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프레이저 외 지음, 문현아 외 옮김,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그린비, 2016)

 

[지금 이 책!]
 

이 코너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시의적인 학술주제를 가진 서적을 소개해 여러 분야의 연구동향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이번 호에서는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이자 정의이론가인 낸시 프레이저와 여러 사상가의 논쟁을 담은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정의를 향한 개념의 변태과정


낸시 프레이저 외 지음, 문현아 외 옮김,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그린비, 2016)


 홍보람 / 사회학과 석사과정 수료

 

 
 
 대화적인 것의 정상적인 형태는 본질적으로 적대적인 형태라고 바흐찐은 말한다. 대화란 차를 홀짝이며 점잖게 이루어지는 평화적 행위가 아니라 공유된 약호의 전반적 통일성 속에서 대립하는 담론들이 투쟁을 벌이는 현장이라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정치이론가 낸시 프레이저의 비판적 정의론을 둘러싼 논쟁 모음집인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는 경제적 불평등, 문화적 무시 등 다차원의 부정의를 극복하기 위한 현시대 학자들의 긴 대화이자 싸움의 기록이다.


1995년 프레이저는 기존 정의론의 쟁점이던 사회경제적 재분배의 자리를 신사회운동의 대두와 함께 문화적 인정이 대신한다고 진단한다. 정치 동원의 핵심 수단은 계급적 이해가 아닌 집단 정체성이 되었고, 근본적 부정의는 경제적 착취가 아닌 문화적 지배가 되었다. 이해관계·착취·재분배와 같은 사회주의적 단어들이 점멸하고 정체성·차이·문화적 지배·인정 등 새로운 정치적 단어들이 부상하는 ‘포스트 사회주의’ 시대에, 프레이저는 계급 불평등에 저항하는 분배의 정치학과 지위위계에 저항하는 인정의 정치학을 어떻게 절합해야 시너지가 발생하는지 분석한다. 인정 주장은 어떤 집단이 갖는다고 추정되는 특수성에 주목하고, 그 특수성의 가치를 긍정하는 형식을 띠기 때문에 집단의 분화를 촉진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재분배 주장은 집단 특수성을 유지시키는 성별 노동분업 등의 경제 질서를 폐지할 것을 요청하면서 집단의 탈분화를 촉진하는 경향을 보인다. 프레이저는 특히 젠더·인종 등 이가적(bivalent) 집단이 문화 부정의와 경제 부정의 모두에 종속된 혼종 양식으로서, 자신의 특수성을 주장하면서도 부정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한다.


부정의에 대한 이원적 분석틀에 프레이저는 긍정(affirmation)적/변혁적 개선책을 교차한다. 긍정적 개선책은 부정의를 발생시키는 근저의 틀을 건드리지 않은 채 결과를 교정하려는 것으로, 자유주의적 복지국가 모델과 정체성 정치에 입각한 주류 다문화주의가 여기에 속한다. 반대로 변혁적 개선책은 근저의 틀 자체를 재편함으로써 불공정한 결과를 교정하고자 하며,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 문화적으로는 퀴어이론에 입각한 해체주의를 가리킨다. 프레이저는 긍정적/변혁적 재분배, 긍정적/변혁적 인정의 총 네 가지 개선책 가운데 재분배-인정 딜레마를 해결할 최적의 조합은 경제적 사회주의와 문화적 해체주의라는 변혁적 개선책의 쌍이라고 결론 내린다.


이 분석틀은 곧 문화정의와 경제정의 진영 양자로부터 비판받는다. 주디스 버틀러는 정치 경제와 문화 사이에 스펙트럼을 가정하고 문화적 극단에 성소수자 투쟁을 위치시키는 프레이저의 분석방식이 신사회운동, 특히 퀴어정치를 ‘단지 문화적’인 것으로 일축한다고 항변한다. 버틀러는 프레이저가 정치경제가 기능하기 위한 핵심에 섹슈얼리티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의 유산을 망각할 뿐 아니라 현 성소수자 투쟁의 정치력을 누그러뜨리려는 학문적 노력을 하는 것 같다며 ‘좌파 내 신보수주의’라는 공격을 가한다. 이에 프레이저는 문화/경제 구분이 분석을 위한 이론작업임을 명시하고 문화적인 것 또한 물질적인 것임을 강조한다. 입장을 정교화하는 동시에 프레이저는 버틀러가 이성애규범적인 섹슈얼리티 규제를 경제구조의 일부로 보고 있으며, 이는 정통 맑스주의의 경제 일원론 아니겠냐고 맞받아친다. 다음으로 리처드 로티는 프레이저와 버틀러 모두 ‘편견의 제거’ 대신 ‘문화적 인정’에 지나치게 천착하는 것은 아닌지 질문한다. 문화적 집단 정체성에 대한 주장은 오히려 집단 내 다양성을 억압하고 다른 집단을 경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에, 로티는 보편적 인간성에 초점을 두고 편견을 제거하는 것이 해법이라 본다. 프레이저는 로티의 문제제기를 집단정체성의 ‘물화’문제로 정리하고, 인정투쟁을 집단정체성의 실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상호작용 과정에서 동등한 지위를 갖기 위해 필요한 투쟁으로 설명한다. 이처럼 반박에 재반박하면서 프레이저는 자신의 이원적 정의론을 불균등분배, 불인정, 정치적 배제의 역학을 보여주는 삼원적 틀로 다듬어간다.


프레이저 이론의 발전은 늘 시의적 논쟁 속에서 이루어져 왔다. 90년대 미국 퀴어운동은 ‘이성애 대 퀴어’라는 이분법을 강화하면서 ‘퀴어의 정체성 정치’라는 형용모순적 경향을 나타냈다. 프레이저의 문제의식을 이 시대상황 속에 위치시킬 때 지금 여기에서 프레이저를 어떻게 읽어낼지가 좀 더 선명해질 것이다. 또한, 정체성 정치와 좌파 경제주의의 분리를 극복하려는 프레이저의 ‘분석적 구분’이 암묵적으로 분리를 재창조하는 건 아닌지, 나아가 경제/문화의 상상적 분리를 이용하는 신자유주의에 결과적으로 조응하지는 않는지 의심이 필요하다. 이 책이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은 무엇보다 의심하고 부정하는 방법이며 그 부정에 최선을 다해 반론토록 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