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현 / 전 경희대학교 강사

  부모님이 계신 쿠리치바에 갔던 때가 벌써 3년 전이다. 이민을 간 브라질에서 자리를 잡았다는 연락을 받은 직후였다. 나는 평소 브라질에 대해 이른바 막연한 정보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쿠리치바에 도착한 이후 나는 생각을 많이 바꾸게 됐다.

  쿠리치바는 과거 인구의 증가와 산업의 발달로 심각한 공해의 위기에 직면했던 도시다. 그러나 1970년대 이래 쿠리치바의 모습은 크게 변화했다. 먼저 정부와 시민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무분별한 개발이 제한되었던 것이다. 이후 도시의 강 주변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며, 현재 쿠리치바는 마치 도시가 아닌 하나의 공원 같은 모습을 보인다. 쿠리치바가 작은 소도시가 아닌, 인구 180만 명이 거주하는 대도시라는 점은 더욱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쿠리치바에 도착하고나서 가장 먼저 놀랐던 점은 대중교통이었다. 쿠리치바는 지하철이 없는 도시이다. 기반시설 건설 당시 지하철을 건설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도시에는 지하철 대신 버스만 운용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통체증이 없다. 출근시간에도 길이 막히지 않을 정도다.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존재한다. 먼저 쿠리치바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짧다. 배차 간격은 보통 길어야 3분 정도로, 출근 시간대에는 그 간격이 더욱 빨라진다. 게다가 버스가 통과하는 노선은 도시의 최단거리만을 지나다니므로, 굳이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 자가용을 이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정부에서는 쿠리치바의 버스 이용 효율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교통비를 지불하는 시스템을 하나로 통일해 쿠리치바 내에서는 어느 곳을 방문하든 단 한 장의 티켓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 또한 시의 곳곳에 종합터미널을 세웠다. 쿠리치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원통형의 구조물이 바로 그것이다. 또 장거리 출근자의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도시에서는 요금 할인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주변의 여러 위성도시와의 교통도 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 쿠리치바의 버스는 90년대 들어서부터 선불제도를 시행했다. 매번 버스가 올 때마다 줄을 서서 카드를 찍고, 또 카드가 되지 않아 불편을 겪곤 하는 우리의 모습과는 다르게 쿠리치바에서는 버스가 오면 바로 탑승하고 출발한다. 사소한 불편까지 고려한 정책은 쿠리치바의 대중교통 이용률을 이렇게 상승시킨 것이다. 또 쿠리치바에서는 기다란 모양의 버스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보통 150명에서 270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현재는 한 번에 400여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모노레일을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쿠리치바의 교통 시스템은 더욱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전제가 있기에 쿠리치바의 버스는 단순히 버스가 아닌, 땅 위의 지하철로 불릴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쿠리치바의 버스는 모두 전기로 움직이기 때문에 대기오염이 없는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이기도 하다.

  또 쿠리치바에서 눈여겨 볼 것은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시스템이다. 앞서 버스가 ‘땅 위의 지하철’이라면, 쿠리치바의 쓰레기는 ‘쓰레기가 아닌 쓰레기’다. 쿠리치바에서는 재활용품을 가져오는 시민들에게 식료품과 생필품을 제공한다. 간단한 예로 폐지를 1kg 가져가면, 4:1의 비율로 야채를 제공한다. 음식물 쓰레기도 몇 봉지 가져가면 과일로 바꾸어 먹을 수 있다. 곧 쿠리치바의 쓰레기 재활용은 장애인과 저소득층의 소득을 해결할 수 있는 방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는 보통 사료나 유기질 비료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데 쿠리치바의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이 비료를 사용하여 선생님과 함께 텃밭을 가꾸는 수업을 하기도 한다. 또 의류와 책 등을 재활용하는 데에도 적극적이어서 아이들의 바람직한 생활습관을 길러주고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쿠리치바의 교육을 보도록 하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로 브라질은 빈부의 격차가 매우 큰 나라다. 빈민층의 문맹률 또한 매우 높다. 그런데 쿠리치바는 브라질 내의 다른 도시에 비해 문맹률이 현저하게 낮다. 쿠리치바에 설치된 ‘지혜의 등대’ 때문이다. 이는 과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진 곳으로, 현재 계속 증설되고 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숙제를 하고 책을 보고 인터넷을 한다. 저녁에는 경찰들이 근무를 서면서 지역 일대의 치안을 책임진다. 곧 지혜의 등대는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또 치안까지 담당하는 중복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공간으로 ‘삐아’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서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다양한 직업훈련과 예체능 교육 등이 진행된다. 각기 개성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삐아가 여러 개 설립되어 있으며, 그 중 절반가량은 환경에 대한 교육을 실시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교육받은 아이들이 훗날 삽을 들고 개발에 앞장서게 될 확률은 매우 적을 것으로 보인다.

  쿠리치바에는 시민들을 위한 다양한 웰빙공간도 있다. 도시의 중심은 녹지공원이며, 빌딩 사이의 작은 공간을 활용하여 공기정화식물과 벤치 등이 설치된 골목길 산책로를 만들었다. 24시간 개방되기 때문에 언제 어느 때라도, 운동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를 활용할 수 있다.

미래가 없는 개발의 나라

  반면 현재 우리나라를 살펴보자. 기업과 소수 부유층의 이익을 위해 대다수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분별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4대강 사업만 해도 그렇다. 일자리 창출, 환경개선사업 등 앞뒤가 맞지 않는 이유를 들어, 국민 대다수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반대가 심하자 이름을 바꾸어 논란을 잠재우고 뒤편에서는 일사천리로 사업을 진행했다. 실로 눈가리고 아웅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이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이 엄청난 금액이라 해도, 무분별한 자연 파괴는 간과할 수 없다. 게다가 그것이 극소수의 잇속을 불리기 위해서라면 더욱 그렇다. 구제역이 지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있었다. 이는 자연을 돌보지 않고, 또는 개발이 가져오게 될 많은 위험을 무시한 결과다. 이러한 전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4대강 사업 이후 이미 전국에서 많은 늪지가 파괴되고, 천연기념물들이 멸종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과연 현 정부가 국민들의 건강과 후손들의 미래에 대해 관심이나 있는지 실로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과거 2006년 독일 월드컵 기간 동안 나는 씁쓸한 경험을 했던 적이 있다. 베를린의 녹지율이 높다는 뉴스 기사를 본 네티즌들이 한국은 인터넷 보급률이 높다며 열을 올렸던 것이다. 녹지율과 인터넷 보급률은 비교할 수 없는 사항인데다가, 또 비교해서도 안 되는 사항이다. 이는 우리 국민들의 환경 의식이 얼마나 떨어지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하겠다. 현재 우리를 돌아보자. 사람들은 복잡한 서울 한가운데에서도 꾸역꾸역 자가용을 이용한다. 그리고는 그것이 멋진 삶이라 생각한다. 또 음식은 남으면 미련 없이 버려야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들은 재활용의 여지가 없는 자신의 의식부터 당장 바꿔야 한다.

  물론 쿠리치바의 경우를 한국에 무조건 대입할 수는 없다. 또한 그런다고 해도 당장의 성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환경은 장기적인 측면에서 고려해야만 하는 부분이다. 비용과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 자신, 나아가 인류의 생존과 미래를 위해 반드시 방향을 전환해야만 한다. 몸에 좋은 약은 쓰고 풍경이 좋은 길은 돌아가야만 만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보기 싫고 듣기 싫더라도 인간과 자연이 건강해질 길을 모색해야 한다. 비참하게 훼손돼가는 우리의 국토는 현재 응급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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