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제153회 중앙게르마니아가 서라벌홀 814호 첨단강의실에서 개최됐다. 이번 중앙게르마니아는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매체유물론을 중심으로 한 <현대 매체이론에서의 기억의 문제>란 주제로 유현주 교수(연세대 독문과)가 강론했다. 유 교수는 “문화적 기억에 대한 문제와 관련해 키틀러 매체이론이 어떻게 전유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며 강론의 방향을 밝혔다.

  유 교수는 “매체에 대한 최초 논쟁은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서 등장한다”면서 “플라톤의 성찰은 모든 매체기술에 내재한 필연적인 변형 가능성과 의도적 조작에 대한 의혹, 나아가 매체의 투명성은 환상이라는 점을 환기시켜 준다”고 설명했다. 즉 모든 기술매체의 형식에는 사용자들에게 강요하는 특정한 조건이 있고, 필연적으로 그 내용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체의 변형과 조작의 가능성은 숙명적이라는 것이다.

  이어 유 교수는 키틀러의 매체유물론을 설명했다. 그는 “키틀러의 관심사는 지각하고 기억하는 주체가 아닌 언제나 대상에 종속되는 주체였으며, 우리 삶의 가장 근본적 조건을 구성하고 있는 하드웨어였다”고 전했다. 그에게 우리의 몸과 감각은 매체로 외재화되기 전까지 알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인간보다 매체가 우선시됐다. 

  또한 그는 키틀러의 저작인 <기록체계들 1800?1900>을 언급하며 “키틀러는 문화적 정보를 저장?전달?재현하는 기술적 네트워크를 뜻하는 용어인 ‘기록체계’를 통해 매체의 역사를 크게 두 단계로 나눴다”고 설명했다. 이는 예술매체의 시대인 ‘기록체계 1800’과 아날로그 매체의 시대인 ‘기록체계 1900’이다. ‘기록체계 1800’은 낭만주의와 문자의 시대로서 문자가 소리?이미지 등 모든 것을 통합해 기억의 저장을 독점하는 시대였다. 그러나 이 독점은 “‘기록체계 1900’에 등장한 아날로그 매체에 의해 깨지게 된다”고 지적하며 “아날로그 매체의 등장은 인간의 사고 작용 또한 정보를 처리하는 기계적 과정으로 전환시켰으며, 문화적 기억은 이제 정보, 즉 데이터가 된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아날로그 매체인 축음기와 영화는 기록체계를 새롭게 구성한다. 유 교수는 “키틀러는 이러한 아날로그 매체 현상에 라캉의 정신분석을 차용해 축음기와 영화를 구분했다”고 설명했다. 축음기는 인간의 기호화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상징적인 것을 실재적인 것으로 대체하나 영화는 실재적인 것을 상상적인 것으로 대체시킨다. 그는 “축음기와 영화는 편집 기술을 통해 시간-연속적인 사건을 본격적으로 조작하며, 이는 주체의 기술사용방식을 떠나 매체의 작동방식과 존재 자체에 내재돼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인간의 탈주체화 과정은 인간의 정보가 축음기?영화?타자기와 같은 아날로그 매체에 의해 저장됨으로써 시작됐지만 이제 디지털 매체 시대에 인간의 본질은 기계로 도주하게 됐다”고 지적하며 “기록체계들이 변화함에 따라 과연 인간의 기억은 보다 풍성해 졌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한 키틀러의 답변은 부정적이다. 그 이유는 “우리는 삶을 실제로 규정하는 하드웨어들을 스스로 볼 수 없으며, 그 효과만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 교수는 “시청각 매체와 디지털 매체는 우리를 새로운 문맹 상태로 이끌었다”며 키틀러의 디지털 매체에 대한 시각을 강조했다. 


                                                                                                                   
                                                                         박지혜 편집위원 | utois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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