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희 / 수유너머N

  서울올림픽 준비가 한창이던 어느 여름날, ‘수은중독 15살 소년 숨져’라는 짤막한 기사가 신문 한 귀퉁이에 실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기사를 발견하지 못한 채 그 여름을 났을 것이다. 15살의 문송면 군은 서울의 온도계 공장 ‘협성기계’에 취직하고 두 달만인 7월 2일, 수은과 유기용제 중독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죽음이 있다. 얼마 전 대우조선에 입사한 19세 청년이 입사 2주만에 산재로 사망했다. 이 청년은 자신이 작업해야할 대형 플랜트에 대한 구조나 작업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 회사가 작업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사전 교육없이 무리하게 현장에 투입했기 때문이다. 이 청년을 포함해 최근 3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중대재해로 사망했다.

  어쩌면 자본주의가 끝나기 전까지 이런 허망한 죽음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이 두 죽음은 20여 년이 훌쩍 넘은 시간의 간극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동시대의 죽음같이 느껴지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문송면 군의 사업장은 노동조합이 아직 결성되어 있지 않은 일명 ‘마찌꼬바’라고 불리던 중소 영세사업장이었다. 문송면 군이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그의 작업장에도 80년대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민주노조가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규모 영세사업장에서 임금인상을 쟁취하기란 예나 지금이나 그리 녹록치 않다. 90년대 들어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확보한 것은 대기업 생산직 노동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임금인상이 전체 노동자계급의 실질임금을 동반상승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해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내부의 임금격차 역시 함께 벌어진 것 또한 사실이다. 당시 대기업 노조의 고용과 임금요구에 대한 강력한 대응으로 사측은 신규인력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게 됐다. 물론 비정규직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IMF체제 이후였다. 신자유주의적 체제로의 재편을 위해 기업 측의 구조조정은 노동유연화를 통한 체질개선에 목적이 있었고, 정규직 노동조합 역시 조합원의 고용안정을 위해 비정규직을 완충판으로 생각하게 됐다. 이에 2000년을 전후해 노사합의를 통해 비정규직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대우조선은 올해 8천 2백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대거 고용했고, 그중 3명이 잇따라 중대재해로 사망했다.

  (주)협성계공에 민주노조가 건설되기 전, 문송면 군의 죽음은 때이른 죽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민주노조가 그러한 죽음을 최소화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15시간의 노동 동안 마스크 한 장 없이 수은에 노출되는 작업환경을 그저 받아들이던 시절, 수은중독이라는 직업병조차 명명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반면 대우조선의 이름없는 19세 비정규직 청년의 죽음은 때늦은 죽음이라 말할 수 있다.

  몇 년 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조합원에게 비정규직이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했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비정규직이 고생하면서 적당한 대우를 못 받는 것은 안됐지만, 비정규직이 없으면 위험한 일을 할 사람이 없다”라는 이유를 들었다. 최근 산재사망사고 중 특히 조선소나 건설현장의 중대재해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주로 발생하는 이유기도 하다.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을 고용불안과 노동재해의 방패막이로 활용하는 순간, 이미 예정됐던 죽음이라는 점에서 19세 사내하청 청년의 죽음은 오래된 현재로 다가온다.

 

 
 

‘정규직화’, 비정규직 운동의 전략?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된 ‘정규직화’ 요구는 복잡하게 펼쳐진다.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가 비정규직의 양산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정규직화를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의 핵심은 ‘비정규직이 정상적인 고용형태가 아니며, 비정규직의 확산은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분할하고 해체시킨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 오늘날 불가능한 듯 보이는 정규직화의 요구는 급진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정규직화의 요구가 급진적이려면 정규직화된 고용조차 불가능한 현 자본주의의 한계지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따라서 정규직화의 요구는 작업장의 노사합의나 제도의 요구가 아니라 체제에 대해 반하는 ‘반시대적’ 정신을 펼칠 때 급진적일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그물망에서 빠져나온 물고기 몇 마리는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지만 결코 그 그물을 물어뜯지는 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물망을 물어뜯을 수 있는 이빨이다. 그렇다면 과연 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는 신자유주의를 물어뜯는 이빨이 될 수 있을까?

  이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동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미 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가 일반적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비정규직으로 포괄되는 다양한 고용형태가 점점 더 일반화되고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조건이 됐다는 점을 확인하자는 것이다. 비정규직이 정상적 고용형태가 아니라고 주장하더라도 이는 신자유주의가 강요하는 노동 형태로서의 비정규직 문제를 환기한다는 점에서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비정상적 고용 형태로서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한다고 했을 때 신자유주의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자는 ‘그때가 좋았지’ 식의 회귀적 주장이 아니라면, 이제는 비정규직이 열어놓은 또 다른 가능성을 탐색해야 할 시점이다.

프레카리아트 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자

  비정규노동은 노동의 불안정성을 특징으로 한다. ‘불안정하다’는 것은 곧 노동을 하고 있는 상태와 노동하지 않은 상태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는 어떠한 노동형태가 정상적인가의 여부를 떠나 이미 ‘노동자’라는 말의 외연이 해체되고 있음을 환기한다.

  비정규직의 경우 일이 없으면 실업자가 되기 때문에 실업자와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실업의 상태가 장기화되거나 만성화되면 노숙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노숙자와의 경계도 모호해진다. 실제 건설일용직이 일이 없을 때 노숙자가 되거나, 노숙자이면서 건설일용직으로 일하는 경우가 흔하다. 따라서 불안정 노동은 노동하지 않는 자, 노동할 수 없는 자까지도 포함한다. 노동의 안정성이 사라진 시대의 노동은 전통적인 범주에서의 노동이라기보다는 삶의 불안정화/빈곤화의 문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기존의 노동조합운동으로 명명할 수 없는 새로운 운동의 양식을 요구한다. 하지만 기존의 노동조합운동 밖에 있는 사회운동의 영역이 이 새로운 운동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전통적인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을 가르던 범주를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체의 측면에서 보자면 자본이 의도치 않게 열어놓은 비정규직이라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출현, ‘계급 아닌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새로운 유형이 출현했음을 주목해야 한다. 더불어 이러한 새로운 주체에 걸맞는 새로운 운동이 재구성돼야 한다. 새로운 운동은 기존의 노동조합의 요구들을 초과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사회운동’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며, 전통적인 노동조합의 조직대상을 넘어선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우리 시대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불안정함(precarious)’과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합성한 ‘프레카리아트(precariat)’로 명명되기도 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통상 노동자계급과 같은 의미로 사용돼 왔다. 이에 비해 프레카리아트는 노동의 '불안정성'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정규직-중산층-남성 노동자가 상징하고 있는 '정상적' 범주를 이탈한 사람 모두를 포괄할 수 있다. 실업자, 노숙자,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혼모, 동성애자, 성매매여성 등이 가진 외연의 확장은 자본이 구획해 놓은 사회적 배제의 선들과 함께 넓혀갈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맑스가 그의 시대에서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미래의 주체를 발견했다면 우리 역시 역사적 조건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새롭게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에 따라 새로운 운동의 모형들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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