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강형준 / 문화평론가

처음 노무현 정권이 들어섰을 때, 변화를 바라고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뭔가가 있을 거라 기대했었다. 이제 임기가 1년이 채 남지 않은 지금, 대통령의 지지도는 바닥에 떨어지고, 남북관계 등에서 그동안의 틀을 잘 유지했던 것을 제외하면 그의 등장 이후 개혁적이거나 진보적으로 변화한 정책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문화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문화관광부의 중장기 정책안을 살펴보자. 정권 초기 이창동 장관 시절에 진보적 시민단체들의 ‘참여’로 공동작업한 정책안인 ‘창의한국’이 발표되었을 때만 해도, 이 정권은 뭔가 다르다는 기대가 있었다. 200명이 넘는 시민단체의 전문가들과 문화관광부가 함께 10여개월간 작업하여 만들어낸 ‘창의한국’은 ‘문화비전’이라는 이름 아래 문화교육, 사회적 취약계층의 문화권, 지역문화, 문화다양성 등과 같은 구체적이고 진보적인 27개의 추진과제가 담긴 로드맵이었다. 하지만, ‘창의한국’이 발표된 04년 6월 이후 한 달도 안 되어 장관이 바뀌었고, ‘C-Korea 2010’이라는 새로운 정책안이 나오면서 기존의 ‘창의한국’은 폐기처분되었다.
‘C-Korea 2010’의 핵심은, 한국이 80년대의 제조업 기반 경제에서 90년대 지식 기반 경제로, 2000년대에는 문화 기반 경제로 변화해 가고 있으며, 따라서 ‘글로벌 시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역량’인 문화콘텐츠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창의한국’안에서 문화산업은 27대 과제 중 하나였을 뿐인데 반해, ‘C-Korea 2010’에서는 문화콘텐츠 산업이 핵심기조로 바뀌어 있다. ‘문화 기반 경제’로 시대의 변화를 짚은 것에서도 문화부 관료들이 ‘문화’가 아닌 ‘경제’의 패러다임 속에서 사고하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문화관광부 정책의 핵심인 중장기 정책 변화는 노무현 정부의 문화정책이 초기의 ‘문화중심 정책’에서 ‘경제중심 정책’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정부의 전체적인 정책 기조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문화정책의 변화는 당연한 것이었다. 김영삼 정부에서 싹을 틔워 김대중 정부에서 본격화되고, 노무현 정부에서 급속히 추진되고 있는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패러다임 아래에서 문화정책 역시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따라서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진 ‘창의한국’을 제외하면, 노무현 정권의 문화정책은 꾸준히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문화정책은 한마디로 말하면, 경제이성으로 문화정책을 기획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문화의 집’ 정책의 파행이다. ‘문화의 집’은 96년부터 시작하여 06년 11월 현재까지 157개관이 운영되고, 연간 530만 명의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공공 프로그램이었다. 지역의 자생적인 문화활동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는 한국에서 그래도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공공시설이었던 ‘문화의 집’ 예산은 07년 예산편성에서 전액 삭감되어 지방정부의 손으로 넘어갔다. 공공예산이 절실히 필요한 지역문화 프로그램 예산을 삭감하고, 한류 등 문화콘텐츠 산업 예산을 꾸준히 늘리는 식의 정책은 문화권의 확장이나 문화양극화의 해소보다 문화산업 부흥을 통한 경제적 이익 창출을 목표로 삼는다는 말이다. 골프장과 리조트, 게임산업을 확장시켰던 정책 역시 문화를 오로지 경제이성으로만 판단했던 신자유주의적 정책이었다. 한미 FTA 체결 노력은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스크린쿼터 축소라는 할리우드의 ‘염원’을 자발적으로 풀어주면서 시작한 협상 과정에서 노무현 정권은 지난해 12월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이라는 것을 발표했는데, 이 ‘종합대책’ 속에 포함된 ‘한(韓) 스타일 전략사업화’와 같은 모호한 이름의 정책은 ‘문화의 집’ 예산을 전액 삭감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 정부가 꾸준히 ‘문화’를 삭제하면서 ‘경제’ 혹은 ‘사업’으로 정책 전반을 꾸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문화콘텐츠 산업’을 외치긴 해도, 신자유주의 기조 아래에서 ‘문화’는 ‘경제’에 비해 여전히 찬밥일 수밖에 없다. 07년도 문화부 예산이 00년 이후 처음으로 전체 정부 예산의 1% 이하(0.96%)로 떨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화산업 매출액이 02년 29조원에서 05년 52조원으로 75.5% 증가하고, 문화콘텐츠 수출액이 02년 5억 달러에서 05년에 12억 달러로 140% 증가한 데 비해, OECD 상위 10개국 대비 도서관 수는 1/4, 박물관수는 1/6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 역시 문화가 인민들에 의해 향유되는 권리보다 사업가와 개발자에 의해 수출되는 경제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정부의 문화정책은 사람들이 빈부의 격차나 취향의 차이에 상관없이 기본적인 문화적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문화적 공공성과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여건을 최대한 마련하는 데 그중점을 두어야 한다. 과거의 정부가 ‘경제 먼저’를 외치며 문화를 소홀히 했다면, 노무현 정부는 더 나아가 문화를 아예 산업의 일종으로 바라보고 있다. 1%도 되지 않는 문화예산이 그나마 ‘문화콘텐츠 산업’ 중심으로 재편되는 일은 한국의 문화가 경제중심 패러다임에 의해 완전히 질식사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문화정책은 과거 정부의 경제중심주의의 연장선에 있으며, 한미 FTA 추진으로 문화사회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했다. 불행하게도, 오늘 한국에서 문화를 ‘살리는’ 유일한 길은 한미 FTA를 반대하는 일인 것 같다. 모든 것이 ‘경제’로 치환되어 버린 우리 삶을 되돌리지 않으면 문화의 공간도 사라질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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