면 이 아이는 엄마랑 놀이터도 가고 외식도 하니 정말 신나는 아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림의 내용은 다르다. 이 아이는 놀이터에서 노는 것이 아니라 엄마 손에 이끌려 가면서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부러운 듯 쳐다보고 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도 이 아이는 식당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지만 역시 그의 시선은 다른 테이블의 아이들을 향하고 있다. 여기에서 글과 그림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글과 그림의 불일치함이 역설적으로 이 아이가 매우 외로운 아이임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외로운 아이는 결국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 상상의 친구, ‘알도’를 만들어내게 되고 그로 인해 친구들의 따돌림과 부모의 불화가 준 상처를 치유해 나가게 된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글은 알도가 그 소녀의 상상 친구임을 드러내지 않으며 독자들은 오로지 그림만을 통해 알도의 존재를 알 수 있을 뿐이다.

 

 《알도》(1996)
 《알도》(1996)

  그림책에서의 글과 그림의 관계를 분류해 봤으나 각 장면에서의 글과 그림의 관계를 분석하는 것이 그림책 해석을 위해 선행돼야 한다거나 필수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누군가는 작품의 수만큼 글, 그림의 관계가 있다고 주장할 정도로 글과 그림이 서사를 이루는 방식은 무궁무진하다. 때문에 그림책 읽기는 독서이자 일종의 놀이이며 때로는 수수께끼 풀기와도 흡사해진다. 결국 이 수수께끼를 잘 풀기 위해서는 작가의 산고(産苦)의 결과인 작품을 존중하면서 글과 그림을 촘촘히 읽어내려는 태도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