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두 / 돌곶이포럼 회원

 

  오늘날 ‘학생운동’은 옛날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여전히 몇몇 대학에서는 활발하고 능동적으로 활동을 지속하고 전망을 모색하는 학생운동 활동가 그룹이 여럿 존재하지만, 전체 대학사회에서 이들은 대중의 지지를 상실하고 ‘좌빨 혹은 정치라는 이상한 취미를 가진 동아리 아이들’, 즉 소수파로 전락한지 오래다. 더 이상 누구도 ‘학생운동의 위기’를 화두로 논쟁하지 않는다. 96년 연세대 사태를 학생운동 위기의 상징적 사건이라고 명명하자 ‘위기’를 주제로 한 논의는 지겹도록 오랫동안 반복되어왔다. 위기에 대한 일정한 판단과 실천 속에서 학생운동의 여러 그룹들이 사라졌고, 그만큼 많은 대중운동의 장도 사라졌다.

학생운동의 위기와 변화의 모색

  물론 이런 위기 속에서 길을 모색하기 위해 2000년대 이후 학생운동의 질서에도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학생운동의 다수를 차지하는 NL계열에서 몇몇 소수파들을 제외한 다수 의견그룹들은 지난한 논쟁 속에서 한총련을 해소하고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을 건설했다. 이들은 이적단체 규정을 받은 한총련의 대중 활동의 어려움을 떨치고 학생대중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노선을 정립하기 위해 “대학생들의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실현하는 거점”으로서의 대중조직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해왔다. 건설 단계 초기에 ‘비운동권’이라도 등록금과 청년실업 문제에 공감한다면 함께하자며 전국 각지의 다양한 주체들을 만나 조직했고 2011년에는 ‘반값등록금’을 화두로 폭발적인 대중투쟁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당사자운동의 한계 속에 일종의 ‘소비자’로서의 대학생이 “고액의 등록금을 낸 만큼 혜택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식의 소비자 이데올로기에 갇히기 일쑤였다. 이는 존재하는 대중의 불만은 조직하되 대중운동의 급진화에는 실패하는 딜레마를 반복했다. 결국 선거 전 통합진보당 후보 정치인들의 지지를 너른 대학생들에게 확인받자는 식의 정치적 실리를 챙기는 수준에서 투쟁이 정리되기 일쑤였고, 결국에는 지난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차용한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의 선전에 맥을 못 추었다. 헌신적인 실천이 이념적 무지와 오판으로 인해 무장해제된 것이다.

   이외에 전국학생행진, 대학생사람연대, 사노위 학생위원회, 노동자연대대학생다함께, 대학생시대여행 등 활동가 그룹들과 진보신당과 진보정의당 등의 청년학생위원회들이 있다. 비교적 학생운동 활동가조직으로서의 정형을 유지하고 있는 학생행진과 시대여행 등은 학생회와 동아리, 실천단 등을 운영․조직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당장 뚜렷한 길이 보이지 않는 어려운 정세적 조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주체의 재생산과 운동을 지속하면서 세대 갈등 등으로 수렴되어선 안될 청년 세대의 보편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대학 내외의 활동, 노동자들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있다. 시대여행은 방학마다 해당 시기 노동자 투쟁을 중심으로 실천단을 구성해 활동가 이데올로기를 구축하고 있고, 학생행진은 학교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기획사업을 벌이며 대학을 재전유할 대중운동의 기반으로 학회학술운동네트워크를 준비하고 있다.

  대학생사람연대는 알바연대라는 조직을 건설하고 ‘최저임금 1만 원으로 인상’이라는 슬로건만을 가지고 청년대중의 불만을 조직하는 노력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중의 자발성에 대한 일정한 환상 속에서 경제주의적 편향에 갇힌 채 실패할 공산이 크다. 대중 이데올로기의 급진화는 결코 급진적 구호나 요구하는 액수가 크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는 것 역시 오류다. 언제나 이데올로기의 가장 약한 고리는 잃어버린 보편적 권리의 쟁취를 위해 불만이 모아지는 곳에 있는 것이지, 활동가들의 망상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적 활동이 일정 활동가들에게 결기는 남길 수 있겠으나 결국 학생운동에서의 퇴각과 무형의 청년 대중을 ‘청년유니온식’으로 몇몇 개인들의 ‘가입 사업’으로 모으는 것에 그칠 수밖에 없다. 칠레나 캐나다, 프랑스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생운동의 발호는 결코 대학이라는 공간에서의 철수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학생운동 활동가들이 자신의 공간에서 꾸준하고 성실하게 원칙을 고수하며 보편적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것이었음을 잊어선 안된다.

 

 
 

 세대운동의 딜레마

  이러한 실천적 편향 혹은 혼동은 청년유니온 운동과 88만원 세대 담론 이후의 문제의식들에서 영향 받은 것으로 보인다. 대학이 아닌 청년세대 대중운동을 조직해야 하지 않느냐는 고민이 그것이다. 그러나 ‘알바생’이미지로 대표되는 저임금 불안정 노동시장의 청년 노동자들의 불만을 조직하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노동조합운동을 경유하지 않을 수 없다. 청년유니온은 노동조합 설립 신고 과정에서 생기는 어려움과 실질적으로 사건과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면서 시민운동단체같은 모습으로 변형되어 버렸다. 노동조합을 표방하지만 노동조합으로서 단체협상을 하고 단결해 싸울 공간을 만들어 더 폭넓게 조직하지 못하니 이슈파이팅과 교육 사업 수준에서 그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런 편향 속에서 오랫동안 위원장으로 활동했던 김영경 씨는 자유주의 정당의 정치인으로 전향했고, 청년유니온은 일정 의회정치에 대한 환상에서 자유롭지 않게 됐다. 더불어 정책센터로서의 구실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청년고용할당제’같은 주장이 대표적이다. 세대를 쟁점으로 노-노 갈등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청년유니온의 가장 유명한 대안이 아이러니하게도 세대운동의 딜레마를 드러내고 만 것이다.

  학생운동의 위기와 함께 지속되어 왔던 대학의 기업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이제 완성 단계를 목전에 두고 있다. 학생사회는 소멸됐고 극심한 경쟁 속에서 청년들은 학생회실이 아니라 취업준비와 아르바이트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실업률이 끝없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배계급은 계속해서 자기계발과 취업 등 개인적 해결이 중요하다는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아픈 청춘과 힐링은 이 시대의 키워드가 됐다. 결국 새로운 정치적 주체가 만들어지는 조건이란 청년․학생운동이 잃었던 신뢰를 회복하고 대중운동을 재건하는 길 밖에는 다른 묘수가 없다.

  이런 시기에 학생운동은 학생사회에 대한 책임감 있는 태도와 다양한 정치적 기획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기 위한 활동을 게을리 해선 안된다. 대학이 기업화됐다면 대학이란 공간을 학회학술운동 등을 매개로 전유할 조건을 바닥에서부터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중앙대의 자유인문캠프나 연세대 시작포럼을 비롯해 여러 단위들의 다양한 강연회, 토론회 등의 기획은 학술이나 정세적 쟁점을 중심으로 정치적 주체성을 복원하기 위한 가장 왕성한 시도이다.

  또한 학생운동의 독자성과 변혁성 역시 복원해야 한다. 독자성을 잃게 되면 전체 사회의 지형과는 다른 특수한 지형으로서의 대학 사회에서 제대로 안착하기 쉽지 않다. 더불어 실천적 노력이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수렴되는 것 역시 수사로서가 아니라 체제를 뛰어넘는 이론과 실천으로 극복해야 한다. 헌신적 노력으로 ‘반값등록금 투쟁’이라는 호기를 만들고도 이념의 상실로 성과를 헌납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급진적인 것은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오해에서 벗어나 급진성과 대중성이 해후하는 정치를 구성해야 한다.

  청년유니온 등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세대 운동은 세대갈등이 아닌 보다 보편적인 권리를 옹호하고 흩어진 사람들을 물질적인 조건으로 모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동자운동 일각에서 강조되는 비정규직 조직화 활동과 공유되는 목표가 있는 만큼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반복할 필요는 없다. 이미 공단에만 가더라도 하루 16시간을 일하고도 저임금에 처해있는 미조직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들은 무수히 많고, 아르바이트생이라도 실제로 그것이 가능한 공간에서 상징적인 사건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청년학생운동의 호기는 전체 운동과 별도로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전체에 대한 시야를 잃지 않고 독자성과 변혁성,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가지며 끊임없이 대중운동을 지향한다면 새로운 정치적 주체성을 만들 새로운 조건을 구성해내는 것이 마냥 불가능하고 요원한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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