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인터뷰

전업촛불_ 다인아빠의 이야기
저는 사회적 모순을 바꾸는 방법조차 배울 기회가 없었고, 사회현상에 대하여 깊이 있게 사고해본 적도 별로 없었던, 제 가족의 행복이 우선인 사람이었어요. 그러나 촛불로 인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이 결국은 제 가족의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긴 시간을 통해 힘을 축적해 왔고 그 힘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데, 그것을 단번에 모두 해소시키는 것은 솔직히 불가능하죠. 그래도 집회에 참가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알고 변화하기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에요. 국민과 정권은 ‘대결’의 상대가 아니고 ‘대화’의 상대이니까 승패의 문제로 촛불을 바라보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용산참사 추모집회나 오체투지 서울맞이 행사에서처럼 죽음을 애도하고, 사람과 생명, 평화를 말하는 것이 진압대상이 된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어요. 이런 일을 겪다보니 촛불을 놓을 수가 없는 거죠. 앞으로도 저는 제 아이가 살아갈 투명하고 맑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공권력이 자행하는 폭력을 지적하고, 또 사회의 잘못을 바로잡아 가는 일을 평생 하고 싶어요. 국민이 반대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정권은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없으니, 국민의 생각을 잘 살피고 국정에 반영하는 그런 정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촛불소녀_ 고2 지은이의 이야기
노무현 전 대통령님을 추모하는 물결은 학교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 틈틈이 영결식 방송을 보면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울컥하는 게 느껴져 학교가 끝나자마자 바로 시청으로 향했어요.
나서기 싫어하고 소심한 성격의 제가 이런 행동을 한 이유는 예전부터 느껴왔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특목고도 강남 8학군도 아닌 평범한 여고의 학생인 제가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좋은 직장을 얻는 것이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언젠가부터 사교육은 필수요, 공부로 가난의 대를 끊는다는 것은 옛 말이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일제고사 같은 현 정부의 교육정책들은 우리 학생들의 목을 더더욱 조르고 있어 너무나 힘들어요. 그래서 맘 놓고 꿈꾸며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아보고자 촛불집회에 참여하게 된 것이지요.
학교에서 아무리 ‘민주사회에서의 시민의 자세’라며 배워봤자 그저 달달 외워서 시험만 쳤지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해왔어요. 그 생각을 촛불이 바꾸었습니다. 국민 한 명 한 명의 촛불은 교과서에서나 보던 이상적인 시민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리고 제 또래 친구들이 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정치라는 게 어른들만의 것은 아니구나’라는 것을 느꼈어요. 저는 촛불에서 희망과 미래를 봤습니다. 촛불집회를 통해 깨달은 사람은 저 뿐만이 아닐 것이라 생각해요. 때문에 저는 촛불이 기필코 승리하리라 믿습니다.


촛불소년_ 고3 준영이의 이야기


저는 단지 어린 마음에 혹시나 주위사람들이 소고기 때문에 해를 입지 않을까 싶어서 촛불집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곳저곳에서 촛불을 들고 저마다의 이유를 촛불로 표현하고 있었어요. 어느새 저도 친구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대열에 들어가 구호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촛불집회를 하고나서 정말 느낀 것이 많아요. 힘이 없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작은 사람들 하나하나가 모여 큰 세력에 대항하는 것, 또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단지 손에 촛불만 쥐고 있다는 것, 이기적이고 타산적인 현대인이 이렇게 하나로 모였다는 감동은 저만이 느낀 게 아닐 거예요. 몇몇 사람들은 “정부도 국민도 바보들끼리 뭉쳐서 잘 하는 짓이다”라고 비웃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 이 모든 게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한 디딤돌이라 생각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촛불아가씨_ ⓧclair/다음카페 <소울드레서> 회원의 이야기
제게 촛불은 인터넷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기억입니다. 현장에서 직접 구호를 외치며 함께 하기도 했지만, 매일 참가할 수 없다는 부채감을 인터넷을 통해 채우려고 했던 것 같아요. 촛불집회가 열리던 그 여름밤 내내 아프리카TV 중계를 보면서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갈 때마다 가슴 졸이며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현장의 시민들이 다쳤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실시간으로 후원금을 보냈고, 내가 낸 후원금으로 나온 신문광고를 펼쳐보며 내심 뿌듯해 하기도 했죠.
모두다 혼자라면 힘들었을 일이었겠죠. 하지만 제가 속해있던 인터넷 카페 회원들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현장지원을 나서는 것을 보며 ‘나 역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게시판에서 옷이나 화장품 얘기 등 사소한 잡담을 나누던 익명의 개인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시위에 가담하게 되리라고 누군들 상상이나 했을까요?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며, 그렇지만 이내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일부는 아프리카TV 앞으로, 일부는 광화문으로 향했습니다.
그 때의 그 회원들은 여전히 게시판에 옹기종기 모여 연예인 이야기와 시국 걱정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카페는 ‘카페’라는 이름처럼, 누구든지 어떤 이야기든지 할 수 있는 공간이 된 것이 아닐까요? 저는 오늘도 그곳의 회원들과 댓글로 시국 걱정을 하고 있어요. 우리 같은 ‘보통’의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살 수 있는 나라가 되길 바라면서.


 유모차 촛불_ 일루의 이야기
우리 카페 사람들은 대부분 아기를 가진 사람들이고, 원래 정치에 관심없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렇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당장 세상을 변화시키지는 못해도 15년, 20년 뒤 역사적으로 큰 사건이 될 텐데, 그때 아이가 “엄마는 뭐했어?”라는 질문을 할 때 부끄럽지 않고 싶었어요. 많은 엄마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구요. 그렇게 촛불을 들게 되면서 현실생활에 와 닿지 않던 많은 이슈들이 생각보다 내 생활과 가깝다는 것도 알게 됐죠.
요즘은 집회현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기엔 안전이 보장되지 않아서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대신 엄마들끼리 모여서 환경과 한우에 관해서 공부하고 있어요. 가끔 만나서 밥도 같이 먹고. 지금도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마음이 복잡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언제쯤이나 괜찮은 세상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촛불커플_ 火 & 水의 이야기


작년 여름,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로 지내던 저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의 심각성을 여러 매체들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데다 생활력도 없었던 전 자연스럽게 많은 시간을 아프리카TV와 칼라TV의 생중계 영상을 보면서 지냈고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느꼈어요. 그렇게 작년 여름 많은 날들을 시청과 광화문 일대에서 촛불을 들고, 때로는 전경들과 몸싸움도 하면서 보냈죠.
촛불의 열기가 잠시 사그라지던 때, 아프리카TV 생중계 방에서 함께 촛불집회를 갈 사람을 구해보기로 했습니다. 같은 지역에 사는 몇몇 분이 함께 만나서 촛불집회에 동행하기로 했죠. 막상 다음 날 밤 시청 앞에 나온 것은 한 여자분과 저, 둘 뿐이었습니다. 그 만남이 인연이 되어 자연스레 사귀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나의 생각을 인정해주고, 나와 함께 행동해주는 사람이란 많지 않거든요. 하지만 저는 촛불집회를 통해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1년이라는 시간동안 변함없이 사랑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촛불집회가 열린다는 얘기를 전해 들으면 여자친구와 나는 서로에게 묻습니다. “오늘 시청 콜?” 촛불집회도, 나의 연애도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나라꼴은 변한 것이 없기에 앞으로도 촛불을 들 일이 무척이나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하나가 아닌, 두 개의 촛불을 높이 들기 위해 시청으로 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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