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훈 / 정치국제학과 교수

[국제] 2017 세계체제 지형도

2017년은 세계 선거의 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 독일은 물론 대한민국의 대선까지 앞두고 있다. 그리고 국제 관계는 새롭게 당선될 각국 수뇌부의 기조나 각국의 국민들의 선택에 따라 급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국제’면 기획을 통해 미국·유럽·한국 등의 선거를 다루고자 한다. 각국의 선거를 통해 세계체제는 어떻게 재편 될 것인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들여다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트럼프와 미국 헤게모니 ② 프랑스 대선과 유럽연합의 위기 ③ 독일 총선과 유럽연합의 향방 ④ 한국 대선과 우리의 과제


백훈 교수가 바라보는

독일 총선과 유럽연합의 미래

백훈 / 정치국제학과 교수

  지난달 23일 치러진 프랑스 대선에 이어 다가오는 9월 24일에 실시되는 독일의 총선 결과가 유럽연합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가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중도 우파인 현 독일기독교민주연합(CDU)과 그 자매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남부 바바리아주를 기반으로 하는 독일기독교사회연합(CSU)의 리더인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이 네 번째 연임에 성공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반이민 정서에 편승하여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 정당(AfD)’이 최초로 5%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여 원내 정당이 될 것으로 보이는 등 독일 정치구도에 커다란 변화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독일 총선은 독일 헌법인 ‘기본법(Grundgesetz)’에 따라 제18대 국회가 개회된 날로부터 46-48개월에 해당되는 기간 중 일요일(또는 공휴일)에 선거가 실시되어야 하고, 9월 24일로 결정됐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CDU·CSU는 1990년 이후 가장 좋은 결과를 이루어 총 598석(총선 후 추가로 결정되는 33석 제외) 중 311석을 차지했지만, 연정 파트너였던 자유민주당(FDP)이 최악의 득표를 해 원내정당의 지위를 상실, 과반 정당이 되는데 5석이 부족했습니다. 결국 중도좌파인 독일사회민주당(SPD)과의 대연정으로 원내 과반 의석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독일 내 반이민 정서의 대두, 혼란 속의 총선

  독일 내에서 반이민 정서가 높아진 것은 지난 해 독일에서 발생한 두 가지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그 중 하나가 2015-2016년 연말연시 축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독일 중서부의 콜론시에서 아랍계 청년들이 독일 여성을 집단 성추행·성폭행한 사건입니다. 함부르크, 도르트문트, 뒤셀도르프 등 다른 도심에서도 비슷한 사건들이 발생했는데, 독일 경찰에 따르면 1,200명의 독일 여성들이 피해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주로 북아프리카 아랍계 이주 청년들에 의해서 자행된 이 계획적인 만행으로 이민 정책에 매우 관대한 메르켈 총리에 대한 독일인들의 불만이 커졌고, 그 반대급부로 극우 정당인 AfD의 지지율이 급속히 높아졌습니다. 또 다른 사건은 지난 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베를린 크리스마스마켓에서 발생한 트럭 테러 사건인데, 60여 명의 사상자를 가져왔습니다. 이 사건을 일으키고 도주했다가 이탈리아에서 사살된 용의자는 튀니지 출신의 독일 이주자로 알려졌습니다.

  다가올 독일 제19대 총선은 독일의 실질적인 입법기관인 ‘연방의회(Bundestag)’의 598명의 의원을 선출하게 되는데, 현재까지의 여론조사에서는 메르켈 수상이 이끄는 CDU·CSU가 SPD에 비해 두 자리 수로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 의장을 지낸 마틴 슐츠(Martin Schulz)가 자신의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국내 정계로 복귀해 SPD를 이끌게 되면서 그 격차는 급속하게 좁아지고 있어서 이번 9월 독일 총선의 새로운 변수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메르켈 수상은 어느 때보다도 힘든 총선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에게 해 해변에 3살 소년 아이란 쿠르디(Aylan Kurdi)가 차가운 주검으로 떠밀려 왔을 때만 해도 메르켈 총리의 이민 정책에 대한 독일 국민들과 세계의 찬사가 이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연이은 독일 내 아랍계 이주민과 관련된 사건들로 인하여 분위기는 급변했습니다. 독일 내 잡지 슈테른(Stern)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CDU·CSU에 대한 지지율은 38%로, SPD의 21%와 AfD의 11%에 크게 위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다른 조사에서도 이민문제는 9월 독일 총선에서 가장 이슈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AfD 외에도 페기다(Pegida)와 같은 극우단체가 반이슬람 집회에 수천 명을 운집하게 했고, 독일국가민주당(NPD)과 같은 신 나치정당에 대한 각 주정부의 금지조치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향후 독일 총선에서 어떠한 결과가 나올 지 짐작하기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유럽을 위해,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다행스러운 것은 독일 내에서도 지나치게 극우적인 정당이나 집단이 득세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는 점입니다. AfD의 급속한 상승세가 주춤하게 된 것도 지난 1월 AfD 소속의 역사교사 출신 극우 정치인 뵈른 회케(Bjoern Hoecke)가 구 동독 도시 드레스덴의 한 맥주홀에서 한 연설이 화근이 된 것인데, 그는 이제 독일은 과거 나치 정권의 범죄에 대해서 더 이상 사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심지어 나치 정권의 유대인 학살의 증거인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수치의 기념관(monument of shame)’이라고까지 했습니다.

  다가올 독일의 총선이 어떤 결과로 나타나고, 그 결과가 영국과 브렉시트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유럽연합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까에 대해 전 세계가 우려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독일은 2차 대전 후 반목과 대립으로 분열된 유럽을 새롭게 하나로 결속하는 노력의 중심에 있어 왔습니다. 1951년 유럽연합(EU)의 토대가 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의 출범을 가져온 파리협약을 주도했고, 2007년 리스본 협약까지 독일의 역할은 지대했습니다. 비록 두 번의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전범 국가였지만 역사를 반성하고 유럽을 다시 세계의 중심권으로 일으켜 세운 리더가 됐습니다. 독일이 유럽 통합에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나치 정권의 폐해를 경험하면서 중앙집권적 경제독점이 가져오는 폐단을 극복하기 위한 ‘경제질서’를 기반으로, 독일식 경제시스템을 통한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자기완결적 모범국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EU의 공식 통계(Eurostat)에 따르면 독일경제는 2014-2015년 기간 유럽연합국가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국가재정이 흑자인 국가입니다(경제규모가 작은 룩셈부르크, 에스토니아는 제외). 사실상 유럽 경제를 독일이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향후 유럽연합의 결속은 독일이 얼마나 경제적 지도력을 발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모든 유럽연합 국가들의 경제구조 변화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입니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2000년 역사를 통해서 유럽의 분열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가져다주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1950년대 프랑스 외무장관이었던 로베르 슈망(Robert Schuman)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탄생한 유럽공동체(EC)는 가장 커다란 도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인들의 ‘하나의 유럽’을 위한 노력은 2000년의 시간을 통해서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기에 어려움 속에서도 유럽인들의 지혜를 통해 계속 진전해 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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