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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쯔의 글과 함께 김보미 당선자를 지지하기

자신을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한 김보미 서울대 총학생회장 후보가 지난 달 20일, 투표자 기준 86.8%의 찬성을 받아 당선되었다. 선거가 끝난 직후 중앙기독동아리 한기연 명의로 자보가 붙었는데, 제목은 이렇다. “레즈비언 총학생회장 당선을 축하합니다.” 자보에는 특이하게도 김보미 당선자의 이름이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는다. 오로지 흑인이거나 황인종이거나 에이즈 환자인 것처럼, 지독하게 종별화된 ‘레즈비언 총학생회장’만 있을 뿐이다. “이제 동성애 문제는 존재적 아픔에 관한 접근보다 다른 무엇을 위해 활용하기도 하는 하나의 트랜드가 된 듯도 하다”라고 예의 없이 말하는 이 자보는, 김보미 당선자가 진정한 레즈비언인지 혹은 정체성을 이용한 것일 뿐인지 의심에 찬 채로, 앞으로의 총학 활동을 지켜보겠다며 감별사의 지위를 자청하고 있다.

한기연의 자보는 커밍아웃의 불가능성을 예증한다. 언제까지, 누구에게, 몇 번이나 고백해야 우리는 재현이 될까. 이런 실패를 체현하는 커밍아웃을, 그럼에도 행하는 김보미 당선자의 용기를 지지한다. 또한 그 용기는 마쯔의 글처럼, 두려움과 함께 독해되어야 한다. 왜 연애를 하지 않냐. 미팅에 나와 달라… 이런 말들을 어느 순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커밍아웃을 하게 되었다는 김보미 당선자의 발언 속에서, 커밍아웃의 새로운 이미지를 탐색할 필요가 있다. 이러다간 악의 없는 저 발언들에 압사 당할지도 모른다는 느낌. 단지 숨 쉬기 위해, 살기 위해 하는 것으로서의 커밍아웃. 틈을 벌리고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그 벌린 공간에 사람들을 초대하기 위해서. 밑줄을 긋자. 용기는, 두려움을 통해서 가능해지는 감정이다. 커밍아웃은, 나와 너에 관한 이야기이다.

홍보람 편집위원 | silbaram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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